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
널 위한 나의 기억이 이제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하지만 잊지 않았지. 힘겨운 어제들 나를 지켜주던 너의 가슴.
...(중략)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널 위한 나의 마음이”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는 언제나 멈춰버리곤 한다. 쓸쓸한 마음을 느끼며 너를 떠올리곤 하던 시간들. 그 허우적대던 시간 속에서 홀로 울던 시간들. 그 수많은 낮과 밤을 보내고 내 눈앞에서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내 머릿속은, 내 몸 어딘가 구석구석은 각기 다른 혹은 함께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그 시간만큼은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뚝 떨어져 우리끼리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제주에서의 그 밤은, 흐르던 그녀의 그 목소리는 쉽사리 잊히기 어려운 요소들. 숱한 말들로 나열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녀는 그 어떤 이보다 속삭이듯 노래를 불렀지만, 그 어떤 이보다 뇌리에 박혀 잔상이 남았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부르며 결국, 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울컥하고 말았을 때... 멀리서 그녀의 눈을 보며 나도 괜스레 그렇다, 그랬다. 그리고 어찌할 수 없이 헤매 일 수밖에 없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린 것이 아니라, 떠올랐다. 혼자서 ‘고맙다’고 들리지 않을 말을 내뱉었다. 그 어떤 이도 들을 수 없을, 들리지 않을, 들려서도 안 되는, 이해되지 않을 고마움을.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나는 아직은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고 말할 좁은 마음을 지녔지만, 너로 인해 자랐고, 또 배웠다. 미움의 마음들만 남는다고 해도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어떠함이니까. 그래서 고마워할 수밖에 없는 조각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때론 못나고 미웠을 나를, 막무가내였을 나를 너는 언제나 너였으니까. 그런 사람은 다시 있을 수 없는 너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또다시 막무가내로 그때의 나를, 그 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거겠지.
언제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누구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이라는 것. 어떤 그 누구와 같은 사람을 기다리거나 만나려 오랜 시간 나를 혹은 당신을 방치하는 것은 내게는 옳지 않다는 것. 그럼에 있어 사랑은 언제나 늘 찾아오지만, 그 있을 수 없는 바람을 고집스레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 될 우연의 순간들이 찾아와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의 슬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안갯속 같은 삶에서 나는 ‘지금’을 약간 벗어나면 그것이 비록 현재라고 하더라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 삶의 흐름 속에서 나는 아마, 때때로, 혹은 자주, 어쩌면 더는 아닐 수 있겠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겠지. 뚜렷한 형상 없는 이미지가 바람에 흩날리듯 스쳐 지나가겠지. 내 마음 하나 둘 곳 어디 없겠느냐마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절절함이 아니고서도 가사가 하나하나 깨진 유리처럼 반짝이며 가슴에 박혀버림을 너는 이해하겠지.
‘일상은 상처로 가득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다시 새롭게 하는 치유의 시간 또한 공존하고 있습니다. 상처는 나와 당신 그리고 순간의 유감으로 생기지만 치유의 시간은 오롯한 일상 속 ‘나만의 힘’으로 생깁니다.’***
나는 일방적으로 너에게 받은 ‘상처’만을 생각했다. 각인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너에게 던져 버렸을지 모를 ‘상처’를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런데... 그 매번의 ‘상처’들은 나만의 혹은 너만의 일방적인 방향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 걸음 떨어져 보니 이제야 보인다. 그것은 ‘나와 당신 그리고 순간의 유감’으로 생겨나 몸속 어딘가, 어딘가의 세포 속에 자리 잡아 때론 나를 뒤흔들고, 너를 긁어냈을지도 모른다고 이제야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그 ‘상처’는 더 이상 나의 상처이거나 너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의 상처’이다. 그러나 그 상처를 견뎌내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고, 또 너의 것이란 생각까지도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안개를 느끼며 비로소 끄덕인다. 아니, 안갯속에서도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끄덕인다고 다시 생각해본다.
나란 사람에게는 지금으로선 후회 없는 선택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후회를 할지라도 걷거나 뛰거나 하는 선택, 오로지 지금 이끄는 대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명한, 맹세코, 두 번 다시-란 말은 하지 말도록 하자. 그 절로 흘러가는 흐름 속의 우리를, 그 속의 우리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구간이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언젠가 나의, 너의, 당신의, 우리의 그 외로움들이 나를, 너를, 당신을, 우리를 부를 때 조용히 곁에 찾아가 미소 지을 수 있을 테니까. 아픔이 나를 자라게 하는 동력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 너무 아프면서만 살아가지는 말자.
지금의 그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 버거운 슬픔과 외로움도 다 다독여질 테니까. 우리들, 그렇게 흐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지금, 믿는다.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가을방학,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밤삼킨별, 앳코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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