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제안] (8) 인종문제와 관련된 표현의 문제점

유럽은 하얀 대륙, 아시아는 노란 대륙인가요?
뉴스일자: 2014년12월17일 18시00분

[편집자 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뉴스민>이 함께 하는 [인권제안]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66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인권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2월 한 달 동안 총 13편이 연재 될 예정입니다. “인권의 바람이 통하도록 마음의 창을 열어주세요.”

2001년, 크레파스와 물감 등의 문구류에 쓰이던 ‘살색’이라는 표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가나인 커피딕슨 씨 등 외국인 4명과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특정 인종, 즉 황인종의 피부색과 유사한 색을 살색으로 표기한 것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차별행위를 조장한다”며 기술표준원장과 크레파스 제조업체 3곳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이듬해 기술표준원이 이를 받아들여 ‘살색’을 ‘연주황(軟朱黃)’으로 개정했는데 이번엔 초·중등 학생 6명이 “너무 어려운 한자어 사용은 크레파스나 물감을 자주 쓰는 어린이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자 인권침해”라며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기술표준원은 2005년 한국산업규격(KS) 표준 관용색 명칭을 전면 개편하면서 ‘살구색’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던 표현에 대한 작은 관심과 의문이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꿔낸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살색’처럼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는 인종 차별적 표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볼까 합니다.

1. 검은 대륙
흔히 아프리카를 말할 때 ‘검은 대륙’이라는 표현을 쓰는 매체들이 종종 있는데 이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륙에 사는 많은 사람의 피부색이 검다고 그 대륙을 “검은 대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요? 그렇다면 유럽이나 미주지역은 하얀 대륙이고 아시아는 노란 대륙인가요? 피부색에서 시작했지만 검은색이 갖고 있는 어둡고 음침한 이미지까지 더해져 부정적인 편견을 심어준다는 것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우리는 보통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등의 국가는 콕 집어 나라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아프리카’라는 대륙 이름으로 지칭하곤 합니다. 분명 여러 나라가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한꺼번에 묶어서 일컫는 걸까요? 비슷한 표현으로 ‘동남아시아’도 있습니다. 혹시 그런 표현들 뒤에 ‘미개하다’, ‘이성적이지 않다’, ‘우리나라보다 못 산다’는 선입견들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이처럼 개별의 국가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명칭으로 대상화해서 특정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인 거 같습니다.  

2. 흑형, 흑쌤
최근에 ‘흑형’ 혹은 ‘흑쌤’이라는 표현이 텔레비전의 종합편성채널과 신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이름이 아닌 정확히 누군지 알 수도 없고 때론 모두를 포함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포함하지 않는 일반적인 피부색으로 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더구나 백인이나 황인은 ‘백형’이나 ‘황형’으로 말하지 않으면서 유독 흑인만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어느 가게에는 ‘흑형 치킨’이라는 메뉴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기발하고 재밌는 표현으로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흑인을 비하하는 은어로 느껴지시나요? 분명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검은 대륙’처럼 우리도 모르게 품고 있는 ‘검은 색’에 대한 편견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3. 금발미녀
금발 머리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는 거의 볼 수 없으므로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금발 머리의 사람이 모두 미녀일 리가 없는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서양에서 금발 머리의 여성을 좋아하는 경향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금발 미남’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유독 ‘금발 미녀’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 속에는 여성을 성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무의식이 깔린 것은 아닐까요?

4. 푸른 눈
언론에서 서양 사람이면 무조건 푸른 눈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서양 사람이라고 하여 모두 눈의 색이 푸른 것은 아니며 오히려 푸른 눈의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외모가 서양 사람처럼 생겼다고 하여 덮어 놓고 푸른 눈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특정 신체부위를 가지고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표현하고, 심지어 그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를 사회적으로 우월한 것, 열등한 것으로 나누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또한 ‘푸른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 ‘푸른 눈이 본 한국’ 등의 제목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서양 사람들보다 부족하거나 합리적인지 않다고 여겨지는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물론 서양과 비교가 필요한 것은 비교해야겠지만 무작정 몇몇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 문화를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처럼 비유하는 것은 맞지 않는 거 같습니다. 이는 자칫 우리 스스로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씁쓸합니다. 혹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푸른 눈 = 선진국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렇게 신체의 특정 부분의 색깔이나 외모적 특징들을 인종이나 민족과 연결해 표현하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 외에도 ‘순혈’, ‘혼혈’, ‘토종’ 등의 표현은 민족우월주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외국인 선수를 ‘용병 수입’이라는 표현으로 지나치게 상품화해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차별적 용어나 표현들이 자칫 인종적, 민족적, 국가적, 지역적 편견을 조장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품게 할 수 있습니다. 혹여 서로의 ‘차이’로 서로를 구분 짓고 ‘차별’하게 만드는 세상을 원하는지요? 아무런 뜻이나 생각 없이 쓰는 단어 하나, 말 한마디에도 누군가는 상처받을 테고, 우리는 한 발 더 서로에게서 멀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에서는 이런 표현 하나하나에도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인권제안 연재 순서

1) 맞을 만한 사람은 없다. - 12월1일 박윤숙
2) 있으나마나 한 게 어디있나요? - 12월 3일 정지윤, 이희봉
3)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인권- 12월 4일 도경화
4)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로열석에 앉아야 하는 이유- 12월 8일 박현경
5)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12월 10일 권혁장
6) 모든 것이기에, 그 무엇도 아닌 인권을 묻다 - 12월 11일 전근배
7) 나에게 너무 어려운 자동응답 - 12월 15일 천종한
8) 인종문제와 관련된 표현의 문제점
9)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재, 남녀차별을 가르치다
10) 혐오를 금지하라(가제)
11) 학교를 떠나기가 가장 쉬웠어요
12) 좁혀지지 않는 마음
13) 가톨릭 노숙인 쉼터, 우리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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