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학교폭력이 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학생인권 문제도 뜨겁다. 교권의 하락, 학교붕괴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학생(or 청소년)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하늘에 별따기다. 저마다 대안을 내어놓지만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고려되기 보다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급급하다. <뉴스민>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구지부 회원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연재는 2주 간격으로 총 8회 이어진다
소박한 양심에 자유를 달라!
양심이란 무엇일까…? 사전은 양심을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을 뒤로 하고 좀 더 알기 쉽게 양심을 파헤쳐 보자.
흔히 비도덕적인 사람들을 보고 “양심이 없다”라고 하고, 또 거짓말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하는 사람에게 “양심에 털 났다”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양심은 ‘도덕성’과 대체할 수 있는 단어처럼 보인다.
그런 양심에 자유를 달라니, 도덕성에 붙는 자유라는 단어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양심은 ‘도덕’과 비슷한 말 같기도 하지만 ‘양심의 자유’에서 말하는 양심은 앞서 사전적 의미에도 언급했듯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의식’이다. 양심은 나의 행동을 내가 판단하게 되는 줏대, 혹은 신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 학교를 다니다 보면 이런 나의 양심을 콕콕 찌르는 행동을 강요받게 되는 경우가 잦다. 큰 애착도 없는 국가를 향한 충성심 강요라든가, 하기 싫은 보충과 자습을 마치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인 양 위장시켜버리는 강제동의서,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교사의 권력에 굴복하겠다는 상징으로 쓰게 되는 반성문, 교칙을 지키지 않을까봐 조바심에 서나 혹은 학생이 교칙을 지키지 않고 징계를 거부할 때 꼬투리를 잡기 위해 쓰도록 하는 교칙준수서약서까지.
학생들의 양심을 위협하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그중 학생들의 양심의 자유를 가장 폭력적으로, 또 많이 침해하고 있는 학교의 시스템은 '강제보충'과 '강제자습'이다.
강제보충과 강제야자 - 나의 동의가 아닌 동의서? 폭력적이고 황당한 실상
올해 초 대구 동성로에서는 강제보충과 강제자습 철폐를 위한 릴레이 일인시위가 진행되었었다. 릴레이 일인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내고자 했던 의사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촉구,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강제자습과 강제보충 철폐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강제보충’, 그리고 ‘강제자습’이다.
그리고 얼마 전 대구 S고에선 학교에서 반강제적으로 진행되는 보충학습을 자율화하기 위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들이 학교 교문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학교 안에선 서명지가 돌아다녔다. 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을 보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제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빠질 수 있는 환경의 보충학습을 원했다.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은 강제적인 환경의 보충과 자습을 반대하고 또 철폐하려고 노력하는 걸까?
대구시 내 많은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반강제적인 동의서를 쓰게 하여 방학 중, 혹은 학기 중 정규 수업 과정 이외에 보충학습과 자율학습 같이 개인에 따라선 과도한 학업을 강행하게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그렇듯 부모동의서라는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보충학습, 자율학습 동의서를 나눠주고 강제적으로 부모의 날인까지 위조시켜 대부분의 반 구성인원을 보충학습, 자율학습에 참가시킨다. 그리고 추후에 학생이 야간 자율학습(이하 야자)이나 보충학습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면 “너희들이 동의서 썼잖아”라든가 “하기 싫으면 그때 싫다고 말했어야지”라고 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진다.
이것이 믿기 힘든 대구의 일부 고등학교 교육의 현시점이다. 과연 강제동의서에 직접 날인을 한 학생들은 자신의 양심에 맞게 행동했을까? 그 날인에는 과연 일말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었을까?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을 나이가 많다거나, 교사라는 이유로 부당한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강요당한 것은 아닐까?
시간과 공간마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미성숙한' 청소년
학생들은 지금 자신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조차 학교에 의해 강압적으로 선택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 학생에겐 자신의 다른 역량이나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시간을 뺏기는 것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강제 보충과 야자를 하지 않으려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빠지고 싶으면 부모님 연락하시라 그래라” 혹은 “예체능계가 되던지” 라고.
대외적으로는 보충과 야자가 학생들의 공부시간을 늘리고, 학생 자신이 스스로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익힐 수 있게 학교 측에서 배려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학교는 학생을 스스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조차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학생들을 배려하고 학생들의 학업능력 신장을 그렇게 원한다면 강제적으로 보충과 야자를 신청하게 해서 학교에 12시간 이상 가둬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보충과 야자를 벗어나서 다른 학생들이 학교에 잡혀있을 시간에 밖을 돌아다니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조금 더 많은 것을 보기 시작했다. 바리스타가 되고 싶었던 나는 폭력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진로를 확인해서 많은 시간을 그 공부에 할애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여성주의나 인권전반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남는 시간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과공부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그 길로 학교를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의 옳은 선택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폭력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만의 공부를 찾으려고 한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적인 환경에서 학생들이 본인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되어야 할까? 내가 볼 때는 가장 시급한 건 구조를 바꾸는 것이고,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시작으로 학생인권조례의 시급한 제정이라 생각한다. 이미 대구시는 대부분의 인문계 학교에서 학생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각종 행위를 강요하고 있다. 아니 양심의 자유를 넘어 학교는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행사하고 학생들은 침해당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
그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 교사나 일반인은 대부분 학생들은 미성숙하기에 그렇게 규제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결국 대학진학과 자신의 진로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의 변화 또한 필요할 것이다. 학생들의 인권존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당연해지고 또 많은 사람이 그것을 원한다면 학교에서 학생이 좀 더 양심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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