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에서 제국으로

[기고] 탐욕의 제국을 관람하고
뉴스일자: 2014년03월31일 16시50분

2000년대 초반 삼성그룹의 소유/경영주인 이건희 회장과 그의 3남 이재용간의 불법증여문제가 불거지고, 삼성생명의 금산분리원칙 위반에 청와대가 손을 들어주는 등 삼성편향적인 정책적 고려가 계속되자, 삼성공화국이라는 별칭이 삼성그룹에 부여되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삼성그룹에서 발생한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삼성 엑스파일 문제라든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라든지. 하지만 삼성에 대한 가장 큰 승리를 이룬 것은 바로 삼성그룹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고 죽거나, 죽어가는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십여 년 동안의 그들의 삶 일부를 들여다본 영화가 최근에 2개가 개봉했다.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이다. 두 영화 모두 한국사회 권력의 심급 중 하나인 삼성을 겨냥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했고, 극장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또 하나의 약속>이 가족사를 극화함으로 삼성의 문제를 보여준다면, <탐욕의 제국>은 공화국이 아닌 제국으로서의 삼성을 보여준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국가기관조차 삼성의 입장과 다르지 않으며, 노동자와 국가와의 재판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삼성을 보여준다.

▲출처=<탐욕의 제국> 공식홈페이지 http://blog.naver.com/empire2014

제국을 탐색하는 이 영화(탐욕의 제국)는 다양한 각도에서 삼성제국의 외면과 내면을 보여준다. 높이 솟아 있는 빌딩과 공장, 사택을 말없이 응시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컨테이너를 보여줌으로써 강력한 물질적 생산력과 그것에 비해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면시킨다. 저 높은 빌딩과 공장에 충성하고, 충성할 수 있기 바라는 수많은 개인이 시선이 바로 제국을 유지하는 비결임을 이 영화는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보여준다.

제국은 생산력에 압도된 수많은 개인의 무표정으로 외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작 몇십 명의 시위대나 기자회견, 몇 명의 국회의원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을 예비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눈앞에서 휠체어 탄 채 항의하는 노동자의 호소에도 지그시 눈을 감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마치 ‘너희는 우리 제국의 신민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가족들의 증언에서 나오듯 거액의 돈으로 합의를 종용하는 한반도 지배집단의 종특도 빠지지 않고 발휘한다. 노동자의 마지막 가는 길도 방해하고, 피케팅도 못하게 하는 전통적인 방해수작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제국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은 늘 그렇듯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소박한 보통사람들이다. 육회 한 접시와 소주에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장기간의 산업재해치료를 온몸으로 버텨내며, 청계천을 걸어보고 싶은 이들. 이들은 거대한 벽과 수많은 유혹과 고난에도 이 싸움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우직함이 바로 이 제국이 얼마나 허상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살아있지만, 부자유스런 몸짓으로, 고통스럽지만 끈질김의 감정으로 폭로하고 있다.

박정희의 산업신화의 모순을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과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여공들이 폭로한 것과 같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첨단산업으로 외피를 두른 삼성제국의 신화를 이들은 노동자들의 육체를 산산조각 냄으로써 유지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물론 앞선 박정희의 겨울공화국과 이건희의 삼성제국 발전은 노동자 건강 저발전의 발전(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억압이 있다면 저항이 있는 법, 타인들이 그 거대한 탐욕에 움츠러들 때 바보처럼 나서는 이들이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이처럼 무모하게 끊임없이 싸우는 이들에 대한 헌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지난한 과정이 끝이 나지 않을지라도. 조언해줄 전문가도 매우 적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모이고, 이야기하고, 또다시 삼성제국 앞에 당당히 서서 외치고 알려나간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작은 승리도 맛보았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탐욕으로 구성된 이 제국은 그동안 묵묵히 집회에 사용된 앰프소릴 반사만 하듯이 우뚝 서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몸으로 백혈병과 희귀질환이 삼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증명한 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더라도 말이다. 영화는 그것을 예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적 문법과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탐욕의 제국>을 더 이상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유명한 시로 이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마무리 하려 한다.

오라, 전투에 참여하라
그곳에서 아무도 패배할 수 없다.
비록 육신은 약해지고 죽을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남아 승리를 이룰 것임으로.   

▲장지혁(대구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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