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일기](1)걱정과 기대 속에 진행된 추첨제 대의원대회 후일담

왜 추첨제일까…? 의장은 추천, 부의장과 서기는 가위바위보
뉴스일자: 2013년03월25일 18시09분

[편집자주]이형석 대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20대 청년 운영위원장입니다. 그가 글을 못쓴다는 주변의 질책에 절치부심하던 중 글 쓰는 능력을 키워보고자 <뉴스민>의 지면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녹색일기]라는 연재 제목으로 매달 한 차례 녹색당원으로서의 그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첫번째 연재 주제로 무얼 쓸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녹색일기’라는 연재 제목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을 적어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첫 번째 일기는 녹색당의 일상이라 할 수 있는 녹색당 전국 대의원대회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대의원대회 이야기를 하자면 1년전으로 거슬러가야 합니다. 녹색당은 지난해 3월 창당 당시 각 지역 녹색당의 공동운영위원장을 추첨으로 뽑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운영위원장을 맡을 수 있었죠. 그해 총선에서 2%의 지지를 받지 못한 녹색당은 등록 취소 이후 재창당 과정을 거쳤습니다.

재창당 이후 새롭게 시작된 녹색당의 한 해 사업방향을 정하고 예산안을 확정하기 위한 대의원대회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것도 예산안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가장 중요한 일은 그것들을 실행할 대의원들을 뽑는 일이었습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녹색당은 공동운영위원장을 뽑았던 방식 그대로 대의원을 추첨으로 선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왜 추첨제인가?
소수 엘리트, 학벌, 재력 등의 변수 배제

이쯤에선 ‘왜 추첨제인가’라고 물으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테니 조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녹색당의 자료를 빌려 이야기하면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유명한 시사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The Literary Digest)>는 대선을 앞두고 대규모 설문조사를 기획합니다. 대선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묻기 위해 전국의 전화번호부와 자동차등록명부에서 무려 천만명의 유권자를 찾아 우편을 보냈는데요. 이 중 200만명이 응답을 했습니다.

조사결과 57%대 43%로 공화당의 랜던(Alfred Landon)후보가 현직의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을 누르고 압승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0만명이라면 말이 200만명이지 엄청난 수의 표본이기에 여론은 대부분 랜던후보가 당선되리라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61%대 37%. 루스벨트 대통령의 압승이었습니다. 엄청난 표본에도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의 여론조사가 틀렸던 이유는, 당시 이 잡지사가 확보한 전화번호부와 자동차소유자 명단이 대부분 부유층의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공황기였던 당시 전화기와 자동차가 없었던 대다수 가난한 시민들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1940, 44년 미국대선에서 조지 갤럽(George Gallup)은 ‘할당표집’으로 표본조사를 진행해 당선자를 정확하게 집어냈습니다. 할당표집은 유권자의 성별, 소득, 연령, 인종, 거주지역 등과 같은 응답자의 특성을 바탕으로 특정 집단에 치우치지 않는 표본을 선정하는 방법입니다. 결국 민심이나 민주적인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표본집단 선정방법은 할당표집을 통한 “무작위추첨”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녹색당은 의사결정 체계를 일부 엘리트, 학벌이나 재력, 인적 자원(조직력), 공천 등의 변수가 아니라 불특정한 당원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첨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렇게 추첨으로 뽑힌 이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까지도 고민하며 추첨으로 뽑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 녹색당 대의원대회 [사진=녹색당]

‘종이비행기 날리기’, ‘부채질하기’, ‘사다리타기’로 대의원 선출
두 차례 진행된 대의원대회 사전 워크숍

이렇게 숭고한 뜻을 가진 추첨제이지만 어떤 방법으로 추첨을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시간 많고 할 일 없는 저의 일이 되었습니다. 이걸 어쩌나 하는 답답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뽑기 추첨을 진행하려던 전날 밤, 마침 다른 일을 준비하던 이보나, 유선우 당원의 가슴을 찢어발기는 비판과 도움으로 ‘종이비행기 날리기’, ‘부채질하기’, ‘판돌리기’, ‘사다리타기’, ‘로또뽑기’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대의원 추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의 전국 대의원은 9명. 추첨제의 단점은 추첨으로 뽑힌 당원들이 반드시 대의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서 선발된 분들이 거절할 경우 선출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염려와는 달리 9명의 대의원 중 4명은 1순위로 뽑힌 분들이 맡았고, 3명은 2순위, 나머지 두 분만 각각 3순위와 7순위에서 선출되어 1명(7순위)을 제외한 모든 분이 첫 추첨에서 확정되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또 이런 현상은 비단 대구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순조롭게 추첨제로 대의원을 선출했지만, 아무래도 추첨식 대의원들은 대의원대회의 의미, 논의될 안건에 대한 이해도에서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 차이는 불특정한 다수 당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애초 목표와는 달리 경험이 많거나 이해도 높은 소수가 대의원대회를 주도하는 문제점이 생길 수도 있게 합니다.

때문에 대구녹색당은 자체적으로 진행한 두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대의원들이 대의원대회의 의미와 안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추첨제로 뽑힌 대의원은 적극성이 떨어진다거나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40명 중 88명 참석
의장은 추천, 부의장과 서기는 가위바위보

그렇게 즐거운 대의원대회 준비가 마무리되고(저는 그다지 한 일이 없지만 전국 사무처의 실무자들은 지옥을 맛보았다는 풍문이 돌았습니다) 대의원대회 당일, 서울에서 열린 대의원대회에는 전국에서 140명의 대의원 중 88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대의원대회는 원활한 의사 진행을 위해 지역을 안배한 사전 모둠토론으로 1시간 정도 각 안건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후 본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의장은 대의원들의 의견을 물어 추천으로 결정했고 부의장과 서기는 각각 추천자와 지원자 중 가위바위보를 통해 결정했습니다. 그런 파격 덕분이었을까요? 다행히 회의 분위기는 그다지 무겁지 않았고 3시간 동안 진행된 대의원대회에서 개인 사정으로 먼저 나간 5명을 제외한 모든 대의원이 제자리를 지킨 가운데 회의가 마무리됐습니다. (회의 안건과 내용은 녹색당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이참에 가입하시는 것도 괜찮을듯합니다만)

일기를 마무리 지어보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의원들의 밝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대외적으로도 최초라는 정치실험을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해주고 있는듯합니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제부터 녹색당 운영에 대의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결의된 2014년 선거와 당원확대, 각종 현안사업에 얼마만큼의 책임감을 가져줄지… 대의원대회 이전부터 해오던 고민은 대의원대회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의 녹색당에 대한 고민이 좋지 않은 결과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과 대의원대회를 통해 당에 대한 주인의식으로 무장된 평당원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고민도 잘 풀려나가리라 생각합니다.
▲ 이형석 대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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