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이기자의 9회말 2아웃 (5)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뉴스일자: 2012년11월17일 02시25분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지난 10월 28일 원피스(OnePeace)는 첫 번째 공식 경기를 치렀다. 격전지는 경북 청도 운문교 둔치에 자리한 작은 야구장. 상대는 올해 4월 창단한 ‘질풍가도’. 팀 구성원이 사회초년생 또는 대학생으로 이뤄진 20대 젊은 팀이었다. 지금까지 경기 경험은 두 차례, 우리와의 경기가 세 번째 경기였다. 한 번이라도 공식 경기를 해봤고, 팀 나이가 젊은 것이 장점인 팀이었다.

30여분 팀별로 몸 푸는 시간을 갖고 오후 1시 20분, 뒷 시간에 다른 팀 예약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유롭게 9회 풀이닝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 수비를 했다. 나는 1루수 1번 타자로 출전했다. 감독은 3루수로 오더를 짜놓았지만, 어깨 상태가 좋지 않은 걸 감안해 경기 직전 수비위치를 바꿨다.

1회초 상대의 공격은 가볍게 끝났다. 상대는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 야구단 출신인 우리 선발 최창진 선수의 공에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이날 최창진 선수는 6회까지 던지면서 거의 모든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6회까지 거의 모든 상대 점수는 수비 실책으로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회말 첫 공격, 첫 타석 투 스트라이크 투 볼에서 가볍게 친 공이 외야로 날아갔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스스로도 놀랐다. 쭈욱 날아가던 공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에 떨어져 펜스까지 굴러갔다. “와~, 뛰어, 3루까지!” 죽어라 뛰었다. 3루타. 공식 첫 기록이었다. 1회 우리는 3루타를 포함해 안타, 볼넷, 상대 실책 포함해 2점을 선취했다. 시합 전 걱정을 무색케 한 상큼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리드는 오래 지켜지지 않았다. 2회초 상대는 우리 수비의 실책에 힘입어 2점을 얻었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2회말 바로 1점을 추가했다. 그러나 바로 3회초 다시 1점을 내주어 다시 동점. 양팀은 9회까지 엎치락뒤치락, 도망가면 쫓아오고, 쫓아오면 도망가기를 계속했다. 9회까지 8대8.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경기가 지속됐다. 공식 이닝을 모두 마무리하고 양팀 합의하에 한 이닝 연장에 돌입했다. 대망의 10회. 양팀은 모두 만루의 기회를 맞았고, 두 만루 찬스에서 영웅(?)은 모두 우리팀에서 탄생했다.

10회초 상대는 볼넷과 안타를 엮어 2사 만루 찬스를 만들었다. 상대타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투수가 던진 공을 상대가 치는 순간 나는 ‘아... 끝났구나’ 생각했다. 잘 맞은 타구가 2루수 방면으로 강하게 날아갔다. 우리팀 2루수는 19살 박인수 선수. 이전까지 야구 경험이 전무한 친구였다. 우리팀에 들어오면서 처음 야구를 접한 그에게 타구가 날아간거다. 그런데! 열심히 공을 쫓아가며 내민 그의 글러브로 공이 말 그대로 ‘쏙!’ 빨려 들어갔다. 그는 공을 확인하고 침착하게 1루로 송구했다. 대박!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위기 뒤에는 기회라고 했던가. 10회말 1사 이후에 타석이 돌아왔다. 3루쪽 깊은 땅볼을 쳤다. 또, 죽어라 뛰었다. 1루수가 공을 놓쳤다. 2루까지 뛰었다. 다음 타자가 들어섰다. 나는 3루로 뛰었다. 살았다. 이후 후속 두 타자가 모두 볼넷으로 진루했다. 1사 만루.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타순은 4번 타자.

바로 이 순간 우리팀에 또 한명의 영웅(?)이 탄생했다. 초구에 1루에 있던 이 아무개 선수가 2루를 향해 뛰었다. 마지막회 1사 만루 상황에서 1루 주자가 도루를 시도한 거다. 3루에 있던 나는 멍하니 2루로 스타트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2루 주자도 3루로 뛰려는 걸 발견했다. 포수는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돌아가요!” 순간 정신을 차린 나는 2루 주자를 향해 소리쳤다. 끝내 이 아무개 선수는 2루를 밟았다. 그렇게 1사 만루는 2사 2, 3루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어진 4번 타자의 범타. 경기는 그대로 8대8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이 아무개 선수는 “2루에 주자가 있는지 몰랐다. 병살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뛰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누군가는 “팀의 모토를 그대로 드러낸 경기였다”며 “승자도 패자도 없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경기였다”고 그날 경기를 평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야구를 복원하려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열심히 뛰어서” 아름다운 야구를 복원해냈다고 하면... 꿈보다 해몽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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