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윤영배의 고독사에 대하여

배제된 모든 이들에게 닥칠 최후의 문제
뉴스일자: 2013년09월04일 11시34분

지난 8월 29일, LH공사 매입임대주택인 대명동 어느 원룸에서 윤영배 씨의 주검이 발견됐다. 몇 달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전화 연락도 닿지 않자 시민단체 활동가와 지인들이 방문을 따고 들어갔고, 한여름을 그렇게 지났을 그의 주검을 봤다. 부검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여러 정황을 보아 두 달은 지났을 거란다. 아직 쉰도 되지 않은 나이의 그는 혼자 살았고, 죽음도 고독 속에서 맞았다.
 
2007년 여름, 달서구의 노숙인 쉼터 비리 문제를 고발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쉼터에서 4년을 살고 있던 윤 씨가 비리를 고발하는 증언에 나서면서 시민단체와 처음 관계를 맺었다. 이때부터 시민단체의 활동에도 참여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였다. 2010년 1월, 노숙인 쉼터를 벗어나 매입임대주택에도 입주했다. 공공근로와 자활근로로 생계를 이어갔고, 그것조차 할 수 없을 때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살았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핑계로 많은 노동자들을 직장에서 쫓아냈다. 실직한 노동자와 서민들은 소비를 줄여가며 버티다가 결국은 집을 팔거나, 더 싼 곳으로 셋집을 옮겼다. 이 가운데 어떤 이들은 식구들과 같이 살 공간마저 가질 수 없었다.

장민철 쪽방상담소 소장은 “ 집이 없어지면, 세입자가 쫓겨나면 식구들을 뿔뿔이 흩어진다. 그럼 아이들은 다른 가족이나 시설로, 본인은 노숙인이 되거나 쪽방에서 산다. 이게 외환위기 이후에 급격히 늘었는데, 쪽방상담소와 노숙인 센터가 거리와 쪽방을 돌면서 파악한 노숙인과 쪽방거주인은 천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을 처음 확인했던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활동가의 말이다.

“윤 씨가 언제부터, 어떤 까닭으로 혼자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윤 씨도 여느 노숙인과 쪽방 거주자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채 살다가 혼자 죽음을 맞았다. 마지막 봤을 때는 일자리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매입임대주택의 월세도 몇 달치가 밀렸다. 실직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 아닐까 싶다”

최저임금의 일자리마저 구할 수 없었던 윤 씨. 사람들 곁에서 사라졌고, 전화마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의 존엄성을 찾아 볼 수 없는 상태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고독사는 연금 없이 홀로 살 수밖에 없는 노인, 활동보조인 없이 참변을 당한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을 받을 수 없는 노동자, 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버는 영세상인, 생계비에 못 미치는 지원을 받는 기초수급자 등등. 한국에서 가난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모든 이들에게 닥칠 최후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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