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자랑 섬유는 공동묘지가 됐다 (2)

밀라노 프로젝트? “대구시, 업계 고충이나 들어줄 것이지”
뉴스일자: 2015년05월31일 23시05분

밀라노 프로젝트? “대구시, 업계 고충이나 들어줄 것이지”
“업계도 살기 위한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대구시 섬유산업 중추가 중소기업이지만
삼성물산, 코오롱 등 거대 원사업체에 치여
바이어 원하는 단가도 맞춰야···을 중의 을

바둑판같은 성서공단을 훑어내려 갔다. 동쪽으로 성서공동묘지가 펼쳐져 있다. 팻말에는 “이곳에 신고하지 않고 매장하거나 무덤을 옳기는 것은 불법이니 벌금이···”라고 적혔다. 묘지 맞은편으로 D제직이 보인다. 들어갔다.

D제직은 요즘에도 주야 맞교대로 공장을 돌리는 몇 안 되는 업체다. 직원은 20여 명. 사장을 만났다. 장호동 씨는 베이지색 공장 점퍼를 입고 있었다. 왁스를 발라 뒤로 넘긴 머리가 눈에 띄었다. 탁자 위에는 초원을 배경으로 골프웨어를 차려 입은 사진이 빛이 바래 있었다.

장호동 사장도 강덕 씨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D제직은 섬유업 불황을 헤쳐 나가려면 신소재 개발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 신소재 개발이지, 중소기업에서 쉬운 말은 아니”라고.

그래도 대구시가 의지는 좀 있지 않습니까? 명색이 섬유의 도시인데? 대구시는 염색기술연구소, 한국섬유개발연구원, 한국패션산업연구원, 한국섬유기계연구원 등 섬유 관련 기관이 밀집해 있다.
 
“아이고, 예산만 오만상 쓰는 거지.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에 도움 되는 게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잔치하는 거지. 몇몇 업체 들이. 쉬메릭도 실패 했고, 밀라노도 실패 했어요. 앞으로 연구 개발이 전망이라는데, 투자하고 싶어도 대구시 지원이 너무 힘들어요. 서류가 복잡해. 기술 개발 인증도 못 하면 다시 게워내야 하고”

업계에서는 섬유산업을 세 분류(Up, Middle, Down Stream)로 나눈다. 대구는 과거부터 제직, 염색, 사가공 등 미들스트림이 발달했었다. 말하자면 D제직 같은. 이들 업체는 90년대까지 대구를 섬유도시로 만든 주역이었지만, 중국의 시장 진출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업체 스스로 이를 절감하고 있으며, 신소재 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으나 녹녹치 않은 상황이다.

D제직(Middle Stream)은 섬유산업 중에서도 을이다. 대기업 위주의 원사 생산 업체(Up Stream)의 입맛대로 단가를 맞춰 매입해야 한다. 해외 바이어에게도 납품 단가를 맞춰줘야 한다.   

“삼성물산이나 코오롱에서 원사를 사옵니다. 자기들 재고에 따라 원사 단가를 결정해서 손해는 안 보려고 합니다. 단가가 3개월, 5개월이든 대중없이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뀌어요. 우리는 뭐 어쩔 수가 없지요. 수출도 우리가 바로 하는 게 아니고 서울 중간 상인들이 있어요. 중간 에이전트가 월마트 같은 큰 바이어한테 오더를 받아서 공단 여러 업체들에 넘기는데, 바이어가 원하는 대로 단가도 맞춰줘야 하죠”

“우리끼리 단합하는 수밖에 없어요” 옆에 앉아 있던 누군가 말을 건다. 앉은 모습에 위화감이 없어서 직원인줄 알았는데, 인근 동종업계 종사자란다. 그는 작업 조끼를 입었고, 목에는 돋보기안경을 걸었다. “협력이 안 되면 대구 섬유는 벌써 문 닫았지요. 수출 오더는 납기가 급합니다. 원단 10만 야드를 열흘 내로 내라, 20일 내로 내라. 그러면 딱 맞춰야죠. 못 맞추면 오더가 중국으로 가버려요. 제품을 다섯 공장 열 공장 단합해서 만들어 내야지요”

아, 그렇군요. 원사 업체, 바이어에 맞선 생존투쟁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대구시와 정부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뜻밖의 요구였는데, 말하자면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를 폐지해달라는 것이다. 장호동 씨는 “불법 체류자가 되면 월급이 전부 우리 소득으로 잡힌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못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그 나라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온다”며 “불법을 전부 양성화 하거나, 아예 불법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화를 정리하고 다시 밖으로 나서려는데, 장호동 씨가 불러 세운다. 연구실 구경을 시켜준단다.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연구소를 소개하는데, 이름 모를 기계와 컴퓨터 한 대가 있고 방금 전까지 사무를 보던 직원이 와서 컴퓨터를 이리저리 조작한다.

이것이 희망이군요. “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날에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날이 오길 바라면서 공장을 나섰다. 아까 봤던 공동묘지가 다시 펼쳐진다. 아 그러니까, 저 공동묘지에, 올라갔더니, 아 시체가 벌떡, 벌떡, 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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