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D업체(경북 칠곡군 지천면)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피부질환을 앓고 고용주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때문에 노동단체들은 노동부에 D업체의 ‘외국인 고용허가 취소’를 요구했으나 노동부는 되려 D업체와 합의를 권하는 등 처벌을 축소하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카본 가루 범벅된 작업환경, 혈변 나온다는데 “술 마시면 된다”는 D업체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이슬람(가명)씨는 지난해 5월부터 D업체에서 주야 1주일 맞교대로 일을 시작했다.
이슬람씨는 “일할 때 제품원료에서 나온 검은 먼지(카본 비산물) 때문에 가슴도 아프고, 얼굴과 이마, 몸 전체 피부도 가렵고, 소변을 볼때도 아프다”며 열악한 작업환경에 고통을 호소했다. 고용주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슬람씨를 병원에 데려가기는커녕 “술 마시면 괜찮아진다”며 방치했다.
이슬람씨는 노동청에 제출한 진술서에 “사장님이나 매니저에게 이야기 하면 카본 비산물은 술 많이 먹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한국 사람도 소주 안 먹으면 나중에 암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술을 한 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고 진술했다.
술을 마시지 않던 이슬람씨는 맥주를 한 두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한 고통을 견디다 이슬람씨는 2월 12일 김해이주노동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김해이주노동자센터는 3월 25일 성서공단노조로 사건을 이관했다.
성서공단노조는 D업체에 전화를 걸어 이슬람씨의 상황을 확인했다. 하지만 D업체 주아무개 이사는 “꾀병이다. 병원에 한 번 데리고 가겠다. 어렵게 외국아들을 데려왔는데 나가면 공장 문 닫아야 하니 사업장 이동은 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D업체 이사는 노조의 전화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사실을 알고는 이슬람씨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외부에 사실을 알렸다며 화를 내고 협박을 했다.이슬람씨는 이 일로 D업체 부장으로부터 엉덩이를 차이는 등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슬람씨는 “2013년 1월 중순경, 주방에서 사무실 매니저가 생산물량에 문제가 있다며 손으로 뺨을 때리고 발로 엉덩이를 차는 등 저를 때렸다”며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슬람 씨는 “장갑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세탁해서 쓰고 기숙사 주방은 비가 오면 위에서 물이 떨어진다”며 “화장실도 매우 지저분하고 낡아 물을 내리지 못해 봉투에 용변을 보고 회사 앞 강가에 버린다”고 주장했다.
노조, 특별근로감독 요청... 산업안전법 위반 11건, 근로기준법 7건
업체사장, “억울하다. 이슬람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4월 2일 성서공단노조 상담소장이 D업체를 찾았을 때 이슬람씨는 카본가루를 뒤덮어 쓴 모습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사업장 내 협박, 폭행 사실을 알게 된 노조는 6일 이슬람씨를 노조 사무실로 피신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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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업체의 공장 내부. 바닥에 시커먼 카본 가루가 덮여 있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니 숨 쉬기조차 곤란했다. | | |
이어 노조는 대구서부고용센터에 D업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고, 근로감독 결과 고용노동부 대구서부지청은 D업체에 산업안전법 위반 11건으로 벌금 220만원과 근로개선 7건(근로기준법 위반)의 시정명령 처분을 내렸다.
D업체를 찾아가 만난 이아무개 사장은 “억울하다. 이슬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폭행한 적도 없고 근무환경도 나쁘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을 하고 싶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노동청의 시정명령으로 집진기를 새로 설치했다. 또 바닥도 새로 깔아야 해서 5천만원 정도 비용이 나가게 됐다”며 “영세한 업체에서 이 정도 근무환경이면 좋은 편이다. 회사 옮기고 싶은 이주노동자 때문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은 1년 정도 일해야 일이 숙달된다. 그런데 1년 정도 지나면 다들 사업장 변경하려고 한다. 그러면 새로 또 사람을 구해야 한다”며 “현재 근무하고 있는 다른 이주노동자 2명은 오는 7월1일부로 사업장 변경을 해줄 계획이다. 시간을 좀 달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법, 근로기준법 위반해도 사업장 고용허가 취소 ‘0’건
산업안전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업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노동부가 강력한 처벌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하기 보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축소, 은폐 하려 한다는 게 노동단체의 주장이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용자가 임금체불 등 근로조건을 위반하면 고용센터 직권으로 업체에 고용허가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최근 3년간 대구경북지역에서 노동관계법 위반, 폭언, 폭행 등으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한 횟수는 총 121건에 달하지만, 사업장의 고용허가 취소 결정은 단 한 건도 없다.
임복남 성서공단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상습적인 임금체불과 폭행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사업장 변경과 관련해 고용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면 현장조사 보다는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오라며 합의를 종요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D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아무개 사장은 18일 노동청서부지청에서 조사를 받고 난 후 노조에 전화해 “고용허가 취소가 되면 회사가 문 닫아야 하므로 이슬람씨가 사업장을 이동하는 것으로 이 사안을 합의하자”고 전했다.
이처럼 허술한 사후대처 때문에 노조는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장에 대한 상시적인 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고용노동청 서부지청 관계자는 “특별근로감독에 대한 요청이 들어오면 근로감독을 실시하지만 많은 사업장을 모두 감독할 수는 없다”며 많은 업체를 감독할 만큼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부고용센터 관계자는 이슬람씨 사건에 대해 “노동청에서 시정명령은 내렸다. 고용허가 취소 처분은 이번주 내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허가제 시행 9년, “노예제도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고용센터의 고용허가 취소 처분 결정이 지지부진하자 ‘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이주연대회의)는 30일 오전 대구 서부고용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주 처벌과 고용허가 취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주연대회는 “대구경북에서 고용허가 취소가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은 사업주와 고용센터가 합의를 종요해 이주노동자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며 “D업체에 대한 즉각적인 고용허가 취소를 왜 망설이는지 서부고용센터는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연대회는 “시커멓게 카본범벅인 얼굴로 이 사회에 드러내지 않았다면 묻힐 수밖에 없었던 이번 사건을 통해 고용허가제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보여준다”고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편, 고용허가제는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2004년부터 노동 3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인 사업장 이전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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