[노는날] 맨날맨날 멘붕하는 진냥의 추천만화 (12)

철콘 근크리트 - 집이 꼭 즐거운 필요는 없는 법
뉴스일자: 2013년03월30일 02시50분

<글쓴이 주> 진냥의 구성물질 마지막을 정하는 게 조금 어렵네요. 그래서 이번엔 그냥 추천!

오타 같기도 하고 말장난 같기도 한 제목의 이 애니메이션을 난 운 좋게 부산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다. 보는 내내 헤어날 수 없었고, 경악에 가까운 감동을 내게 선사한 작품이었지만 제목이 헛갈려 매번 검색해야하는 철콘 근크리트(이하 철콘). 이 제목은 감독인 마츠모토 타이요가 어린 시절 발음이 서툴러 헬리콥터를 ‘페리폭터’로, 철근 콘크리트를 ‘철콘 근크리트’로 발음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연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제목의 절묘함은 작품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있다. 절묘함이 곱씹을수록 사골국물처럼 배어나온다. 장르로는 한국에서는 접할 기회가 드문 활극 만화.

일본 만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 50선 안에 들어 있고 ‘밸런스의 붕괴 및 자아에 대한 고찰을 역동적 연출과 과감한 카메라워킹을 통해 그려낸 <철콘 근크리트>는 기술적으로는 만화 연출의 신기원을 이룩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현대인들의 억압된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네이버)’는 무시무시하면서도 뭔가 어려운 말로 범벅된 칭찬을 받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냥 좀 짧게 설명하자면… 철콘은 우울하고 팍팍한 회색 도시를 살아가는 두 아이의 이야기다.

먼저 주인공 시로(백(白)). 이름 그대로 순수한 아이다. 그리고 시로의 보디가드를 자청하는 쿠로(흑(黑))는 시로와 또래지만 세상 물정에 통달하고 산전수전을 다 넘어 제1급 우범소년으로 불린다. 둘은 ‘어른’ 없이 둘이서만 타카라마치 마을에서 살아간다. 마을은 어둡고 우울하고 잔혹한 곳이다. 그래서 이 둘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홈리스와 야쿠자들이 모여 사는 '지옥의 거리 다카라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카라쵸는 시로와 쿠로의 동네이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쳐들어왔을 때 방어하는 것도 시로와 쿠로이고 지구별 대원으로서 매일 있었던 일을 우주별 대원에게 보고하는 것은 시로의 일이다.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공중전화지만 시로는 우주와 교신을 빼먹지 않는다.

모찌모찌
여기는 지구별 일본국 시로대원
응답바랍니다
오늘도 이 별의 평화는
제가 잘 지켰습니다
시로대원은 무척 착한 아이입니다
목욕도 했습니다
이상, 오늘 보고 끝!

폐차 지경의 자동차에서 사는 둘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집도 절도 없는 불쌍한 아이들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거리의 아이들’이다. ‘즐거운 나의 집’에서 ‘즐거운’도 ‘집’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둘에게 ‘나의 집’은 있다. 철콘 근크리트. 시로와 쿠로는 가끔 평범한 아이들이 부럽고, 어두운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불쌍하지는 않다. ‘나의 집’에서 살고 있으니까. 남의 ‘집’에 사는 것보다는 ‘나의 집’인 지옥의 거리에 사는 것이 더 나다운 삶이다. 그곳이 내 삶의 터전이니까 그리고 집이 반드시 즐겁고 행복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 안- 심, 안- 심
콘크리트에도 냄새가 있어
여름이랑 겨울
아침이랑 밤에 나는 냄새가 달라
하지만 시로는 비 내린 후의 냄새가 제일 좋아

가끔 가슴에 통증을 겪는 쿠로. 그럴 때마다 웃으며 ‘안- 심, 안- 심’ 시켜주는 시로. 가엾은 생각이 들려는 찰나가 시로의 웃는 미소에 사악 사라지고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후에는 오히려 아오이 유우(시로 목소리)의 ‘안- 심, 안- 심’이라는 음성이 귓전에 남아 한동안 버팀목이 되어준다.

한편, <모모>에서도 시간을 훔쳐가는 회색 정장을 입은 이들이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모모를 고아원에 보내려 하는 내용이 있는데 철콘의 시로와 쿠로 역시 그런 위기를 맞게 된다. 타카라마치 마을을 카지노와 놀이공원으로 재개발하려는 야쿠자 조직이 나타나고 쿠로와 시로는 자신들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국 조직에서는 가엾은 아이들은 시설로 보내 보호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시로는 보호소로 보내진다.

집이 생긴 시로. 하지만 쿠로를 그리는 시간을 제외하곤 시로는 텅 빈 눈빛으로 영혼이 말라간다. 보호소로 보내어진 것은 사실 이들에게는 삶터를 빼앗는 일이었다.

시로 나사가 많이 없어
마음의 나사
실패한 거야 하느님이 많이
그래서 말야
쿠로도 많이 없어 나사가
마음의 나사가.
그래도 쿠로가 없는 나사
시로가 갖고 있어
시로가 전부 갖고 있어

행복하지 않다고 혹은 그렇게는 행복해질 가능성이 없다고 뜻밖에 사람들은 많이들 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어둡고 침울하더라도 혹은 평생 외롭고 슬프더라도 그것이 나의 삶일 수 있고 그것이 내 삶의 터전일 수 있다. 어쩌면 그냥 그런 사람일수도. 반드시 모두가 행복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그냥 나다운 내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할 지도.

▲ 캐릭터들의 비현실적인 점프들이 자아내는 박진감과 오묘한 느낌이 활극 만화라는 장르를 제대로 살려준다

철콘은 국내에서 몇 차례 영화제와 스폰지하우스(서울 소재 예술영화 전용관) 정도에서만 소개되었지만 3권짜리 단행본이 2007년에 출간되어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DVD를 구해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철콘은 유례없이 배경묘사가 세심하고 뛰어난 작품이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흘러가는 배경 사이사이에 흐르는 감성들이 스토리를 넘어서는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비현실적인 점프들이 자아내는 박진감과 오묘한 느낌이 활극 만화라는 장르를 제대로 살려주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하게 어둡기만 한 애니메이션. 이렇게 다채로운 색감을 쓰면서 이렇게 철저하게 무거울 수 있는 경이로운 애니메이션. 한번 만나 보시길.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