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교육청(교육청)은 2012년부터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의 시작으로 지난 5월 12일에는 ‘대구의 책’ 선포식을 열기도 했다. 교육청은 스마트폰과 IPTV 보급의 확장 속에서도 책읽기 권장에 앞장서고 있는듯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 마냥 박수를 보내긴 힘들어 보인다.
 |
▲대구시교육청은 지난 5월 12일 '책으로 하나되는 행복도시' 행사를 열었다. | | |
교육청은 지난 3월 400여 명의 학교도서관 사서노동자들에게 해고계획을 통보했다. 올해 계약기간이 끝나는 12월을 끝으로 학교도서관 사서 인건비 지원을 종료하고, 학교도서관의 사서업무는 다른 교무실무원에게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책 읽기 운동에 앞장서는 교육청이 2009년부터 학교도서관마다 사서를 전면 채용한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도서관 운영 전담이 아닌 교무실무원들이 사서 업무를 할 만큼 사서는 쉬운 노동일까. 이들의 노동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자 대구의 ㄷ 초등학교 도서관을 찾아가보았다.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 덕분인지 90년대 학교도서관을 생각한터라 잘 꾸며진 외관에 놀랐다. 그러나 도서관 안에 들어서자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대출반납 바코드만 찍는일?
신간 선정구입, 분류, 책 추천, 홍보물 제작 등등...
 |
▲5월말 경이 되어서야 신간 도서 구비를 완료할 수 있었다. | | |
학생들이 하교한 오후 3시. 도서관은 한산했지만 탁자 위에는 새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내 사서 이 모 씨의 한숨 썩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올 3월부터 이 학교에 사서로 왔어요. 우리는 10개월 계약직이라 작년까지 다른 학교에 있다가 여기로 왔는데 도서관 시스템부터 다시 손봐야 했어요. 겨울방학 중에는 계약이 되어있지 않아 학기 시작하고서야 신간도서 구입 목록을 만들고 결재 받고 해서 이제야 책 등록을 앞두고 있어요. 신간 등록하고 라벨지 붙이고 분류하고...”
이 씨의 말대로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들은 10개월 단위로 계약해왔다. 이 때문에 한 학교에서 도서관 업무를 지속하기가 힘들다. 교육청의 해고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이라 즐거운데 (해고 통보 계획) 소식 듣고 나니 힘이 쭉 빠진다. 어차피 올해 지나면 이 학교도서관에서 쫓겨나는데 일 할 맛이 나겠냐”며 “그나마 학생들이 도서관을 자주 찾아 그 힘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흔히 사서의 노동이라 하면 대출반납 업무만 떠올리기 쉽다. 때문에 사서가 없어도 대체하기 쉬울 것이라 여긴다. 교육청이 사서 인건비 지원을 중단하고 사서업무를 교무실무원에게 넘긴다는 공문을 발송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청의 입장에 대해 이 씨는 “단순히 외관상 도서관이 유지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전부로 생각하고 실질적 운영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씨의 하루 업무를 지켜보니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ㄷ 초등학교는 전체 학생 숫자가 천 명이 넘는다. 대출반납은 기본이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모아 신간을 선정하고 구입 하는 일, 구입한 신간을 등록하고 분류하는 작업, 도서관 이용자의 편리성을 고려한 배치,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이야기 나누는 일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도서관 홍보물 제작 및 배치, 대출증 제작까지 직접 하고 있었다. 그럼 그의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될까.
“한 달 월급이 104만 원이에요. 학교가 하루 일하는 시간을 7.5 시간으로 잡아서 임금을 주고 있어서 토요일에도 나오는데 임금이 이 정도 밖에 안돼요”라는 그의 말에 초과 근무 수당이 없느냐고 묻자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10개월 계약하는 비정규직이라 말도 잘 못해요. 학교에 이야기하면 연봉제랑 비교하지 마라는 이야기만 듣고 괜히 말했다가 평가에서 감점만 당하죠”라고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비정규직의 설움이 묻어났다.
그는 일 하면서 제일 서러웠던 게 “비정규직이라 해야 할 말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도서관 냉난방도 직접 결정할 수가 없다. 신간도서 구입할 때 구입목록에 없던 책이 70여권 같은 책으로 주문된 일이 있어도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며 “때로는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이 예쁘고 책이 좋아 하는 일이지만 당장 내년부터 해고되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한다”고 말했다.
“예산 없다고 필요한 경찰관 안 뽑나”
대구시교육청 예산부족으로 사서 해고...학교도서관은?
또 다른 학교를 찾았다. 최병선 공공운수노조 전회련 사서분과장이 근무하는 ㄷ중학교였다. 도서관에는 방과 후 학교 수업이 진행중 이었다. 그는 학교도서관 사서노동자들과 함께 교육청의 해고통보에 맞서 학교도서관운영 활성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책 읽기 운동 한다면서 학교도서관 운영에 대한 교육청의 태도는 도서관을 보여주기 사업으로 생각하는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그동안 (교육청이) 사서자격증 미소지자를 사서로 고용하고, 10개월 단기근로계약을 해왔는데, 이제는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런데 사서를 해고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간다”
그 역시 앞서 찾은 초등학교의 사서노동자와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었다. 10개월 계약직이다 보니 한 학교에서 근무를 지속할 수 없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매년 학년 진급시 마다 새로 등록하는 문제, 책 선정과 구입에 애를 먹는다. 한 해 마치면 또 다른 학교에 가다보니 연속성이 없다”며 “교무실무원에게 이 역할을 맡기면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
▲학교도서관 사서 노동자들은 교육청으로부터 대량해고 계획을 통보받았다. | | |
학교도서관 운영 활성화 노력에 대해 묻자 그는 “교육청은 예산 부족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경찰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고 안 쓸 수 있나. 도서관에 대한 이해부족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라고 답했다. 그는 올해 초부터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준비해왔다. 이달 16일 열리는 토론회에 다양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비정규직노조에서 주최 하면 참여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토론회 참석요청을 받았던 대구지역 대학교의 A 교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서교사의 확충이다. 사서를 늘리는 것은 답이 아니”라며 “사서 비정규직 노조에서 주최하는 토론회라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 놓았다. 대구지역 한 고등학교의 B사서교사도 “교육청의 계획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입장을 내놓기는 껄끄럽다”고 밝혔다.
대구시교육청의 학교도서관 담당 관계자도 “학교도서관의 운영주체는 사서교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서실무원에게 사서교사만큼 전문적인 역할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며 “교무실무원이 분담해도 도서관 운영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최 분과장은 “사서교사를 확충할 계획도 없으면서 사서교사와 사서의 차이점만 강조하고 있다. 사서교사와 사서의 차이를 나누기 이전에 학교도서관의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경북지역은 올해부터 사서가 배치되어 있지 않아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학교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학부모 자원봉사자들도 불만이 넘쳐났다. 구미지역의 한 학부모는 <뉴스민>과의 통화에서 “마치 학교급식당번 같다. 아이들도 학교도서관이 예전 같지 않다고 불만이 많다. 이러면 도서관을 왜 운영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누구도 학교도서관 운영 활성화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예산부족을 이야기하는 교육청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기업체와 닮아 있다. 최 분과장과 헤어지기 전 도서관을 찾은 학생이 “선생님 내년부터 없어진다고요? 그러면 안돼요”라며 사서해고계획 반대 서명용지에 이름을 또박또박 채웠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