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나로 연속기고] (5) 자립 막는 사회가 청소년 가출하게 만든다

탈가정 청소년? 먹는건가염? 우걱우걱
뉴스일자: 2012년11월14일 15시50분

[편집자 주] 학교폭력이 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학생인권 문제도 뜨겁다. 교권의 하락, 학교붕괴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학생(or 청소년)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하늘에 별따기다. 저마다 대안을 내어놓지만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고려되기 보다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급급하다. <뉴스민>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구지부 회원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가출 청소년.... 몇 년 새 이만큼이나 늘어,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
“위기의 청소년들, 돈 벌기 위해서 성매매”

인터넷 뉴스를 보면 항상 한둘은 떠있는 기사 제목이다. 내용 역시 천편일률적이다. ‘몇 년 사이 가출 청소년이 늘었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도표를 보여주고 가출 청소년의 인터뷰가 나오고 학교와 가정에서 이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기사가 무조건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쫌! 가출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해질 필요가 되지 않았나 소심하게 생각해본다. 나의 소심한 글이 그 스타트를 끊어주길!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 글에서 사용되는 생소한 단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가자.

1. 탈가정 : 가출과 굉장히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다. 하지만 가출은 집을 '나가는'거고, 탈가정은 가정에서 '벗어나는'거다. 둘은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이 글에서는 가출과 탈가정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2. 비(非)청소년 : 청소년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엄밀히 따지면 유아동과 성인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주거 계약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성인만'을 비청소년이라고 부fms다.
3. 친권자 : 자(子)의 친권을 가진 사람. 부모 혹은 후견인이다.

▲ 여고생의 가출 이야기를 그린 독립영화 <가출>의 한 장면

청소년 자립 막는 사회
첫 번째, 일할 수 없는 청소년

나에게 2012년은 혼란의 해였다. 이전의 나는 가출을 '절대 하면 안 되는 것' '위험한 것' '미친 짓'으로 간주했다. 내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내게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 올해 탈가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탈가정을 한 후 나는 청소년의 자립을 막는 사회가 청소년이 ‘가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아는 모든 탈가정을 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가장 큰 문제로 여기는 것은 ‘돈’과 ‘집’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그건 유아동이든,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다르지 않다. 가정에 있을 때는 대부분 친권자가 버는 돈으로 살고 친권자에게 용돈을 타서 살았으나 탈가정한 이후에는 어떻게든 자신이 돈을 벌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첫째, 청소년에게 노동을 시켜주는 곳은 별로 없다. 둘째, 청소년은 노동을 하기 위해서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셋째, 청소년이라고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다.

발품을 팔고 이곳저곳에 전화해서 노동을 할 만한 곳을 찾았다고 하자. 곧바로 두 번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일반적으로 탈가정을 하면 친권자와 연락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친권자의 동의를 받을 길이 없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많은 탈가정 청소년들은 자신의 나이를 속이거나, 자신의 탈가정에 동의하는 비청소년의 도움을 받거나, 남의 명의를 이용해서 일자리를 구한다.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들에게 주는 시급보다 1~200원 적게 주는 일은 다반사다. 어찌됐든 일자리를 구했으면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해결된다.

청소년 자립 막는 사회
두 번째, 집을 구할 수 없는 청소년

두 번째 조건은 집이다. 대다수 청소년들은 집 계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스스로 집 계약을 할 수도 없다. 그 때문에 탈가정을 한 많은 청소년이 ‘가출 청소년 쉼터’를 찾게 된다. 하지만 쉼터에 들어가게 되면 곧바로 자신의 친권자에게 연락이 가기 때문에 가정의 폭력을 피해서 탈가정을 한 이들에게는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집’을 구해야 할 텐데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탈가정 청소년들은 자신과 친한 비청소년에게 부탁해서 대신 계약을 해주는 방식으로 집을 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을 지지해주는 비청소년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고, 명의를 빌려주는 경우는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 집을 구해도 여러 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집을 구하면 가스, 전기, 인터넷 등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장치를 해야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것들은 모두 청소년 명의로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탈가정 청소년인 A도 그랬다. 타인의 명의로 집을 구한 후 가스 연결을 하려고 할 때였다. A는 당연히 자기 혼자서도 문제없이 연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스 연결 기사는 ‘집계약을 한 비청소년’이나 ‘친권자’를 요구했고, A는 크게 당황했다. 다행히도 다른 비청소년 덕분에 어려움을 넘기기는 했으나 3명 이상의 명의가 얽힌 집이 되어버렸다.

청소년 자립 막는 사회
세 번째,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청소년

‘돈’과 ‘집’ 문제만 봐도 청소년은 친권자의 도움 없이, 비청소년의 도움 없이는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탈가정 청소년 B가 집에서 나온 지 3개월이 넘었을 때였다. 그는 30만원 정도의 적은 돈으로 한달을 버텨야 했기에 계속 부실하게 식사를 했다. 그 때문인지 건강했던 그의 몸은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게 되었고, 결국엔 심하게 아파 병원에 가야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가출 신고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이름으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결국 친구의 이름을 빌려서 병원에 갔지만,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다.

또 다른 탈가정 청소년 C는 자신의 건강이 너무 나빠지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가정으로 돌아가면 다시 폭력에 휩싸이게 될 테고, 탈가정 상태를 유지하면 건강을 잃게 된다. 결국 그는 폭력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청소년 자립 막는 사회가 청소년 ‘가출’하게 한다

‘원래의 가정에서 벗어난다’라는 탈가정이라는 용어는 전 연령대에서 사용하고 사용할 수 있는 용어다. 하지만 청소년이 집을 나가는 것에 대해서만 ‘가출’이라고 부른다. 내 주위의 많은 탈가정 청소년들이 탈가정을 하는 이유는 ‘가정폭력’과 ‘입시경쟁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두 가지 모두 흔한 일이고 둘 다 겪는 사람도 많다. 입시경쟁 때문에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 사회는 청소년이 그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찾아주지 않은 채 ‘그 나이에는 다 겪어야 하는 일’이라며 참으라고 한다. 대신 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 시도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막아선다. 그렇게 청소년이 ‘가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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