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판 아우슈비츠에 고함

어디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었더냐.
뉴스일자: 2014년05월09일 13시46분

죽여도 너무 죽인다. 삼풍백화점으로 깔려 죽고 성수대교로 떨어져 죽으며 대구지하철참사로 갇혀 죽고 용산에서 불태워 죽이며 장애인을 불살라 죽이는 나라.
죽여도 너무 죽인다. 한 해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2000명이 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동자의 두개골을 함몰시키며 반도체 백혈병으로 어린 소녀들을 죽이고 세월호 일반인과 학생들을 죽이는 나라.
깔려 죽고 맞아 죽고 불태워 죽이는 나라, 이곳은 나라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그 잔인성, 극악무도함으로 보아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쌍차에서 노동자와 그 가족은 얼마나 죽었으며 지금도 울산에서 밀양에서 전국에서 소리소문 없이 생명들이 지고 있다.
이 처참한 상황에서도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세월호에서 죽은 사람이 적다고 막말하는 이곳.
라면에 달걀 넣은 것 아니라며 장관을 비호하는 청와대 대변인 같은 작자들이 창궐하는 이곳.
상중에 검은 양복을 입지 못하게 하는 이곳.
애도와 분노를 넘어 유가족들이, 시민들이, 노동자들이 직접행동에 돌입한 이 순간에도 오직 권력과 정권, 청와대, 박근혜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이곳.
이곳은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더더욱 아니다.
없다, 우리에게는 나라도 정부도 국가도 없다.
국가가 내팽개친 가족과 유가족들만 있을 뿐이다.
자본이 죽여버린 노동자 민중들만 있을 뿐이다.
재벌의 탐욕과 자본의 이윤을 방조하고 규제완화 독점 사유화로 재벌과 자본의 게걸스런 탐욕을 고무 선동한 국가가 어디 국가이던가.
흡혈박쥐도 다른 흡혈박쥐가 기아에 허덕이면 자기 몸의 피를 토해 내 생명을 살린다.
흡혈박쥐보다 못한 짐승들과 야수들과 야만이 똘똘 뭉쳐 더러운 욕망을 추구하는 이곳에 어디 국가가 있었던가.

[출처=참세상]

미안하다니, 뭐가 미안하다 말해야 할 것 아닌가.
어른들이 잘못햇다니,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 아닌가.
내 몸 안에 이명박을 키우고 내 정신 속에 박근혜를 심어 놓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그게 화근이었다고 고백해야 하지 않는가.
개발의 욕망과 시세차익과 환차익과 주식으로 한껏 몸을 불리고 권력과 권위주의를 탐했다고 고해성사해야 하지 않는가.
나의 피를 토해 내 이웃을 살려내지 못했다고, 어린 학생들을 구제하지 못했다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 아닌가.
사월 십육일 이후 이틀 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에어포켓을 떠벌리며 여론을 호도한 언론에 일말의 희망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내가 바보라고 자책해야 하지 않는가.
수많은 생명들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희생당하고 학살당할 때 나는 제대로 싸워보지 않았다고 눈물을 흘려야 하지 않는가.
여성과 남성을 떠나,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수많은 노동자, 시민, 학생들이 목련꽃처럼 속절없이 떨어질 때 나는 그들의 눈길 한 번 제대로 어루만져 준 적 없노라고 엎드려 빌었어야 하지 않는가.
무고한 사람들을 직접 죽인 광주항쟁 이후 국가가 간접 살인을 대거 저지른 이 참사 앞에 나는 행동하지 못했노라고 박근혜 정권 퇴진 한 번 외치지 못했노라고,
금쪽같은 자식을 잃어 자지러지며 쓰러지는 유가족들 앞에서 오열하지 못했노라고, 유가족들을 세월호가 죽이고 해경이 죽이고 장관들이 죽이고 언론이 죽이고 대통령까지 나서 죽이며 유가족들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 죽이고 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지금 여기서 나는 나를 버리지 못했노라고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지 못했노라고, 광분하지도 비분강개하지도 못했노라고 나 스스로를 질책해야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국식 국가안전청 설치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사안전감독관 제도 신설이 아니다.
벙어리 장관들을 불러 놓고 꾸중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권위주의 독재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말하는 국가개조 수준이 이 정도라면 세월호 참사는 계속된다
그러한 국가개조론을 곧이곧대로 들을 정도로 우리는 미개인이 아니다
딱 고 수준의 국가개조론을 이야기하는 자, 그가 미개인이요 야만인이다

차라리 노동자 민중에게 나라를 넘겨라.
가만히 앉아 우리들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
너희들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자본이 던져주는 그 알량한 임금과 국가가 눈꼽만큼 데어주는 그 시혜에 만족해하며 히죽거리는
거렁뱅이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는 너희들이 꿈꾸지도 못할 눈물을 가진 사람들이요,
우리는 너희 지배계급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며,
우리는 너희들에게 없는 무한공감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눈물 폭풍을 뚫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침팬치도 코끼리도 공감의 능력이 있거늘
유가족들에게 우리들에게 공감 한 번 보여주지 못한 너희를 일러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겠느냐.

안전불감증이라는 말로 사태를 호도하지 마라.
세월호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화재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은 유가족들을 우롱하지 마라.
경찰을 동원해 국민들의 입과 귀를 틀어막지 마라.
선거를 뚫고 월드컵의 열기를 끄며 우리들의 분노,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는 저항으로 번져간다.
막지 마라, 막히지도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전면 철폐요 시장전체주의의 완전 붕괴다.
규제완화로 선박 수명을 늘려 장사하게 해주고 인천 제주 간 항로 독점을 용인하며 잠수까지 독차지하게 한 그 더러운 커넥션들, 청해진 자본에게 언딘 하청을 대 주도록 방조한 국가, 노동자들을 자살로 죽음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며 노동자 민중을 비정규직, 저임금의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이곳을 다시 판 짜는 일이다.
국가개조는 너희들 미개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볼펜이나 굴리며 윗선 눈치나 보는 너희들, 지배계급이 하는 것이 아니다.
만민공동회처럼 밑으로 끓어오르는 분노가 응축되어 결연히 일어서는 사람들의 몫이다
한국 전쟁 다음 날 부리나케 도망가서 서울에 있다고 뻔뻔하게 국민을 기만한 이승만이, 김신조 간첩사건 이후 지 살려고 먼저 튀겠다며 금호터털을 뚫은 박정희가 국가개조를 이야기한다면 천부당만부당하다.
학생들은 차가운 물 속에 있는데 아가리에 라면이 잘도 넘어가던 장관들이 할 일이 정말 아니다.
상식도 철학도 없고 생명의 존엄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뇌아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디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었더냐.
한국판 아우슈비츠 수용소 아니었더냐

예감

다 다독여주지 못해 미안하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 다 먹지 못하고 떠난 이가 어디 한 둘이더냐
세상 구경 미처 다 못하고 떠난 이들이 어디 한 둘이더냐
다 어루만져 주지 못해 미안하다
오월의 햇살은 너를 어루만져 주고
가슴 뻥 뚫리도록 바람도 보내주었으나
햇살도 바람도 넉넉히 받지 못하고 떠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
이팝나무야 민들레야 장미꽃아
어루만져 주지 못해
눈에 다 담아주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너희들처럼 봄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어디 한 둘이란 말이냐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서러워 마라
강물소리 흠뻑 듣지 못하고
새소리 귀청 따갑게 듣지 못하고
돋는 해 붉게 보지 못하고
떠나는, 떠난, 아니 떠나갈
인생들이 생명들이 어디 한 둘어더란 말이냐
여기 생명들이 목련꽃처럼 소리 없이 지고 있다
내년 봄 이맘때 쯤이면 다시 쉬이 돌아올 이팝나무야 민들레야
눈길 한 번 받지 못했다고 눈물 흘리지 마라
지긋이 눈 한 번 감아주지 못했다고 칭얼대지 마라
죽음의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고 억장 무너지지 마라
더 이상 수다 떨 이도 친구도 없다고
더는 따뜻한 손길 비비지도 못하게 됐다고
보드랍게 얼굴 부비며 다가오는 봄 햇살 더는 만지지 못하게 됐다고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너희들의 피눈물 우리가 받아 주마
봄날처럼 쉬이 돌아오지 못할 너희들의 생명 앞에서
혈서를 쓰마
너희들의 어머니 아버지 누나 오빠 동생 친구들
우리가 지켜 주겠노라고
이 더러운 세상 꼭 한 번 바꿔보겠노라고

- 2014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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