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오아시스…성서공단에 있는 노동조합들

[기획연재] (7) 절망을 딛고 희망의 공단으로
뉴스일자: 2013년09월05일 12시35분

[편집자 주]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대명사인 성서공단. 성서공단노조, 성서공대위는 10년이 넘게 성서공단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 금속노조 대구지부,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과 함께 ‘성서공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발족했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 그리고 애환과 희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성서공단, 노동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격주 수요일마다 <뉴스민>에 약 20회 연재한다.

6만여 명이 일하며 2,800개의 사업장이 밀집한 성서공단에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고작 22개이며 조합원은 3,381명으로 조직률이 5.96%이다. 이는 한국의 노조가입률 9.8%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 이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은 2개, 140명으로 그 외는 한국노총이거나 소속이 없다. 특히, 150인 미만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0.04%로 영세한 사업장 노동자의 99.6%가 무노조 상태에 처해있다는 말이다.
 
회사가 영세해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다 노조가 없으니 회사는 매사가 일방적이어서 그야말로 법도 없다. 게다가 사장의 친인척들이 관리자로 있는 경우들이 허다해 눈칫밥에 죽을 맛이나 회사를 옮겨도 별반 달라질 게 없으니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노조가 없으니 임금협상도 없어 사장 마음대로이다. 최저임금제도가 있으니 최저임금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노조가 없으니 가장 낮은 기준선인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있을까? 그래서 임금은 쥐꼬리만큼의 최저임금, 노조는 먼 나라의 이야기, 근로기준법은 법전 속에서나 존재한다.

성서공단에도 노조설립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있었고, 노조를 만들고 와해되거나 해산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도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노조를 만들겠다는 일념을 품고 있는 노동자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2013년 7월 성서공단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추)이 발표한 성서공단 노동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가운데 52.6%가 ‘노동조합이 매우 필요하다’, 23.1%가 ‘조금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노조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무려 73.7%에 이fms다. 그럼에도 노조 결성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노조 관련 지식부족, 같이 할 동료가 없어서, 찍힐까 봐, 해고가 두려워서 순으로 응답했다.

노조가 필요하고 절실하나 만들지 못하는 현실을 뚫고 다행히 노조를 결성한 성공사례들이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해도 될까? 성서공단에 결성된 노조들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노총 소속노조처럼 개별 사업장 내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기업별 노조활동에 머무르는 형태가 있고, 이에 비해 민주노총 소속 두 개 노조는 성서공단 전역이라는 시야를 갖고 가장 낮은 곳을 지향하는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성서공단 3차 단지에 위치한 금속노조 삼우정밀지회는 성서공단 내 유일한 금속노조 소속이자 기업단위에서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사례로 꽤 알려진 지회이다. 노조를 만들기 전 삼우정밀의 임금은 최저임금이었다. 회사는 확장하는데 일하는 노동자는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에서 “중이 절을 떠나기보다 절을 고치자는 심정으로 노조결성을 하게 되었다”고 김태업 삼우정밀 지회장은 이야기한다.
 
삼우정밀 노동자들은 2006년 12월에 노조를 설립하여 임금단체협상 중에 파업하였으나, 회사가 이주노동자를 통해 공장을 가동함으로 파업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한 공장에 있으면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합원, 비조합원이라는 차이가 사실상은 차별이었던 현장을 바꿔내기 위해 ‘노동자는 하나다.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자’라는 기치로 노력 끝에 이듬해 9월 22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전원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와 함께 그간 이주노동자들이 받아왔던 상여금, 휴가 등의 차별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한광수 씨는 “노조가 있어서 달라진 것으로는 회사의 관리자나 반장의 눈치를 덜 봐도 된다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고요. 식사 질도 몰라보게 나아졌습니다... 마치 노비문서를 불 지른 느낌이랄까, 공장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으며 어깨를 펴고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처음 노조를 만들 때 ‘노조를 만들면 회사가 문을 닫지 않을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회사의 회유에 흔들리지 않으니까 노조도 자리를 잡고 이제 회사 문 닫는 걱정은 안 합니다. 성서공단에도 노조가 생기면 몇 년 만에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롱런하는 모습을 저희 지회가 보여주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삼우정밀지회가 기업 내 노조라면 성서공단노조는 지역노조라는 낯선 형태이다.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성서공단에 일하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형태가 필요했다. 또한, 개별 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었으나 사업주의 탄압으로 노조가 문을 내리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면서 지역노조라는 큰 우산이 필요하다는 취지도 있었다. 성서공단노조는 I정밀처럼 개별 사업장현장위원회,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이주현장위원회, 개별 조합원의 모임인 들풀현장위원회 등이 있다.

2차 단지에 있는 I정밀에서 만난 한 여성조합원은 “힘없고 빽 없는 노동자들, 특히 우리 같은 나이 든 여성노동자들에게서 노조는 아주 든든한 힘이 됩니다. 입은 있으나 힘이 없어 말을 못했던 것들을 노조가 있으니 회사에 이야기를 다 하죠. 예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것인데...”라고 말했고, 올해 정년인 한 여성노동자는 “만일 노조가 없었다면 경기가 어렵다 할 때 우리는 벌써 다 잘렸을 겁니다. 노조가 우리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어 늘 고맙고 든든하게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실제 이 회사는 매년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인상을 이루고 있으며, 2009년에는 정리해고에 맞선 현장파업으로 일자리를 지켜냈으며, 2011년에는 파업하여 회사 정문을 막는 단결력으로 휴일 확대와 근속수당 등을 따내기도 했었다.

이외에도 성서공단노조 현장위원회들은 점심때 밥도 주지 않고 도시락을 사오게 하던 회사에 한 사람의 조합원과 함께 투쟁해서 모든 현장 노동자들이 점심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등 수많은 투쟁을 벌여왔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주노동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이다. 노동상담도 하고 공동체 친목도모뿐만 아니라, 강제단속 반대나 차별 없는 노동권 확보를 위한 집회 등을 벌이고 있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대표 로미 씨는 “이주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정말 필요해요. 한국 사장들이 일을 막 시키고, 권리를 하나도 주지 않는데 노동조합과 함께 싸우면서 권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이나 해고 때문에 나서서 노조 활동을 못 하는 게 매우 아쉬워요”라고 토로한다.

성서공단노조는 매주 수요일 인도주의의사실천협의회와 자원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무료진료실을 열고 있으며, 일요일이면 한글교실을 열고 있다.

삼우정밀지회와 성서공단노조는 성서지역에 있는 사회단체들과 함께 ‘성서지역노동자 주민 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6만 성서공단노동자의 권리신장과 더불어 지역사회 현안 문제까지 활동과제로 삼는 것은 노동조합 활동의 새로운 모색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기업 내 노동자의 임금과 권리를 위해 임금협상 때만 반짝 움직이는 노조가 아니라, 당사자들도 가장 낮은 곳에 처해 있지만, 담장을 뛰어넘어 성서공단 전체를 대상으로 선전 홍보활동, 노동기본권을 위한 활동, 봄이면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을 위해 천막농성까지 하고 있다.

공장 노동자라는 직업을 드러내기에 용기가 필요한 사회, 컴컴한 영세한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 작지만 크게 울리는 이들 노조 활동은 공단노동자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이다. 업신여김의 호명인 공돌이 공순이에서 이제 노조를 해 공장과 공단을 바꾸는 당당한 노동자로 나아감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6만의 공단 노동자가 2,800개 회사로 흩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거대한 하나의 공장에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인식이 밑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6만 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조합 울타리로 모두가 만날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기름과 땀으로 범벅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이들의 담배 연기와 웃음 속에서 절망을 딛고 희망의 공단을 만드는 씨앗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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