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오전 11시, 경주시 외동읍 ㈜서라벌골프클럽으로 진입하는 도로에 무장한 경찰들이 나타났다. 활짝 핀 벚꽃과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전투경찰이 출동한 이유는 노동조합을 결성한 노동자들이 사용자와의 면담을 요구하려고 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민주노총 경북일반노조 서라벌GC지회는 ㈜서라벌골프클럽(서라벌GC) 측에 면담을 요청하고 계속되는 단체교섭 결렬에 항의하고자 했다.
오전 10시, 면담에 참석하기 위해 본관으로 올라가려던 서라벌GC지회 조합원들은 사측직원 십 수 명에게 저지당했다. 이어서 현장관리동에 미리 대기 중이던 경찰이 나타났다. 본관 진입을 시도하는 노동자들과 통로를 원천 봉쇄한 경찰들 간의 몸싸움이 몇 차례 벌어진 끝에, 어렵사리 대표자면담이 성사됐다.
노동조합 측은 서라벌GC측에 ‘부당해고 철회’와 ‘성실교섭’을 요구했지만, 서라벌GC측은 ‘논의해보겠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을 남기고 노동자 측 대표자들을 돌려보냈다.
시간외근로수당도 못 받고 주6일 근무
노동조합 만들 수밖에
문제의 시작은 서라벌GC에 노동조합이 결성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는 일반적으로 문화유적지 등으로 잘 알려졌지만, 골프장이 많은 레저관광지로도 유명하다. 2000년대 초부터 골프업계가 호텔산업과 연계되며 호황을 맞았고, 경주 곳곳에 골프장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경주에 블루원, 경주신라, 마우나오션, 보문, 제이스시사이드, 경주컨트리클럽, 이스트힐 등 정규코스를 갖춘 대규모 골프장만 해도 7개가 넘는다. 서라벌GC는 1989년에 법인 설립을 신고했지만, 진입로 공사, 묘지 이전 등 문제가 생겨 골프산업이 한창 호황이던 2005년 문을 열었다.
강차환(36) 서라벌GC지회 수석현장위원은 2005년 서라벌GC에 입사해 올해로 10년째 골프장 코스를 관리하는 노동자다. 그는 처음 입사하고 6년 동안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 됐었다. 2011년, 회사가 노동자들을 직고용 했다. 간접고용 당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 노동이었다. 직고용이 되면서부터는 토요일 근무 포함 주6일 근무로 일하는 대신, 연봉에서 100만 원씩을 더 받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13년까지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시간외근로수당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심지어 연봉도 2년 동안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그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열악한 임금체계와 불안정한 고용조건 때문이었다. 2014년 5월, 그를 포함해 사무직 노동자 4명, 코스관리노동자 18명 총 22명은 회장의 권위적인 회사 운영방식도 지적하며 민주노총 경북일반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렸다. 하지만 곧이어 탄압에 시달린 노조원 22명중 12명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노동조합을 떠났다.
“내 아니면 너거 어디 가서 뭐 먹고 살래”
막말부터 거짓 진술서 작성 지시까지
노동조합 설립 4개월 만인 지난 해 9월, 김광택 회장은 직장폐쇄라는 강수를 두며 이제 막 노동조합을 설립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서라벌GC의 노조탄압은 거침없고 치밀했다. 직장폐쇄 이후 서라벌GC는 노동조합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며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코스관리팀장 이 모씨에게 사실과 다른 진술서를 작성케 했다.
최근 사표를 쓰고 회사를 그만둔 이 씨가 강차환 수석현장위원에게 “미안했다”며 메일로 보내온 파일에는 “현재는 노조원인 현장관리동 직원들이 노동쟁의를 하면서 작업을 하지 않고 있어 집중적으로 잔디를 관리하여야 하는 시점에 잔디 관리가 미흡하여 (중략) 그 피해가 막심한 실정”이라며 그 이유로 “노조원들이 노동조합 결성하여 회사를 어려움에 빠트려 노조원들의 요구사항을 회사에서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진술했다고 적혀있다.
노조에 따르면 직장폐쇄 이후 열린 노사양측 면담 자리에서 김광택 회장은 ‘내 아니면 너거 어디가서 뭐 먹고 살래’, ‘100억이 든대도 노조는 안 돼’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광택 회장의 계속되는 “갑질”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4개월의 투쟁 끝에 직장폐쇄를 철회시키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서라벌GC는 조합원들의 근로시간을 단축시키고 휴일근무를 없앰으로써 조합원들의 임금을 기존 150~200만 원에서 90~130만 원 수준으로 떨어트렸다.
또한 현장 복귀 이후 이들은 직원들로부터 수시로 감시를 받아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조합원들이 일하는 걸 옆에 앉아서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고, 틈틈이 무언가를 메모하는 식이었다.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으로 조합원 5명 해고...3주 째 천막농성 중
노조원들은 근로시간단축을 통한 임금삭감 외에도 사측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하거나 허드렛일을 지시받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끄떡없자, 서라벌GC는 2015년 2월 28일 전체 10명의 조합원 중 5명의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서라벌GC 정관에 명시되어 있던 정년 58세를 55세로 하향조정한 ‘취업규칙’이 해고의 근거였다.
해고 당시 강차환 현장수석위원이 받아 본 126쪽 짜리 취업규칙 변경 문건에는 시행일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4월 13일, 필자가 노동부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서라벌GC의 취업 규칙 변경 등록일은 해고일로부터 2주 뒤인 3월 18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라벌GC는 해고 당시 노조 측과 협의하지 않고 변경한 취업규칙으로, 노동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해고를 감행한 것이다.
관련 판례에 따르면 취업규칙 변경 시 노조와의 협의가 법적으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취업규칙 변경 전에도 정년 58세를 넘는 노동자가 있었다는 점과 변경 이후 노조원이 해고된 점을 고려하면 사측은 노조 탄압을 위해 취업규칙을 변경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이에 3월 23일부터 4월 현재까지 해고된 조합원들은 ‘부당해고 철회,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서라벌GC 앞 사거리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서라벌GC는 일과시간에 교섭을 열지 않는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근로시간 내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정되는 단체교섭을 의도적으로 근로시간 이후 시간대로 요구하며 교섭 해태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길 위에서 밥을 해 먹고 잠을 자며 천막농성에 돌입한지 3주 째. 조합원들은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중식, 퇴근시간대에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호소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김광택 회장은 강차환 수석현장위원을 만나 ‘젊은 사람이 손해배상 청구되고 가압류 당하면 평생 고생할 수 있다’는 협박과 회유도 해왔다. 하지만 강차환 수석현장위원은 해고된 조합원들과 함께 싸우기로 했다.
“노동조합 인정받아서 해고가 철회될 수 있도록 싸울 겁니다. 저는 해고가 안 됐지만, 그 분들이 우리의 미래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이 있어야 평생직장을 가질 수 있고요. 무엇보다 주위에 사람들이 누구나 일하러 오고 싶은 그런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강차환 수석현장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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