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주머니돈 4,000원 탈탈 털어 커피숍에 가는 대학생

만나고 토론하고, 소통할 '공간'이 없는 대학을 생각한다
뉴스일자: 2012년08월21일 09시05분

‘아, 4,000원밖에 없는데, 커피 값으로 써야 하나..’

대학생이라면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얇은 지갑에 몇 장 안 되는 천 원짜리 지폐를 배도 안 차는 커피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얘기할 공간이 없거나, 학교 수업을 위해 학과 동기들과 공동과제를 해야 할 때면 대학 내 공간이 마땅치 않아 커피숍을 가야 한다.

만남의 욕구. 동료를 만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고자 하는 욕구는 아마 의·식·주 다음으로 인간이 갈구하는 욕구가 아닐까. 그렇게 언어가 발달하고, 각종 모임이 생기고, 모임을 위한 장소인 카페가 생겼다. 이것도 모자라 더 빠른 교류를 위해 한 손으로 내 근황을 알릴 수 있는 SNS가 등장했다. 바야흐로 교류와 만남의 시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교류의 시대에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장소가 없다. 특히 집단지성을 만들어내고,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야 할 대학에 말이다.

SBS <힐링캠프>에서 “청춘콘서트를 정치적 의도 때문에 기획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MC의 질문에 안철수 원장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안 원장은 “사람들이 만나고 얘기하는 축제는 좋은 것인데, 이를 싫어해서 되느냐”라며 뼈 있는 말도 덧붙였다.

대학 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부재와 이에 뒤따르는 만남의 감소는 대학생활 내내 불만으로 여겨졌다. 대학생들에게 허용된 공간과 행위는 잠시 머무르는 강의실과 강의를 듣는 일만이 아닌데도, 그 이외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싫어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고 안 원장이 지적했듯이, 학생들이 만나 자유롭게 놀고 공부하고 행동하는 것을 원치 않는 대학구성원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음모론적인 발상인가?

여하튼 안철수 원장, 그의 말에 공감된다. 모임 속에서 자본주의를 논하던지, 사회주의를 주장하던지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고, 더 나은 대안적 삶을 위해 모여 토의할 수 있어야 한다. 모임의 결론이 역대 대통령들이 보여준 국가 전복과 헌법파괴와 같은 쿠데타로 이어지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낳는 모임과 만남은 늘 장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와 대학에는 ‘돈 없이도’ 앉아서 자유롭게 논의를 펼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특히 내가 다니는 학생 수 2만 명을 수용하는 캠퍼스에는 늘 ‘자리경쟁’이 빈번하다. 한해 등록금이 8~9백만 원을 선회하는데도 마음 놓고 친구와 논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학교 내 총장 및 이사진-교수-교직원-학생의 권력관계에서 제일 힘없는 학생들의 처지는 이렇게 부족한 공간으로 나타난다. 학생들 못지않게 자기 공간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학교 청소를 도맡아 하는 청소노동자들이다.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장소는 건물 계단 밑 자투리 공간이 전부다. 확실히 획득 가능한 공간의 크기와 권력의 크기는 정비례한다. 적어도 대학 내에서는.  

시험기간에는 도서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자리를 맡으려는 학생들로 줄이 입구 바깥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을 관람할 수도 있다. 종일 조용한 나만의 공부공간을 제공하는 사설독서실 한 달 비용이 10만 원 정도인데, 그에 비해 40배나 많은 한 학기 등록금을 내고도 시험기간에 마음 편히 공부할 자리를 얻지 못하는 상황은 정말 억울하기까지 하다.

더욱 진풍경인 것은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서 각자의 사비를 털어 학교 앞 커피숍을 가는 경우다. 아르바이트 1시간 시급에 해당하는 비용을 커피 값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에 ‘학교 내에 스터디 룸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박이 가능한데, 사용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불편한 이유가 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논의의 모든 내용이 감시되고, 사용 예약도 이틀 전에 미리 해야 하기에 하루나 바로 당일에는 사용할 수 없다. 사용 시간도 학생들의 편의보다는 행정의 편의에 맞춰진 오전 9:00- 오후 5:00 사이다. 왜냐하면 이 스터디 룸은 행정실의 승인을 받아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보통 대학 주간수업이 오후 6시 이후에 끝나기 때문에 수업 이후의 논의를 스터디 룸에서 할라치면 이미 스터디룸 사용시간은 끝났다.

유일하게 학교 도서관 로비에 마련된 의자와 테이블조차 ‘잡섹션(취업준비를 위해 마련된 곳)’이란 명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 얘기하고, 떠들 수 있는 장소조차 ‘취업’을 위한 영역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냥 정말 오직 휴식과 유쾌한 잡담, 소소한 대화, 그러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바라는 것이 그렇게 큰 소망인가?

그렇게 학생들이 모여 자연스레 공적인 이슈(등록금, 청년실업 등)에 대한 논의가 일어난다면 그런 학내 공간이야말로 학생활동의 거점이 되고, 분수령이 된다. 안철수 원장의 말처럼 사람이 모이는 걸 싫어해서도 안 되지만, 학생들이 앉아서 떠들고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가 대학에 없어서도 안 된다. 대학이 기업이 아니라면, 세련되고 깔끔한 건물 로비보다는 학생공지와 활동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발랄한 아이디어와 활동들로 시끌벅적한 로비가 더 ‘대학’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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