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제안] (1) 맞을 만한 사람?…은 없다!

뉴스일자: 2014년12월01일 14시45분

[편집자 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뉴스민>이 함께 하는 [인권제안]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66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인권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2월 한 달 동안 총 13편이 연재 될 예정입니다. “인권의 바람이 통하도록 마음의 창을 열어주세요.”

인권제안 연재 순서

1) 맞을 만한 사람은 없다.
2) 있으나마나 한 게 어디있나요?
3)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인권
4)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로열석에 앉아야 하는 이유
5)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6) 모든 것이기에, 그 무엇도 아닌 인권을 묻다
7) 나에게 너무 어려운 자동응답기
8) 인종문제와 관련된 표현의 문제점
9)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재, 남녀차별을 가르치다
10) 혐오를 금지하라(가제)
11) 학교를 떠나기가 가장 쉬웠어요
12) 좁혀지지 않는 마음
13) 가톨릭 노숙인 쉼터, 우리집 이야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상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학교에서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고부터였다.

성폭력 피해자와의 쉽지 않은 소통으로 상담 접근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마침 ‘대구여성의전화’에서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하는 것을 알았고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에 참여하면서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나는 성폭력 피해자 인권지원 업무에 지원하게 되었다.

첫 상담 장면에 들어가기 전 매우 긴장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피해자’라고 이름 붙여진 이들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지라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만난 피해자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여성이었고, 예전의 사회생활에서 흔히 겪었거나 들었던 일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혼자서 전전긍긍했던 고민들, 그 문제들과 나는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피해자와 함께 많은 분노감을 느꼈고 울기도 웃기도 하였다.

상담 장면들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쌓여 갔고, 연일 방송매체는 성폭력을 보도하는 것만 같아 우울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최선을 다해 지원하였지만 법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질 때면 ‘내가 왜 굳이 이 일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어렵게 기소가 되었으나 성폭력 가해자의 처벌이 너무도 관대하여 피해자들과 더 큰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배활동가들의 도움과 상담을 받았고, 동료들의 지지와 격려도 있었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에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해자를 가볍게 처벌하는 법이 넘어야 할 벽처럼 느껴졌는데 사건을 접할수록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진다. 어느 사건을 막론하고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였고, 이를 지켜보는 대부분 사람들도 가해자의 편에 선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피해자 유발론이 압도적이다. 얼마 전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해 서명운동을 할 때였다. 60대 여성 세 분이 “맞을 만했으니까 그랬겠지.”라는 말을 남기며 우리를 지나쳐 갔다. 서명을 받던 우리는 한동안 멍하니 그 세 사람의 발걸음만 쳐다보았다.

똑같은 피해를 본 여성이지만 직업과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 기혼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 ‘결혼도 했으면서 그까짓 허벅지 한 번 만진 것으로 뭘 그렇게 유별을 떠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폭력 피해 여성에 대해 이런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교육하고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폭력 사건’을 마주할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아니 적어도 가해자의 상황이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속상하고 좌절도 맛보지만 여기서 그만 멈출 수는 없다. 더디더라도 때론 상처받더라도 그들과 함께 변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인권운동이다.

피해자의 인권 회복과 치유야말로 사건 지원의 큰 목표라고 생각한다. 사건지원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매 순간마다 피해자의 요구를 세심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걸음이 ‘성폭력 없는 사회’, ‘여성의 인간다운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선배 세대들의 헌신적인 운동의 결과 위에 더해져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