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나로 연속기고] (3) 돈을 향한 소심한 반항

결국 도시 임금노동자가 되기를 포기했다.
뉴스일자: 2012년06월27일 14시38분

우리는 돈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을까? 물을 돈을 주고 사 먹는 게 당연히 여겨질 만큼 화폐경제는 우리생활 속으로 넓고 깊게 들어와 있다.‘다카기 진자부로’의 저서 <지금 자연을 어 떻게 볼 것인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시 그리스의 화폐경제는 차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물건의 가치가 실제 사용가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라는 추상적인 것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거기서 추상적 개념과 전적으로 거기 관련한 두뇌(정신)노동이 발생해 육체노동과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전자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지배층에 속하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지배층의 이데올로기)은 실제로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감과는 먼 것이 되었다.’

이 구절은 상당히 설득력 있고 그럴 듯하다고 생각된다. 본격화 된 화폐경제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화폐에 의존적이다. 또 돈으로 물건을 사고팔면서 그 물건의 교환가치를 따지게 되는 두뇌노동이 발달하였고 두뇌노동을 담당하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화폐경제를 관장하게 되어 지배층이 되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화폐경제에 편입된 채 두뇌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지배를 받아야 해 살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시대에도 지배층들에겐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지배층과 일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속한 화폐경제도 모두 지배층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난하다. 그 중에도 일하는 청소년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많은 제약과 차별을 받고 있다.

▲청소년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선언 [출처 : 참세상]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자퇴를 하고 나서 대구 대명동에서 친구들과 한 달 가량 자취 할 때였다. 화폐경제에 속해있는 만큼 돈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 해 동네 이곳저곳으로 알바를 구하러 틈만 나면 돌아다녔다. 한번은 집과 가까웠던 편의점에 들어갔다. 알바를 구한다고 하길래 보고 들어왔다고 하자 대뜸 학생이냐고 물었다. 아직 만19세가 조금 안 되는 내 나이를 말하니 미성년자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미성년자라고 열심히 일하지 못하는 건 아니고 집도 가깝다고 했지만 어쨌든 미성년자는 받지 않는 다며 거절했다.

다른 날, 식료품을 주로 파는 할인마트에서 남자알바를 구하길래 사무실로 들어가 보니 밥을 먹고 있던 남자직원들 중 한명이 ‘무슨 어린애가 왔노’ 라며 조롱하듯 말했다. 그러자 나 빼고 사무실에 있던 사람 모두가 웃었다. 별로 유쾌하지 않아 할지말지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이 가게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어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이런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비단 나만의 문제였을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미성년자라서 알바를 안 써주는 경우는 허다하다. 알바를 하면서도 나이가 어리다고 만만하게 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알바를 구한 내 친구들은 스스로 ‘자본의 노예’라고 하며 짜증을 내는 일이 있었고 점장같은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을 몹시 불만스럽게 여겼다. 이들이 여기서 느끼는 짜증과 불만은 화폐경제에 의존 할 수밖에 없는, 말 그대로 자본과 화폐경제의 ‘노예’이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나는 도시에서 임금노동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농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학교처럼 꽉 짜여진 틀 속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하루 지치고 피곤하게 살 바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동시에 돈으로부터 벗어난 자립도 해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나의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친 선생님의 소개로 영덕에서 작은규모로 농사를 짓고 양봉을 하는 한 가정에 오월 중순부터 머무르게 되었다. 노동을 통해 우리 몸을 살리는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연의 큰 흐름과 생명력을 관찰 할 수 있는 일이 농사인 것 같았고 그 점이 나에게 너무나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큰 규모로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그런 것을 느끼기 힘들겠지만 이곳은 농약과 제초제, 살충제를 쓰지 않고 화학비료도 거의 치지 않는다. 그리고 크게 농사를 짓지 않아 논, 밭을 갈고 모내기를 하는 정도의 일을 빼면 기계도 쓰지 않으니 이런 것 들을 느낄 여지가 있다. 침묵하던 콩들이 하루에 두 차례씩 물을 주니 파릇파릇한 싹을 뻗치고 기다란 녹말 이쑤시개에 이파리 몇 개 달린 것 같던 고추모종들이 어느 새 가지를 내고 잎이 무성한 고추나무로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또 작은 벌들이 사람들의 도움 없이 모은 꿀은 벌통 한 통 당 10kg가 훨씬 넘게 나온다.

최근엔 기계가 들어가지 않은 자리에 모를 심었다. 모판에서 떼어낸 모를 들고 맨발로 논에 들어갔다. 부드럽고 끈끈하고 힘이 있는 흙에 발이 천천히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거의 30cm정도 발이 빠져들어 갔다. 아주 작고 부드러운 흙 입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퇴적되어야 논으로 쓰기 적절한 땅이 나온다. 그리고 논은 아주 많은 생명들의 서식처가 되고 물을 모을 수 있어 홍수예방효과가 있고 논에 모인 물이 증발하며 여름철 뜨거운 기온을 식혀주는 일도 한다.

논에는 여러종류의 물땡땡이가 살고 환경부 보호종 2급 긴꼬리투구새우들이 논바닥을 헤엄쳐 다니며 구멍을 파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난 물자라를 이곳에 와서 처음 봤는데 우리 논에서는 심심찮게 보인다. 알을 다른 곤충들처럼 그냥 낳아놓고 떠나는 게 불안한지 수컷이 등에 알을 한가득 없고 짧은 다리를 놀리며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다.

가끔은 머리를 제외한 등 전체에 알을 업고 있는 수컷들을 보게 된다. 위에서 보면 다닥다닥 붙은 알이 몸통을 다 가리고 다리만 버둥거리고 있어 웃기다. 곧 밤꽃과 다른 야생화들에서 벌들이 모은 꿀을 채취하고 감자를 캘 때가 왔다. 하루 종일 일하고 놀며 재미있게 보내 요즘은 눈만 뜨면 이틀씩 지나가는 것 같다.

한번은 자취 하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너 언제 까지 그 집에 빌붙어 살래?’ 친구가 물었다. 나는 이때까지 이 집에 빌붙어 살고 있었나? 그 친구는 알바를 한다. 알바를 하면 일을 하고 돈을 받는다. 하지만 난 일을 하면 밥을 얻어먹고 잠 잘 장소를 해결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그 정도뿐인 것 같다.

이곳도 엄연한 나의 일자리다. 화폐만이 노동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난 아직 화폐경제에 편입되어 있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화폐경제와 피지배층의 자유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만큼 돈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세심한 이해가 동반되어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활용하며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사람 없이 살수 없으니 같이 살 사람들도 있어야 하겠지. 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건 아니고 나의 일자리이자 거주지인 이 집에서도 언젠간 떠나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즐겁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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