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가가 느끼는 대구
나랏돈 받느니 차라리 알바한다
박정희 그렸다고 경찰 신고에 공판까지
체육대회 한다고 엑스게임 시설물 철거
행정은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떨어트리기도 한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 한 셈이다. 시내 한 바에서 문화기획자 구은주(27) 씨, 스케이트 보더 이진우 (27)씨, 그라피티 아티스트 푸가지(23)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은주: 공연예술 기획을 했었다. 어떤 축제나 전시 같은 걸 기획자가 기획하면 대중이 보는 거다. 나 혼자 하는 것보다 큰 돈으로 하려면 나랏돈으로 해야 한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정치적이라고 막히는 것도 많고. 대구에서는 치기어린 마음으로 기획 판을 바꿔보겠다고 했는데 판이 안 바뀔 것 같다. 꼰대들이 많다. 요즘은 고민하면서 바에서 알바 한다.
푸가지: 그래피티. 나는 그래피티에 반달리즘을 차용하고 있다. 전에는 그림 그렸었는데 뱅크시의 선물가게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1)를 보고 굳이 화이트큐브(전시장) 안에 들어가기 위해 그려야겠나 했다. 화이트큐브는 일부만 오는데 벽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전시장이다. 지금은 작업도 하면서 벽화 알바를 한다. 돈 벌 생각은 없다. 먹고 살 만큼만 벌면서 하고 싶은 것 할 거다.
진우: 보드를 탄다. 엑스게임이라고 하는데, 엑스게임에는 보드 말고도 어그레시브 인라인, BMX자전거가 있다. 직업이라기보다는, 외국에는 문화적으로도 뒷받침 되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직업으로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안 된다. 그냥 수행 같은 게 아닐까. 많이 인내해야 한다. 기술 하나 연습하는데도 수없이 실패한다. 아무 것도 아닌데, 꼭 해야 할 것 같고. 한 번 성공하면 성취감 느끼고.
대구의 서브컬쳐는 어떤가?
은주: 인디씬(Scene) 끼리는 자연스럽게 만난다. 예술 품앗이 같은 거다. 영상 하는 친구가 음악하는 친구 뮤비 만들어주는 식으로. 인디씬 친구들은 정치적으로는 생각보다 초연하다. 자기 씬에서 자기 팔 자기가 휘두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치를 바꾸진 못하니까. 시민을 바꿔야하는 건데 그패리티라든가 마이너틱한 공연을 만들어서 자꾸 보여주는 수밖에. 우리 작품 활동으로 바꾸는 거다. 시와 상관없이 알아서 한다. 기획 외에는 굳이 나랏돈 까지 받기에는. 일하고 말지. 88만원 세대고, 먹고 살기 바쁘게 만들어진 세상이다. 우리끼리 모이면 작품만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얘기하는데 안 되는 거 번히 알고. 남는 시간 일 하고
푸가지: 작년 박정희를 소재로 파파치킨이란 그래피티를 했는데 바로 다음날 다 지워졌다. 누가 고소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법원에 왔다갔다 하고 있다. 뭐 경제 발전 이런 건 의심하는 건 아닌데, 어쨌든 박정희는 독재자다.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고. 지금도 유신정권처럼 하고 있고. 그런데 그라피티를 바로 지우고 고소하는 반응이 재미있다. 대구사람들은 스스로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박정희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는데, 한 500장정도 붙였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다 떼였다. 더 재미있다.
진우: 국채보상공원에 기물(엑스게임 시설물)이 큰 거 있었다. 형들이 돈 모아서 중구청 허락 받고 거기 뒀었는데, 육상선수권대회 하면서 미관상 보기 안 좋다고 버렸다. 시상식을 국채보상공원 종 앞에서 한다고. 전보다 작지만, 다시 사비를 모아 기물을 마련했는데 이제는 시설관리공단에 허락받고 비치해뒀다. 대구에는 마땅히 쓸 만한 시설물이 없다. 서울만 해도 보더들에게 성지인 공원도 있고. 부산에도 스팟이 있다. 대구랑 다르게 오히려 공원 측에서 관리를 해준다.
은주: 대구 자체가 고담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보호막에 싸여 있다고 해야 할까? 우리 작업은 세균이고, 대구는 향균 하는 것 같다. 개척되지 않은 곳이고, 그래서 오히려 서울보다도 여기 대구에서 하는 게 부딪히기도 좋고 이슈를 만들기도 좋다.
푸가지: 내 작업은 벽을 제공받지 않는 한 불법이다. 그런데 벽을 제공받으면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제한된다. 그러면 재미가 없어진다. 그냥 벽인 채로 있으면 된다.
진우: 다른 건 됐고, 시장님 국채보상공원에 기물이나 좀 가만히 두세요. 좀 봐주세요.
예술로 밥 벌어 먹는 직업은 몇 가지 분야뿐이다. 이들도 공연 출연료가 수입의 대부분이라 공연이 없으면 밥을 굶는 식이다. 이들과 만나기 전 대구시의 행정에 강한 불만을 토로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불만은 많았지만, 정확히는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정치를, 행정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시민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불안정한 삶이지만, 대구라는 ‘벽’을 즐기며 싸우는 편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
4월 사진 촬영을 위해 다시 연습실을 찾았다. 드링킹소년소녀들은 ‘얼마나더’를 부르고 있다. 락스타가 되기에는 늦었다고 하는데, 락스타가 됐으면 좋겠다.
얼마나더 멀어져야 가까워질 수 있니
얼마나더 외면해야 내게 와 줄까
얼마나더 작아져야 말이 터질 수 있니
이렇게나 점점 커져가고 있는 걸
내가 꾸고 있는 우주의 꿈은
너무 크고 아름다워서
내가 너의 곁에 다가갈 때면
어느새 저 멀리에 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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