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민중은 집토끼가 아니다. 산토끼는 더 더욱 아니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보기에 노동자민중은 집토끼이거나 산토끼일 뿐이다. 집토끼든 산토끼든 토끼 사냥에 나선 지배세력의 유희에 뛰어든 진보정치는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가 아니라 정당 세력화였고, 노동정치의 발전이 아니라 낯 뜨거운 정당 정치의 반복이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는 노동자민중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노동자 민중은 정당 정치를 대변하겠다는 대리운전자들의 차에 탑승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라는 구호 아래 노동자 민중의 힘을 토끼 사냥에 소진시켰던 진보 정치의 말로를. 진보 정치에게 반자본주의의 혁파, 재벌 해체, 금융자본의 통제는 투쟁과 혁명의 알리바이였음을. 똑똑히 보라! 국가와 자본을 들먹이며, 노동자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소리치며 알리바이를 수행한 결과가 무엇인지 보라! 민주노총은 식물노총이 되었고, 노동자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노동자민중은 이제 자신들의 운명을 문재인의 운명에도, 당당한 대통령에게도 맡기지 않으려 한다. 노동자민중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배세력들이 온갖 회유를 통해 그 힘을 강탈해간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노동자민중은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내세우며 수십 년에 걸쳐 약탈당한 우리들의 힘과 역량을 환수하고자 한다.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노무현이 자살하는 동안 우리 노동자 민중들은 4 ․ 19에서 현재까지 부지기수로 죽어갔다. 계속 반복되는 죽음을 방치하기엔 투쟁과 파업의 현장에서 너무 멀리 떠나왔다.
노동자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입으로만 떠들던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를 가동시키기 위함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해 온 질곡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함이다. 파업도 농성도 없이 자본 앞에 투항하거나 진보 정치를 빙자하며 토끼 사냥에 몰입했던 그 모멸의 역사와 주체적으로 단절하기 위함이다.
노동자 계급에게는 정파가 없다. 국가와 자본의 적자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노동자를 참칭하고 노동자 계급을 위장한 통합진보당, 국가와 자본의 아류이자 먼 기억 속에 갇혀 버린 국참당, 반국가와 반자본의 적자도 아닌 진보신당,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통합당에 굴복한 진보정의당도 정파는 아니다. 자본 편에 선 정규직 노동자는 정파를 말할 자격이 없다.
노동자 계급의 정파는 비정규파요,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비정규파 만이 노동자 계급의 진정한 정파를 이룰 수 있다. 노동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한국 사회에 창궐한 비정규직이라는 주홍 글씨를 노동자의 호적에서 파내 버리기 위함이다. 돈 백도 채 안 되는 임금 앞에, 손목을 뚝뚝 자르는 기계 앞에 살다가, 크리넥스 휴지처럼 버려지는 정리 해고도 모자라 기어코 목숨까지 쓸어가는 자본가의 세상을 노동정치로 뒤엎기 위함이다.
노동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다가올 자본주의적인 공황에 직면하여 노동자 민중의 대동단결에 호소하기 위함이다. 우리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노동자 계급과 민중을 돌보지 않는다. 누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송전탑에, 고공 크레인에 올라가도록 방치했는가. 노동자 계급으로 승화하지 못한 근로자들이, 자본이 된 정규직들이 투쟁보다 협상에, 파업보다 선거에 목숨을 거는 동안 노동자의 목숨과 노동자 계급의 미래를 고공 찬바람에 방치한 것 아닌가. 투쟁의 모든 짐을 한 개인 노동자에게 지우는 투쟁의 개인화는 더 이상 안 된다.
노동자민중의 권력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임을 우리는 잘 안다. 노동자민중의 단단한 민중권력만이 노동자 계급을 구원하고 한반도를 제국들의 역습에서 구제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온갖 냉소주의는 날려 버리자. 노동자들이 그 누구의 집토끼도 아님을 투쟁으로 보여 주자! 노동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마지막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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