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해 다시 공공근로를, 전셋집을 마련해보려 건설 일용직까지 전전했다. 그는 결국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한 원룸에서 홀로 마지막 한숨을 내쉴 때까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8월 29일 원룸에서 발견된 故 윤영배(49) 씨. 나아지지 않는 삶을 이어 나가려 치열했던 그를 주변 사람들은 평범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17일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대구시 중구 2·28 기념 공원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은 문화제(반빈곤문화제)를 열었다. 오후 6시가 되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그들은 장애인, 활동보조인, 노숙인, 노점상인, 노령자 등 저마다 빈곤한 삶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故 윤영배 씨가 노숙생활을 딛고 활동보조, 일용직, 전전하면서도 삶이 나아질 수 없었던 것처럼.
2·28 공원의 무대 측면에는 빈민들의 삶 터인 쪽방과 최저생계비 계측 년을 맞아 계측기준의 부당함을 알리는 부스들도 설치됐다. 컨테이너로 실제 크기를 본뜬 쪽방은, 그곳에 주거하는 사람에게 휴식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곳이 아니라 빈곤에 허덕이는 빈민들을 유배하기 위한 곳인 듯 스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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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모형. 아요 활동가는 "쪽방이 빈민들에게는 최후의 보루다"고 설명했다 | | |
아요 인권운동연대 활동가는 “쪽방은 빈민들에게 최후의 보루다. 이런 쪽방의 월세마저 내지 못했을 때 빈민들은 노숙자로 전락한다”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을 마치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보면 이 같은 주거공간에서 살기 위해 수급비 30%를 월세로 낸다”고 설명했다.
또 아요 활동가는 “정부는 최저생계비가 역대 2번째로 인상됐다고 선전하는데 허황한 소리다”며 “주거비가 2만 1천 원 올랐고, 교육비가 580원 올랐다. 의복비로 반바지 2년에 2벌 기준 8천 원이 반영됐다. 최저생계비는 전혀 실제 삶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이 아니라 빈곤철폐의 날”
장애인·빈민·노숙인·노점상인들의 증언 이어져
문화제는 30명가량의 대구시민이 참여해, 규모는 작았으나 서로의 이야기를 농밀하게 나눌 수 있었다. 박명애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는 문화제에서 “88년도에 장애등급 1급을 판정받았다. 20년 동안 아무 소용 없다가 활동보조가 생기며 1급에게만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며 “돼지고기 사면 1등급 표시가 있다. 수급자도 장애인도 1급이 아니면 수급도 활동보조도 못 받는다. 장애인은 1급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불쌍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존중돼야 한다. 등급제 없애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서창호 반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부양의무제 폐지와 기초생활수급비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2년 동안 광화문에서 농성하는 사람도 있다”며 “박근혜 정부는 그나마 있던 복지 공약마저 누더기가 됐지만, 복지 공약으로 당선됐음에도 정작 부양의무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자식이 생계 부양을 하지 않아도 벌이가 있으면 수급 받지 못해 노인이 가족과 서로 원수가 되도록 하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병우 주거권실현을위한대구연합 사무국장은 “나도 1.5평 쪽방에 산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슬럼가에서 주거 공간 없이 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늘고 있다. 13년 현재 대한민국도 자유롭지 않다”며 “저소득층 30%가 3년마다 한 번씩 집을 옮긴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 해 보면 알지만, 동네 떠나고 커뮤니티를 떠난다는 것, 주거 안정성을 잃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지적했다. 또 최 사무국장은 “밀양 송전탑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송전탑 공사로 마을이 송두리째 부서지고 평생 쌓았던 인간관계와 텃밭, 집마저 날아간다. 80년 넘게 할머니들 지켜온 것들이다. 보상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빈곤철폐의 날이라고 고쳐 부른다. “착한 사람들의 원조로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제 몫을 찾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아요 활동가. 빈곤철폐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이 유배당한 삶을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했던 고故 윤영배 씨의 모습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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