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민뎅의 사적인 시간 (6)

나의, 그러나 낯선 너머
뉴스일자: 2013년08월17일 03시09분

전화가 왔었다. 섬에, 집에 들어가는 배 안이라고 했다. 일 년의 두 번 중에 어느 명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섬에,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작은 섬이었다. 언젠가 그는 내게 그 섬의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이름도 예쁜 그 섬에 나는 가고팠다. 그는 내게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에게 책을 읽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는 섬에, 집에 들어가는 시간 동안 통화를 하자고 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해 그대로 전화가 꺼질 때까지, 그러자고 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재미난 구절이 있다면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와 통화하기 전 읽고 있던 책의 한 문장을 읽어주었다. 누군가에게,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혹은 대화를 나누며 책의 글귀를 읽어주는 것,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좋아해. 아주아주.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이 전부 희미해질 정도로 좋아해.” *

그때 내가 읽던 책은 <어깨너머의 연인>이란 일본 소설이었다. 사실 지금은 좀 달라지긴 했지만, 당시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책과 함께 이 책을 특히 좋아했었다. 그리고 읽어준 글귀는 나란 사람에게 정말 콕- 박힐 정도로 좋아했었다. 물론 책에서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루미코가 그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라며 그에게 말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이 전부 희미해질 정도로”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지난 사람이 희미해질 정도로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내게도, 그와의 사랑에도, 우리 서로에게도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는 말했다. 그건 책의 당사자도, 너도 여자이기에 그렇다고. 그리고 우리는 몇 차례 서로 말이 오갔는데, 그는 그때 헤어진 옛 연인에게 갖추어야 할 일종의 예의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 그 말에 끄덕거리기도 했던 것 같고, 사실 온전히 이해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때의 나는 참, 너무나 어렸다. 그가 말하는 그 사랑에 대한 예의와 깊이에 대해서 이해해주기에도, 그렇지 않다고 반하기에도. 어느 쪽으로도 나는 어렸다. 그때의 내가, 그토록 그에게 어리지 않았다면, 우린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는 다른 책도 더 읽어달라고 했다. 섬에, 집에 가는 길에 상대가 되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런 여동생이었다. 나는 책을 읽고 나면 맘에 들었던 글귀를 정리해두는 노트를 꺼내와 차근차근 넘겨가며 좋아했던 구절들을 들려주었다. 꽤 여러 책의 글귀들을 읊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주고, 대화가 오가다 그의 휴대전화가 꺼지면서 그날의 통화가 끝났었다.

꽤 오래전 일이다. 어째서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이 생각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 여름임에도 밤공기가 선선한 지리산 어느 한 자락일 곳에서 시집을 읽고 있었을 뿐이다. 좀 전까지 읽은 것은 이병률 시인의 <견인>이란 시었는데, 그 시를 읽고 잠시 멍하게 있었을 뿐이었는데, 왜 그때 생각이 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추억 꺼내기 하듯 때때로 떠올려본 적도 없는 기억인 것이다.

태백산맥 고갯길에서 견인차를 기다리는 당신과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를 만난다. 기사는 삼십년 전 바로 그 자리에, 수북한 눈더미 아래에 남자 여자 끌어안고 죽어 있었다고 했다. **

‘세상 맨 마지막 고갯길, 폭설처럼 먹먹하던 사랑도 견인되었을 것이다.

진종일 잦은 기침을 하던 옆자리의 당신
그쪽으로 내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

때로는 나만이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조차도 모를 일들이, 그런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 견인되었을 폭설처럼 먹먹하던, 누군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옆자리의 당신과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바라보았을 그 어떤 이를 나는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당신에게 다 쏟아내어 버리고 옆자리의 당신을 꼭 껴안고 함께 식어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논리 따위에 전연 맞지 않음에도 사람이기에, 사람 마음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가 보다.

그러다 그 생각의 끝에 이제 그때보다 어리지 않은,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를, 그러나 또 다르지 않은 나일 수밖에 없는 내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제야 말하고 싶다.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다. 그렇게 예의라는 말로 마음을 묶어두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다. 당신, 그래선 안 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안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희미해질 정도로 좋아지는 것은 매번 찾아온다고, 늘 그런 거라고 진득하게 속삭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다. 그 말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그때의 그인지, 우두커니 바라보던 너인지. 어쩌면 두 사람 모두이거나, 나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했듯 잊혀지고 사라져버리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들리지 않을, 듣지 않을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또렷이 목도하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끝내 그의 여동생이 되었던가.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그때 그와 느낀 어떤 ‘이어진’ 마음은 대체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는 너의 여동생이 될 수 있을까. 너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어떤 마음이 이어졌고, 또 어떤 마음이 끊어졌던 걸까.

사람이 쉬이 잃기도 하고, 끝내 잃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을.
 

▲원작과는 많이 다르지만, 영화 <어깨너머의 연인>의 한 장면


* : 유이카와 케이, <어깨너머의 연인>
** : 이병률, <견인> 일부내용 요약
*** : 이병률,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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