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김전한의 스토리텔링 (12)

시선의 원칙
뉴스일자: 2014년08월09일 05시35분

Chap 2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3. 시선의 원칙

 작가적 시선의 원칙? 시선에도 원칙이 있냐고요? 네에 있습니다. 형식적 원칙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내면적 원칙입니다. 그럼 그 시선은 어디로 향한 시선인가요?

 단정적으로 말씀 드릴께요. 인간을 향한 시선이지요. 인간이 빠져버린 이야기는 상상할 수없겠지요. 네에? 개미들만 나오는 소설도 있었다고요? 신들만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허지만 몸체만 인간 아닌 대상을 빌렸을 뿐입니다. 그 안에는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투사시켜 두었기 때문에 개미던 신이던 그것은 모두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며내려면 형식적 문법 익히기 이전에 인간에 관한 세심한 관찰력이 있어야겠지요. 인간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려면 먼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실려 있어야겠지요. 사랑이란 뭘까요? 관심이라는 단어와 동의어 이겠지요. 그럼 관심은 또 무엇입니까? 이해라는 말과 연결이 되지요. 그를 혹은 그녀를 향해 애정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은 당연히 넓어지겠지요.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런데 그 관심은 맹목적이면 곤란하겠지요. 어르신들의 인생 스토리가 지겨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 자신만의 애환에 너무 맹목적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공식적으로 들려주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맹목적이지 않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 봐야 겠지요. 그리고 따뜻함의 시선에 무엇인가 덧붙여 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 덧붙임은 무엇일까요?

 뒤집어 보기입니다. 옆구리 치고 들어가 보기입니다. 입장 바꿔 보기입니다. 고착화되지 않은 입체적인 사고가 필요하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통념화 된 시선으로만 본다면 뭐하러 힘들여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재미란게 그렇지 않습니까. 엎치락뒤치락 하는 코미디만 재미 있는게 아니지요. 작가 특유의 새롭고도 독특한 시선이 들어갈 때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재미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말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으음... 뭐가 좋을까아?....아! 몇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어느 50대의 여자 경찰서장이 사창가 관내로 부임했습니다. 그녀는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했지요. 모든 미디어들은 그 분을 여성전사, 영웅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분이 하신 일은 충분히 대접 받을 만 하지요. 포주 측 모임에서 그 분에게 협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공교롭게도 포주 측 대표는 남성이었지요. 그 여성경찰과 동갑의 나이였더군요. 미디어는 정의와 불의의 경계점을 정확히 구분해 두고 사건을 속속들이 알려주었지요.

 전문 이야기꾼이라면 이 상황을 뒤집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래 상황은 저의 작가적 상상력입니다. 포주를 미화시키려는 의도는 아니니 오해 마세요. 뒤집어 이야기 시작합니다.  불의의 대표격인 포주대표 50대의 남성을 향한 새로운 시선 말입니다. 이를테면 그 남성은 비록 포주인생을 살아왔지만 누구보다도 매춘녀에게 애정이 깊은 사람입니다. 매춘도 이제 진보된 산업화가 되어야 한다는 경영철학(?)이 있습니다. 그러한 경영철학(?)으로 자신은 지금껏 합리적으로 사창가를 운영해 왔습니다. 또한 그 남성은 흔히 연상되는 포주의 칙칙한 이미지가 아닙니다. 경쾌하고도 낙천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포주라고 해서 직업애환은 없겠습니까?

 한편 여성경찰은 왜 그 전쟁에 몰두하게 되었을까. 약간의 공명심으로 그 출발은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상황은 부풀려집니다. 미디어는 그녀를 영웅화 합니다. 이건 아닌데 싶지만 미디어의 이미지에 배신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미디어의 이미지에 끌려가는 꼴이 됩니다.
영웅과 악의 상징이 된 동갑내기 남녀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봅시다. 실제내면의 진실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인간세상의 실제 상황입니다.

 인간을 향한 시선을 말하려다 조금 장황해졌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선과 악을 기계론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통념화된 정의와 불의에 관해 다른 시각으로 상상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딱히 그 여자경찰을 위선적 인간으로 몰아 부치자는 게 아닙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 휘말려버린 한 인간을 들여다 보자는 것이지요. 미디어의 피해자로 그녀를 상상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문의 기사와 그 기사를 토대로 한 창작품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리기를 우리는 이야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시나리오라는 장르는 익숙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전문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전문 이야기꾼이 될 수 있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이야기를 그저 주절주절 지껄여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부딪히는 상황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 상황을 자신만의 향기가 담긴 시선으로 재편성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그 능력은 타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노력으로도 가능합니다.

 창작에 있어서 흔히 영감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 영감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늘 긴장된 마음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필수품입니다. 그 시선의 안테나가 곤두서 있을 때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애정이 실리지 않은 시선으로는 백년을 함께 있어도 곁의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늦추지 않는 시선으로 곁의 존재를 느껴 보면 한순간에도 그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그 찰나의 보임을 우리는 영감이라고 말하나 봅니다. 

 이제 이 활자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한 번 쓰윽 살펴보세요.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가까운 줄 알았는데 아주 먼 사람도 있습니다. 늘 불편했는데도 문득 소중해지는 그 혹은 그녀가 있을 것 입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익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면 그저 익명입니다. 마음으로 조금만 들여다보세요. 보폭의 작은 움직임에도 각 자의 색깔이 보일 것입니다. 그 보폭의 어깨너머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 보따리를 진 채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을 향해 편견 없는 시선의 문을 열어보세요. 그 시선의 문이 열리면 우리는 이야기꾼으로서 반쯤은 달려 나온 것입니다.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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