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암울한 미래, 일본을 보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구모임 '질라라비' 읽기 (2)
뉴스일자: 2013년03월15일 15시13분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권운동연대는 빈곤문제에 관심을 두는 인권단체다.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빈곤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빈곤을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을 묻는다면 난 ‘불안정노동(비정규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질라라비 읽기모임]에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 만한 노동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판 만큼의 대가를 얻음으로써 생계를 이어가야한다는 암묵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기대는 정확히 우리를 배반한다. 그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은 죽음으로 나타난다. 분노는 ‘묻지마 살인’으로, 좌절감은 ‘자살’로 말이다.

▲2011년 한국 희망버스를 찾은 일본 나까마 유니온 조합원들 [사진: 울산노동뉴스]

2008년 6월 일본의 파견노동자가 도쿄 도심가 아키하바라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살상사건을 벌여 8명이 사망, 10명이 부상당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자동차 공장에서 시급 1300엔을 받고 일하는 파견근로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파견사원으로 여러 자동차 부품회사를 떠돌며 근무하다가 계속적인 불안한 고용과 저임금 등에 시달리면서 불안한 마음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일본 파견노동자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주는 일명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이 있었을 때, 일본의 파견법을 그대로 닮은 한국도 머지않아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전 직장 동료와 길 가던 행인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4명을 다치게 한 일명 ‘여의도 칼부림’사건이 발생했다. 살인을 저지른 이 실업자는 “나를 실컷 이용하고 퇴사하도록 만들어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은 일본의 나쁜 점만 배운다’고 말한다. 노동법만 봐도 그렇다. 3월 질라리비 읽기모임에서는 <일본의 노동법제와 비정규노동 철폐의 과제>-와키타 시게루(류코쿠대학 법학부 교수)의 글을 읽고 토론했다. 일본은 남성이 정년까지 가족을 대표해 일하는 ‘남성편향모델’이라는 정사원 고용관행이 있었는데, 파트타임노동, 파견노동, 유기노동(기간제), 특수고용 등 비정규노동이 이러한 기존 고용관행을 뒤집었다고 한다.

1960년부터 1970년대는 일본적 고용관행이 형성 확립된 시대로 일본적인 남성정사원 중심의 기업별 노조가 일반화 된 가운데 전업주부가 된 여성을 대상으로 파트타임고용이 저임금, 고용조정가능노동력으로 서서히 확대되었다.

1990년이 되자 일본경영자연맹이 발표한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은 극소수의 간부노동자 이외에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정규고용의 삭감을 명확히 하였다. 이렇게 경영자와 정부가 추진하고, 협조적 노조가 용인한 비정규고용 형태에 몰린 노동자들의 가혹한 상황을 와키타 시게루 교수는 ①불안정, ②차별, ③무권리, ➃고립으로 표현했다. 

2006년경부터 ‘워킹푸어’와 ‘빈곤확대’가 가시화되고 사회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끌게 되면서, 2009년 6월에는 민주, 사민, 국민신당의 당시 야당 3당이 합의하여 적극적인 규제를 담은 ‘노동자파견법개정안’을 발표하였고, 총선에서 민주당은 노동자파견법 전면개정을 약속했다. 야당연합 총선에서 대승한 그해 9월, 정권교체가 실현 되었지만, 2012년 파견법 개정은 매우 후퇴시킨 형태로 국회에 제출되어 제정된다. 정권교체로 기대했던 불안정 노동에 대한 규제는 배반당한 것이다.

노동조합의 상당수가 정규고용을 기반으로 있고, 정권교체만 바라보다가 배신당한 아픈 경험들... 모두가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고 느껴졌다. 와키타 시게루 교수는 노동자 분단을 넘어선 연대, 인간으로서의 연대, 법 개정을 포함한 정치적 해결 등을 일본 비정규고용 철폐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오늘의 정규직은 내일의 비정규직’, ‘가장은 정규직이라도 자식은 비정규직’이라는 같은 시대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한국사회도 귀 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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