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대구 달서구 ㄹ어린이집 보육교사 5명이 원장의 부당한 처우에 심한 모멸감을 느껴 집단 퇴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장은 교사들이 집단으로 퇴사해 어린이집 업무를 방해했다며 이들을 고소했고, 두 차례에 걸쳐 교사들의 신상정보를 담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달서구민간어린이집연합회와 대구시민간어린이집연합회 원장들과 공유했다.
지난해 발생한 이 사건은 올해 5월 MBC <PD수첩>이 보도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년 동안 교사들은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다른 어린이집에 재취업을 하려 했지만 ‘블랙리스트’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검찰은 이들의 담합여부를 확인한다며 휴대폰 통화내용까지 확인했다. 고통스러운 1년이었다.
네 차례 구직 끝에 취업…면접 때마다 ‘블랙리스트’ 거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어린이집 근무 경력 숨겨야 구직 가능해
A교사는 ㄹ어린이집을 나온 후 네 차례 구직 끝에 ㅍ어린이집에서 일할 수 있었다. 세 차례의 면접에서 원장들은 ‘블랙리스트’를 거론하며 임금을 줄이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라고 요구했다. 네 번째 면접에서 ㅍ어린이집 원장은 ‘블랙리스트’를 알고 있다면서도 별다른 조건 없이 채용을 결정했다. 대신 민간어린이집연합회 원장들이 모이는 월례회를 다녀올 때면 “이번에도 선생님 이름이 월례회에서 나왔다”며 ‘블랙리스트’를 환기시켰다.
결국, 지난 3월말 어린이집 평가인증이 끝나자 원장은 A교사에게 퇴사를 종용했다. 원장의 퇴사 요구를 거부한 A교사에게 돌아온 건 동료교사의 따돌림과 업무배제였다. “말도 걸지 않고, 업무를 나만 모르고 있더라”라는 A교사는 부당한 대우가 있어도 ㅍ어린이집을 나올 수 없다.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5월에는 130만원이던 임금까지 105만원으로 줄었다.
그나마 A교사는 처지가 나은 편이다. A교사와 함께 퇴사한 B교사는 대구에서의 재취업이 어려워 영천으로 옮겨가 보육교사 일을 하고 있고, 다른 교사 2명은 ㄹ어린이집에서 일한 경력을 숨기고 민간어린이집보다 환경이 열악한 가정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다. 또 다른 교사 1명은 임신으로 일을 쉬고 있다.
권익위,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신청…“구제 어려울 수도…”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을 느낀 교사들은 지난 6월 24일 강원도 평창군에서 어린이집의 국가보조금 부당수급, 공금횡령을 공익 신고했다가 집단 해고당한 보육교사들과 국민권익위에 공익신고자 불이익조치에 대한 보호조치를 신청했다.
하지만 권익위가 이들의 보호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지난 11일 달서구청에서 진행된 권익위 조사관들의 의견 청취 이후 A교사는 “저희가 애초 문제가 있던 어린이집에서 나온 상태라서 구제는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권익위마저 이들의 구제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들은 앞으로도 ‘블랙리스트’로 인한 취업방해를 겪을 위험이 크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의 관할 구청(달서구청)은 지난 6월 19일 이번 사건에 대한 특별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블랙리스트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노조와 시민단체는 “핵심인 블랙리스트를 뺀 부실감사”라고 반발했지만, 구청 관계자는 “블랙리스트는 구청이 아니라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고 해명했다.
비리 드러난 원장, 여전히 어린이집 운영 중
“보육교사 보호 미뤄지고, 원장 솜방망이 처벌…보육현장 비리 개선 불가능”
문제는 피해교사들은 여전히 언제 블랙리스트가 다시 드러나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문제를 일으킨 원장들은 여전히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달서구청은 ㄹ어린이집을 포함해 어린이집 세 곳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식품위생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회계비리, 운영비리 등을 적발했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어린이집 원장이 업무 수행 중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영유아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1년 이내의 자격정지를 시킬 수 있다.
구청 관계자는 “두 차례 당사자들의 해명 기회가 있다. 해명을 듣고 이번달(7월) 말쯤에는 최종적으로 행정처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당사자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대구시에 행정심판 청구도 있고, 소송까지도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시한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원장들이 소송까지 불사하면 사안에 따라서 이들이 합당한 처분을 받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문경자 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본부 보육분회장은 “어린이집 원장들은 문제가 터져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자격정지 3개월, 6개월 받아도 그 기간만 쉬었다가 지역을 옮겨서 다시 원장을 할 수 있다”며 “경산에서 보조금 부당수급으로 자격 정지된 원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영천에 가서 원장을 하고 있다”고 제도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문경자 분회장은 “노조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연락은 많이 받았지만 지금처럼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었다”며 “그건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취업이 막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어린이집의 비리 문제가 심각함이 밝혀졌지만 제보자에 대한 보호는 미뤄지고 원장들의 징계는 솜방망이로 그치면 더 이상 보육현장의 비리를 밝히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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