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등을 한 그 남자는 굴뚝에 올랐다. 작업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보이는 상처가 똑같은 그 이는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맨소래담을 바른다. 그는 소주와 담배 연기에 허기를 채우면서 아궁이 속에서 타는 나무 소리를 한눈팔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오래 오래 보아 두라고 당부 아닌 당부를 한다. 누군가는 3650일이 서러워 길바닥에서 곡기를 끊고, 누군가는 200일째 굴뚝 위에 올라 생일을 맞는다. 칠순이 넘은 노모들은 언젠가는 뽑아내야 할 가슴에 박힌 철탑을 짊어지고 굴뚝과 길바닥을 찾는다. 절박한 몸들이 만나 희망의 소리를 내뿜는다. 그러나 크고 멋진 사람들은 절실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 <따뜻한 밥>의 신경현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당부>를 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고통스러운 현실을 수줍게 노래하던 그는 마흔을 넘겨 지리산 자락으로 갔다. 그는 12월이 오면 계약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며 절박한 몸들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시집 <당부>에 담았다.
‘작업복을 갈아입을 때마다/보이는 상처가/똑같다//부황 뜬 등/맨소래담이 묻어나는 어깨/관절과 관절 사이/넘나드는 통증들//작업복을 갈아입을 동안/서로를 힐끔 바라보지만/몸이 내는 신음소리 말고/다들 별 말이 없다//부러 먼 산을 보는/몸들,//담배를 입에 물고 나서야/짐짓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어제 다 끝내지 못한 공정에 대해서/작업 중 일어난 사소한 다툼에 대해서/이런저런/말들을 한다/목구멍을 올라오지 못하는 고통들/자꾸/미끄러지고’ -‘몸들’
‘맨소래담을 바르는 밤/비가 오는지/귓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들은/젖어 있고/결리고 쑤신 한숨이 내려와/앉아 있다//맨소래담 냄새는/아침이 와도/좁은 방안을 떠나지 못하고/다시/방안의 어둠을 더듬으며/땀 냄새와 피곤을 짊어진 한 남자의/앙상한 몸뚱이와 만날 것이다’ -‘맨소래담을 바르는 밤’ 중에서
시인의 몸과 노동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의 몸들은 맨소래담에 피로와 고통을 녹인다.
그 몸들은 꿀둑(굴뚝은/몸뚱이밖에 믿을 게 없는/사람의 뒷모습처럼/막막하다/시계를 벗어난 쪽으로/밤새 뿌연 연기를 뿜어내던/지금은 멈춰선 시간이/물끄러미 비에 젖고 있는/굴뚝 -‘굴뚝’ 중에서)에도 있고, 옥상(어느 곳에서 바라봐도/내려갈 계단 하나 없는/튼튼한 동아줄은커녕/썩은 동아줄 하나 내려오지 않는/옥상 -‘옥상’중에서)에도 있고, 시골(멍한 눈으로, 꺽꺽 목구멍으로 눈물을 토하는, 하늘 위로 끊임없이 헬기가 뜨고, 삐라처럼 뿌려지는 국가의 선무방송, 가을이, 깊어가는 가을이, 붉게 물들기 위해, 더욱 맹렬하게, 경찰과 공무원들,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천막 곁에 걸어 둔 밧줄, 죽기 위해 파 놓았다던 구덩이, 무사할까, 다들, -‘깊어 깊어가는 가을’중에서)에도 있다.
사계절 내내 추웠던 2014년이 지나가는 이 시간, 신경현 시인의 노래를 들어보자. ‘크고 멋진 사람들’이 듣지 않는, 들려주지 않는 삶의 당부(아궁이 속에서 타는 나무 소리를/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부터/바람이 잦아드는 곳까지/한눈팔지 말고/두 눈 똑바로 뜨고/오래 오래 보아 두거라 -‘당부’중에서)를. 그리고 그도 이제 ‘연애 시(時)’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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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 신경현, 도서출판 한티재, 2014.12.8, 96페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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