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만화산책] (5) 폴란드 포스터의 세계

우리는 어떠한 가치로 예술을 평가하고 있을까요
뉴스일자: 2014년03월05일 11시03분

바흐를 듣습니다. 그의 리듬은 삼백 년 동안 젊음으로 싱싱한데, 나만 늙는구나 싶네요. 지금의 예술품 중 어느 것이 먼 훗날까지도 유효할까요? 4월의 벚꽃처럼 낙하하는 상념입니다. 그 생각의 진원지는 폴란드 포스터였습니다. 대중적인 포스터라기보다는 마니아적 예술품에 가까웠지요.

저는 그것이 무엇에 쓰는 포스터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곧 포스터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할리우드 명작 영화의 폴란드 판 포스터라는 것입니다. 이 기괴함으로 대중을 끌 수 있다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70년 전에 만들어진 이 포스터들은 수천 달러를 호가합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포스터를 만든 것일까?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유럽 예술가들의 도피처였습니다. 그중에는 다수의 영화감독과 배우도 있었지요. 영화 시장은 포화 상태였습니다. 관객 유치 경쟁이 뜨거웠지요. 자본주의 영화 시장에서 관객은 곧 돈이었습니다. 감독들은 앞다투어 '관객이 열광할만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곧 주요 수출 품목이 되었고, 세계의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야말로 할리우드 열풍이었습니다.

종전 후, 세계는 두 진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유럽의 사회주의 진영은 할리우드 영화를 마냥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할리우드 영화에는 종종 자신들의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사 대부분은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재계와 가까웠지요. 영화사들은 돈을 받고 영화에 정치적인 내용을 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은 앞다투어 검열을 시작했습니다. 폴란드도 예외는 아니었죠.  

당시 폴란드에는 Film Polski가 있었습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독점 영화 배급기관입니다. 수입 영화 배급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 기관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미국 영화에 대한 검열은 엄격 그 자체였죠. 체제에 반하는 영화는 애초에 상영 금지였습니다.

그런데 검열을 통과한 영화를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할리우드의 상업 광고 포스터를 받아오는 것은 불가능했죠. 배급 기관은 폴란드 고유의 문화적인 포스터를 원했습니다.

▲미국(왼쪽)과 폴란드(오른쪽) 포스터의 비교. 영화 <베니의 주말> (1989년 작)

마침 그때, 폴란드는 포스터 아트의 전성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냉전 속에서 폴란드는 자국의 체제가 더 우수하다고 선전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거든요. 그게 바로 포스터였던 거죠. 더 우수한 포스터, 더 예술적인 포스터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치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급기야 포스터 전문 예술학교가 세워지고, 포스터 아트를 깊이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작품 수준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포스터 아트는 정치활동을 뛰어넘었고, 폴란드는 벽보예술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능력자들을 활용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포스터 예술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폴란드적인 영화 포스터를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주문받은 영화는 이미 걸러진 작품이라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없었지요. 영화를 배급하는 기관이 하나뿐이어서 경쟁할 필요도 없었고요. 할리우드와는 달리 대중성과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포스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철저하게 예술 지향성의 포스터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포스터 아티스트들은 작품 활동에 억압구조가 없었습니다. 특히, 상업과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건 예술가들에게 있어선 천국이었죠. 그들은 그저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포스터를 만들어내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포스터 작가들은 예술가의 작위를 받았죠. 이에 포스터를 그리려는 사람이 많아졌고, 전문화된 교육과정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예술 그 자체인 포스터의 탄생은 사필귀정이었죠.

물론 이 포스터가 바로 세상으로 나갈 순 없었습니다. 예술위원회의 승인이 필수, 그러나 예술위원회는 내용에 관해서는 검열하지 않았습니다. 검열의 기미가 있는 내용은 이미 배급기관에서 걸러졌기 때문입니다. 예술위원회는 오직 미적 기준의 유무만 평가했습니다. 예술가들에게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던 셈입니다. 그들의 작품은 쉬르레알리즘(프랑스어: Surrealism, 초현실주의. 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진 예술사조로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남겼다)적이기 까지 하였습니다. 대중을 향한 포스터가 쉬르적이라니~!

▲ 미국(왼쪽) 폴란드(오른쪽) 포스터 비교. <애정의 조건> 1983년 작.

포스터를 많이 접했을 그 당시 사람들도 어쩌면 이게 뭔가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예술가를 고용한 배급사는 오로지 예술만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심미안이 높은 사람을 두루 기용해 포스터를 평가받게 했을 테고요. 

냉전시기, 포스터 예술가들은 상업적인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술적인 실험에 온몸을 던질 수 있었지요. 그들의 관심은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고민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예술의 민주주의가 꽃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냉전 후 폴란드의 포스터 학교의 수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포스터 아트가 상업적인 구조에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많은 예술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예술가의 예술적 고민은 질타를 받지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폴란드 역시 경쟁적인 환경에 포스터아트를 노출했다면, 지금과 같은 문화유산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작정 대중의 취향에 맞는 것을 생산하는 것만으로 양질의 문화유산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대중의 취향에 지나치게 끌려다니지 않도록 조절이 필요하겠지요.

우리는 한 국가를 떠올릴 때 그 나라의 문화를 함께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문화에서 예술은 중요한 일부이죠. 예술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 그래서 예술이 오롯이 예술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흐의 멜로디와 같은 고전의 힘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참 희한하지 않나요? 300년 전 만들어진 바흐의 선율이 가장 모던하다는 사실이.

냉전 시기 폴란드 포스터 예술가들은 지금도 최고 예술 세대로 불립니다. 또한 그 시기 포스터는 현대 예술 명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요. 사회주의 속에서 70년을 살아남은 포스터 아트, 그것은 우리에게 예술을 평가하는 또 다른 가치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과연 우리는 어떠한 가치로 예술을 평가하고 있을까요?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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