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만화산책] (13) 존재가 머무는 집, 그린 웨이브

부정 선거에 맞선 이란 민중의 싸움, "내 표는 어디에 있는가!"
뉴스일자: 2014년05월27일 17시30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랍니다. 우린 평생 언어로 집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집짓기 철학 하나쯤 지녀도 좋겠지요. 여기 주목할 만한 건축철학이 하나 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건축가, 필립 존슨의 명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은신처는 농경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배를 채우고 나면 쉴 곳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늘 쉴만한 공간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봉건제도가 있던 때, 상놈이란 말은 서러운 집이었지요. 하이고 못 살겠다 소리가 절로 나올 때, 우리는 때로 뒤척이고, 집을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진화를 하였지요.
 
 2009년, 이란은 뒤척이고 있었습니다. 선거일에 투표소가 봉쇄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을 뽑는 날이었지요. 무장경찰이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 투표용지가 떨어졌답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요. 잠시 후 언론 검열이 전화는 불통이 되었고요. 야당 후보는 간첩혐의로 구금됩니다. 부정 선거의 징후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지요. 못 살겠다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어쩌나요 불편해 죽겠는데. 그럼 밖으로 뛰쳐나가야지요.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내 표는 어디에 있는가!” 곧 방망이와 총탄이 돌아옵니다. 많은 국민들이 실종됩니다. 인권 유린과 고문의 소문들이 들려옵니다. 심부름가다 공연히 맞아 죽은 어린 소년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집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웃 나라들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온 이란인들. [출처=http://blog.leiweb.it/marialatella/files/2009/06/iranian-supp.jpg]
 
 그런데 이란 정부가 국경을 봉쇄해버렸습니다. 외국 기자는 입국금지였습니다. 명분은 내정 간섭, 우리 집 일에 상관 말라는 거지요. 이들의 사정을 알 수 없는 외신들은 점점 관심사를 바꾸었습니다. 점차 외교적 이익이나, 핵무기 문제들이 주요 쟁점이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민주주의 국가는 거대한 밀실로 변신했습니다. 이란인들의 민주투쟁은 폭동으로 왜곡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집권당의 조작이었지요.
 
 그나마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란은 인터넷 사용자가 많습니다. 그것은 인구의 60%가 30세 이하의 젊은 층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알리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쫓기는 마당에 영상 촬영은 한계가 있었겠지요. 또한, 찍었다고 해도 상황을 묘사하기엔 너무 파편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표현 수단은 언어였습니다. 이란인들은 투쟁의 참상을 몇 마디 언어로 풀어내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란 정부가 꽁꽁 숨겨왔던 진실이 80분짜리 장편 영상으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이 영상의 제작자는 독일 다큐멘터리 감독 알리 사마디 아하디입니다. 그는 이란 출신입니다. 열두 살 때 이란 이라크 전쟁을 피해 혼자 독일로 왔지요. 그에겐 이란에 대한 향수가 있었습니다. 이란인들이 고통받자, 그는 그것이 자기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약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도 그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을 테니까요. 그는 이란의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국경 봉쇄로 이란 행은 불가능했지요. 그때, 그의 머릿속에 이란인들이 인터넷에 익숙하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이란 웹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지요. 그것이 무려 1500여 개나 되었습니다.
 
▲그린웨이브 포스터
그런데 이 집념의 사나이 아하디에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의 건축 재료가 영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란인들은 영상 촬영할 상황이 아니었지요. 남은 건 언어 자료뿐이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영상으로 재현해낼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는 블로그 진술들로부터 가상의 두 남녀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애니메이션화 했지요. 끊임없이 자신들을 알리려는 이란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제목은 ‘그린 웨이브’(The Green Wave, 독일·이란, 2010)였습니다. 변화를 약속했던 야당 후보의 상징이 녹색이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녹색 수건으로 거리를 뒤덮었거든요.
 
결국, 외신들에 의해 경제적, 정치적으로만 보도되던 이란의 참상이 인권의 문제로 다시금 세계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각종 인권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청중은 분노했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더 이상 반란이나 폭동이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집을 짓기 위한 여정이자, 존재의 증명이었습니다. 쉴만한 공간을 짓는 일,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존재이고 싶을까?’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