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광주의 언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시민이 총을 들고 저항했던 5.18 광주민중항쟁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당시 언론의 보도는 어떠했까.
언론은 80년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있었던 광주에서의 국가 폭력에 대해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22일부터 계엄사의 발표에만 의존한 채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했습니다. 그 당시 각 언론사들은 광주 현지에 기자들을 급파, 현지 취재했지만 그들은 광주의 비극을 보도하기보다 군부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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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80년 5월 25일 1면] 바리케이트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무정부 상태 광주」1주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보인다. 실제 광주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질서유지로 한 건의 절도도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 길목서 저지…무기반납지연”이 마치 시민들에게 생필품 보급을 저지하는 폭도로 묘사되고 있다. | | |
이들 언론들은 계엄사의 발표를 인용해 ‘학생시민들 광주서 소요, 18일부터 민간인 1명 군경 5명 사상’, ‘광주사태 수습 움직임’, ‘폐허 같은 광주… 데모 6일째, 자극적인 소문이 기폭제’, ‘광주는 치안부재 상태’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 보도했습니다.
실제 1980년 5월 광주에는 약탈사건 하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주먹밥을 싸들고 시민군을 응원했고, 젊은이들은 헌혈을 하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런 모습을 전혀 비춰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국민들은 광주에서 ‘폭도’들이 난동을 부려 폭동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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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80년 5월 31일 3면] 조선일보는 518광주민중항쟁당시 유언비어가 판치고 택시데모로 과열되었다고 쓰고 있다. | | |
80년 5월 27일 KBS는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 계엄군과 경찰은 광주를 탈환했다. 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계엄군 측에 항복했으며 두 명은 끝까지 저항하다 사살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에 나타난 사상자수는 실제와 달랐다. 하지만 보수 거대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일보 등 일부 거대신문사와 방송은 지난 80년 광주에서사태의 본질을 집중 조명하기보다 국방부와 경찰이 제시하는 자료들을 검증 절차 없이 보도하며 정권의 단호한 대처만을 집중 부각하며 사회 갈등을 조장하였습니다. 사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충돌 자체만 집중 보도해 정권이 더 강경하게 시민들의 반발을 진압하도록 부추기는 등 악의적인 여론조작을 일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광주시민들은 광주MBC건물을 불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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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80년 5월 28일 1면] “17명이 죽고 295명을 ‘보호’중”이라고 쓰고 있다. 아마 광주에서 보았던 기자들의 눈으로만 헤아려도 죽은 사람이 수백 명은 되었는데 어떻게 ‘17명이 죽고 295명을 보호중’ 이라고 쓸 수 있었을까? 이들은 이렇게 아무런 여과 없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계엄군 측의 발표만을 언론에 보도하였다. | | |
2006년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관련 보도
80년 광주에서 보여준 거대언론들과 방송의 보도행태는 평택미군기지확장 추진 과정에서도 그대로 재연됐습니다.조선일보와 KBS 등 국내 주요 매체들은 지난 80년 광주에서처럼 평택보도에서도 사태에 대한 심층 보도를 하기보다 정보와 경찰의 정보에만 의존해 보도하고 “사실이 아니면 말고”식으로 일관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 언론들은 80년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보도했던 것처럼 평택 집회참가자들을 국가 안보를 해치는 ‘폭력불순’ 세력으로 규정하며 사회에서 제거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즉 사태에 발생하게 된 원인과 향후 전망에 대한 보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윤광웅 국방장관이 발표한 거짓 정보에만 의존해 평택 주민들을 보상금을 노리는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우며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범대위)를 반미세력의 수뇌부로 지목했습니다. 또 주한민군 기지 이전이 왜 필요한지, 한국이 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다른 나라들은 주한미군 기지에 대해 어떻게 비용을 처리하고 국민적 합의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선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언론들은 ‘평택해결은 주민과 반미(反美)꾼 분리에서부터’, ‘평택 반미축제 넘어선 안 될 선 넘었다’, ‘군인이 왜 매를 맞나, 군심(軍心)은 지금 부글부글’(조선일보 사설) ‘평택시위 60명 구속 영장, 주민은 한명도 없다’(중앙일보), ‘평택 시위대, 철조망 뚫고 군과 충돌’(동아일보)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 보도하였습니다. 80년 광주시민을 향해 ‘경찰서에 불을 지르고 국군에 저항한’ ‘폭도’로 몰았던 조선일보는 5월 5일자 기사에서 범대위를 ‘게릴라’로 몰았습니다.
2012년 언론노조의 파업
MBC, KBS, YTN은 공정보도와 낙하산 인사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외면당한 80년 광주의 목소리와 현재의 모습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80년 광주를 기억하며 언론노동자들의 파업의 외침을 다시 들어 봅니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