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 故권영숙의 민들레같은, 불나비 같은 삶

추모집 '민들레처럼, 불나비처럼' 발간 앞두고 21일 출판기념회 열려
뉴스일자: 2015년05월22일 20시05분

故권영숙 씨의 추모집 『민들레처럼, 불나비처럼』 이 21일 발간되며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고애신 전도사와 김찬수 평통사 공동대표

故권영숙(1959~2010) 씨는 1977년 구미 코오롱에서 시작해 암으로 별세하기 직전까지 일생을 경상북도와 대구 일대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1977년 구미의 한 교회에 다니다 코오롱 관리자로부터 교회를 다니지 말라는 압박을 받았다. 구미도시산업선교회의 전도사가 해당 교회에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오히려 그에게 더 자극됐다. 선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그는 당시, 저녁 9시까지 귀가해야 하고 한 달에 8번만 외출, 외박이 허용되며, 비인간적인 노동강도와 위험한 노동환경이 강요되는 노동자의 현실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선교회의 전도사들로부터 회사의 억압적인 구조를 이해하게 되고, 이후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故권영숙은 이후 코오롱을 그만두고 ‘썬파워 건전지’로 알려진 구미 서통 공장이었다. 그곳에서도 노동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해고당했고, 곧바로 복직투쟁에 나섰다. 회사의 경비에게 밟히고 손목을 비틀리기도 했다. 복직은 하지 못했지만, 이 노동운동의 경험은 이후 삶의 지표가 됐다. 대구로 온 권영숙은 한국경전기 투쟁, 한국LBI 투쟁 등 여러 굵직한 투쟁에 앞장섰다. 결혼 후에는 기독교대구노동자의집에서 노동 상담실장을 맡았고 희년공동체에서는 대표를 역임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여성연맹 및 여성노조에서 활동하며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출판기념회에는 故권영숙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거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 40여 명이 모였다.

고애신 전도사는 구미도시산업선교회 당시 故권영숙 씨를 회고하며 “우리 세상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총명했고, 스스로 고민하다 막히는 것이 생기면 진솔하게 토론하기도 했다. 다른 의중이 없는 사람이었다”며 “지금 노동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옳은 것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밀고 나간 그의 태도는 우리의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잘사는 세상, 돈 많고 잘 사는 게 아닌 바로 사는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위해 온 몸을, 온 삶을 투신한 그를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김용철 추모사업회 공동대표는“그는 유신 말기의 폭압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노동자들의 분노가 대중적으로 분출하던 전노협 건설 시기에 늘 맨 앞에서 투쟁했다. 이후에도 비정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한 그의 삶은 살아있는 전노협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었다며 “이번 추모집 발간도 대구지역 노동운동에서 그의 역사적 기록을 모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출처: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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