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40)

마태복음 1:18-25 "성령으로 잉태하다"
뉴스일자: 2013년12월24일 12시51분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출처=변호인 홈페이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영화 '변호인'이야기를 좀 하겠다.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 송변이 맡은 시국사건 재판 첫날, 시작하기 전에 담당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상견례를 하는데,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화기애애하다.

그 모습에서 몇 가지를 느끼게 했다. 이 재판은 요식절차에 불과하다는 것, 진실을 가려내자는 재판의 본질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공안들이 불법납치장기구금, 살인적 고문을 통해 억지자백을 받아낸 조작사건 역시 그대로 묻혀버릴 거라는 짐작을 낳게 했다. 그 속에서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송변만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서 있다.

이 장면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세력의 카르텔이 얼마나 끈끈하고 깊은가에 대한 한 단면이다. 카르텔에서 가장 잘 쓰이는 말은 '침묵의 카르텔'이다. 이익을 위해 약자 또는 타자의 고통이나 불이익에 대해 일부러 침묵하여 자기 집단의 이해관계에 동조하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장면은 법조계에 만연한 침묵의 카르텔을 잘 보여주었다. 정치권력의 폭력을 견제해야 하는 사법부가 견제는커녕, 자기들의 안전출세성공을 위해, 권력에 희생당하는 민주주의, 약자,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재판모습이 30년 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아서 우울했다.

서두에 영화이야기를 빌려서 인간연줄의 가장 고약한 형태인 카르텔을 말하는 이유는 오늘 성경말씀의 주요 내용인, 예수의 탄생이야기를 풀기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1:18)

나는 오늘 예수읽기에서 예수탄생의 핵심인 '성령으로 잉태하다'에 주목하려고 한다. 독자들도 이 대목이 매우 궁금할 것이다.

그전에 마리아와 요셉의 혼인관계를 잠깐 보자. 이스라엘 혼인은 세 단계이다. 혼인계약, 혼인식, 신방치르기이다. 약혼은 혼인계약을 뜻한다. 그다음 일 년 정도 후에 혼인식을 하고 신방에 들어간다. 즉 마리아와 요셉은 혼인계약만 하고 혼인식과 신방치르기는 아직 안 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당사자들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경은 담담하게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서술한다.

이 말씀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사건은 너무도 중요해서 기독교의 대표적인 신앙고백문인 사도신경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우리가 아는 대로 아이의 잉태는 남녀 간 성관계의 결과이다. 남녀 간 성관계 아닌 방법으로 아이가 태어날 수는 없다. 이것은 하늘이 정한 자연계 질서이다. 그런데 성경은 다른 방법의 출생을 말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았다고.

성령잉태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같은 생물이론과는 분명 다른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성경은 마리아의 잉태에 대해 완전히 침묵한다. 그래서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판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떤 과감한 사람들은 식민지시대의 폭력적 현실을 고려하여, 또 아기 예수가 태어난 주전 4년, 나사렛 부근 세포리스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가 로마가 잔인하게 진압하여 이천 명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전쟁 중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마리아가 로마군인에게 겁탈당해 사생아를 가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의 설일 뿐이다. 또 구세주 예수에게 사생아 운운하는 게 거슬리기도 하다.
 
다만 마리아의 수태이유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는 그 자체를 가지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마리아가 잉태하게 된 가혹한 현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래서 침묵하도록 하는. 이럴 때 하는 가장 보편적인 말이 있다. "하늘도 무심하지..."

약혼한 여인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마리아가 겪는 고통 못지않은 번민에 빠졌다. 율법대로 처리하자면, 간음한 마리아를 고발하면 된다. 그럼, 마리아는 돌에 맞는 사형에 처해진다. 잘 봐주는 경우에는 이혼장을 만들어 증인 두 명의 서명을 받아서 여자를 소박놓으면 된다. 이게 합법적인 파혼절차이다. 요셉은 조용한 파혼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마리아에게는 치명적인 결과이고 요셉에게도 적지 않은 상처이다. 성경에 마리아 가족 이야기가 일절 나오지 않는 것은 이런 제반 상황 때문에 마리아가 일찌감치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때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부른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고. 그냥 이름만 부르지 않고 '다윗의 자손'을 붙였다. 이 호칭은 특별하다. 1장 24, 25절에서 요셉은 그냥 이름으로만 불리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이 붙었다는 건 무언가를 암시한다.

다윗의 자손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화려한 계보를 떠올린다. 신약성경을 처음 열었을 때 나오는,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를 계속 반복해서 읽는 이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바로 그 대목.(1:6-16) 다윗을 정점으로 한, 이스라엘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인적네트워크. 요셉은 바로 그 족보의 자손이다.

천사는 요셉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말한다. 요셉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가문에 먹칠하는 일이다. 아비가 누군지 모르는, 족보없는 아기를 잉태한 마리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윗의 계보에 수치이고 손가락질받는 일이다.

그러나 천사는 그런 연줄에 매이지 말라고 명한다. 비록 마리아가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여자, 무연고의 존재로 전락했지만,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한다. 왜? 그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유행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은 그저 한 개인이 아니다. 무수한 관계망 속에 있는 한 사람이다. 가족부터 시작해서 무수한 연고가 한 사람에게 작용한다. 그 연줄은 구체적으로 인간 삶을 구속한다. 율법에 구애받고, 전통과 관습에 영향받는다. 어떤 사람도 그 관계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벗어나는 사람은 소외와 단절의 고통이 몰려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관계망에서 떨려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부여잡는다. 대형교회가 그렇게 욕을 먹어도 사람들이 그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그 관계망이 주는 이익에 여전히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현실조건이 이러할진대, 그렇다면 그런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구세주는 어떤 조건에서 출생해야 하겠는가? 똑같이 그런 관계망 속에서 태어나면 예외 없이 또 여지없이 그 관계망 속에서 사람들 간에 발생하는 조건에 영향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겠는가? 제 처지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는데.

성령으로 잉태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았다는 말은 그런 인간적 조건에 구애받음 없이 자유로이, 하늘로부터 온,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가장 최적의 탄생임을 말한다. 아멘

게다가 오늘 성경말씀에는 아기에게 '예수' 말고도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보라. 행복에 들떠있던 마리아가 혼인 전에 잉태함으로, 순식간에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무연고의 여인으로 전락했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다시 성령잉태라는, 구세주출현을 위한 최적의 탄생으로 역전시켜 주었다. 또 "하늘도 무심하지" 했던, 하나님께도 버림받았다고 여겨지던 비극적인 상황이었는데, 그것도 임마누엘이라는 하나님임재의 희망의 현실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이처럼 예수탄생이야기에는 절망에 빠진 민중을 다시 일으켜 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덕분에 요셉도 좌절과 번민, 불면의 밤을 끝낸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오늘 우리도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절망 속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다. 급기야 민중은 막장 정치권력의 폭압에 맞서 정권퇴진까지 결의했다. 성령잉태와 임마누엘로 상징한 예수탄생이야기가 웅변하듯이, 하늘도 무심한 현실, 고통의 현장도 얼마든지 바뀌어서 민중에게 희망의 새 아침을 선사한다. 이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성탄선물이 되기를 빈다. 

▲서울 정동 민주노총 중앙본부를 침탈하는 경찰(왼쪽)과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에 나선 민주노총(오른쪽)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