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제안] (2) 있으나 마나 한 게 어디 있나요?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합니다
뉴스일자: 2014년12월03일 16시05분

[편집자 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뉴스민>이 함께 하는 [인권제안]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66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인권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2월 한 달 동안 총 13편이 연재 될 예정입니다. “인권의 바람이 통하도록 마음의 창을 열어주세요.”

인권제안 연재 순서

1) 맞을 만한 사람은 없다. - 12월1일 박윤숙
2) 있으나마나 한 게 어디있나요? - 12월 3일 정지윤, 이희봉
3)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인권
4)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로열석에 앉아야 하는 이유
5)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6) 모든 것이기에, 그 무엇도 아닌 인권을 묻다
7) 나에게 너무 어려운 자동응답기
8) 인종문제와 관련된 표현의 문제점
9)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재, 남녀차별을 가르치다
10) 혐오를 금지하라(가제)
11) 학교를 떠나기가 가장 쉬웠어요
12) 좁혀지지 않는 마음
13) 가톨릭 노숙인 쉼터, 우리집 이야기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보기와 다르게 떫어서 먹지 못하는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빛 좋은 개살구’의 그 ‘개살구’입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나 물건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유명무실(有名無實)이라는 표현과 함께 쓰곤 합니다. 이름만 있고 실속은 없는, 점점 처음의 취지와 의미를 잃어가고 있어 있으나 마나 한, 일상 속의 ‘개살구’에 대한 두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합니다 / 정지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를 때나 유모차를 끌고 갈 때 또는 다쳐서 깁스를 하게 되었을 때 시설 이용에 불편을 겪어보신 적이 많을 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일입니다. 장애인 복지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며 가까이서 보고 느꼈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저희 단체 최 모 회원(지체장애 1급)의 민원업무를 도와드리기 위해 공공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건물 앞에는 경사로가 잘 설치되어 있었는데도 그 좋은 길을 이용할 수 없었다. 출입구를 떡하니 막은 채 세워 놓은 자동차 때문에 힘들게 높은 턱을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 중증장애 1급의 장애인 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시 ○구의 쌈밥집을 찾았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비어 있는 걸 확인하고 주차를 했다. 하지만 주차공간과 식당 입구를 연결하는 경사로를 청소도구와 종량제 봉투가 차지하고 있어 난감했다. 동행인이 있었기에 경사로 주변을 정리하고 식당에 들어설 수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장애인 친구는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과 인내가 비장애인들로부터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이처럼 장애인은 음식점을 이용할 때도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히곤 합니다.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위해 설치된 경사로가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일 때가 많습니다. 또한, 민간 건물뿐 아니라 공공건물의 경우에도 장애인 주차구역에서 건물로 진입하기 위해 설치한 경사로의 관리가 미흡한 곳이 많습니다.

경사로 앞에 주․정차되어 있는 차량, 쌓여있는 짐, 화분 등으로 인하여 장애인들은 큰 불편을 겪습니다. 대부분의 가게 입구에는 턱이나 계단이 있고, 설령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더라도 경사로가 너무 가파르거나 여러 장애물로 인하여 휠체어를 타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장애 인식 개선’이나 ‘장애인의 이동권, 접근권 보장’이라는 말들을 유명무실하게 만듭니다.

▲지난 4월,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사 사전 답사를 위해 228공원을 방문한 이민호 활동가는 경사로 없는 무대를 발견했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2014. 4. 4]

국가에서는 이를 보장하기 위해「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이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 및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 출입구에 이르는 접근로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유효폭과 기울기, 바닥의 재질 및 마감 등을 고려하여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률을 꼼꼼하게 만드는 만큼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편의시설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인, 임산부, 아동, 환자 등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하면, 말뿐이 아니라 정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지역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은 장애가 있거나 없는 사람,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 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인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 꾸준한 캠페인 활동이 우리를,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꾸어 가리라 믿습니다.

장애인도 대중교통 이용할 권리가 있다 / 이희봉

2008년 4월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 한다.)이 벌써 반 10년을 넘어섰다. 이제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복지시설 등이 장애인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하고 있고, 이 때문에 장애인의 사회 적응력도 향상되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변화가 더딘 것도 현실이다. 아직도 그들의 길은 멀고 어렵다.
 
대구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원 주변에는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거나 지하철에서 꽤 걸어야 하는 곳에 있다. 대구지역 지하철 2개 노선이 모두 그렇다. 반면 공원까지 접근이 가능한 버스노선은 대체로 충분히 운행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다. 저상버스의 운행비율이 꽤 높아졌지만, 장애인이 타고 내리는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때로는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물론 빡빡한 차량 운행 시간도 문제다. 그러나 매일 매시간 마다 장애인들이 정기적으로 승하차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한 번 버스를 이용하려는 장애인을 만나면 좀 더 배려할 순 없을까?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버스 정류장 한편에 가로, 세로 1m 크기의 장애인 버스 승하차장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기사에서 이미 설치한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다. 장애인 버스 승하차장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머물고 있다면 승차의 의사표시로 생각하고 반드시 정차하는 것, 이런 약속을 만들면 ‘승객을 보지 못했다.’, ‘버스를 타려고 하는지 몰랐다’는 변명은 사라질 수도 있다.  

복지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 중 하나이자 인권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사회권의 한 형태다.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법률을 제정하기도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도 그렇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8조는 첫째 시설물 접근에 있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둘째 시설물을 이용함에 있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 제4항은 ‘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교통사업자나 교통행정기관에서는 관련 법률들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을까?

직접적인 제한만이 제한이 아니다. 장애인에게 직접 시설이용을 금지하지 않더라도 그 시설물에 가기 위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면 결과적으로 차별하는 것이다. 정당한 편의를 정당하게 받도록 하는 것, 그것이 권리 보장의 출발점이 아닐까?

▲부족하나마 시내버스노선에는 저상버스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시외버스, 고속버스 가운데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는 없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201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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