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어느 하루

석불상이 준 교훈
뉴스일자: 2013년02월02일 02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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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어느하루 / 45.5cm x 38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석불상이 준 교훈
공부하든 여행을 가든, 그 목표가 내가 물리적, 정신적으로 현재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혹은 높은 곳일수록 더 소중하고 가치 있으리라는 이상한 편견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한동안 문화유적지 답사에 몰두해 있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해남, 강진 토말에 이르는 남도의 끝에서, 황지, 정선과 오대산 등 강원도 골짜기와 소래, 군산, 변산반도에 이르는 서해의 해안선 따라 적지 않은 거리를 참 열심히도 돌아다녔었다. 물론 멀리 다녀온 만큼 얻은 것도 적지 않아서 당연히 나의 편견은 신념처럼 굳어져 갔다.

그런데 이런 나의 사고를 송두리째 뒤엎게 된 계기는 지방신문 한구석에 난 짤막한 기사였다. 야산에 방치되어 있던 고려시대 작은 석불상을 도 문화재로 지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런 소식이야 어디서나 가끔 듣고 볼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정작 내가 전율을 느낀 것은 그 석불의 소재지가 다름 아닌 내가 자라온 고향에서 불과 십리도 되지 않은 이웃마을이었는데도,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내가 나고 자란 동네 이웃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석불상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기묘한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시간을 쪼개 달려가 보니, 눈에 익을 대로 익은 이웃 마을 뒷산의 참으로 무심하게 지나쳐오던 평범한 골짜기 밭 한가운데에, 코가 뜯겨 나가고 얼굴 윤곽도 이미 희미해진 어린아이 키만한 석불상이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었다. 심한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고 찬찬히 뜯어본 그 석불은 내가 그동안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만나본 어떤 부처보다도 아름답고 친밀하며 감동적이었다.

그날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선명해졌다. 내 주변 가까운 곳에 널려있는 소중한 것들을 등한시하고 예술을 한답시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떠다니던 내 몸이 보였다. 멀고 높은 곳만 바라보느라 가까운 곳에 늘 존재하는 귀한 것을 소홀하게 지나쳐왔던 오만한 정신의 그림자도 보았다. 그렇게 세상과 사물에 대한 편견의 끈을 놓아버리고 나니, 사소하고 무의미하던 수많은 일상의 조각들이 보석처럼 내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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