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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명제: 꿈꾸는 가로수
규격: 65cm x 90.8cm
재료기법: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연도: 2012년 작
드로잉 씨와 호당 10만원
청년화가시절 개인전 때의 일이다. 종이에 못으로 흠집을 내고 그 위에 연필을 문질러 그린 소묘 작품 400여점을 가지고 드로잉 전을 열었는데, 전시 기간 중 일류대학 출신에 대기업 중견 간부로 재직한다는 손님 한 분이 그림을 보러 오셨다. 나는 열심히 드로잉 전을 열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었고, 그분은 조용히 차를 마시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았는지 작은 그림 하나를 지목했다. 생전 처음 그림을 사는 것이라며 입을 뗀 그분의 조심스러운 질문이 이어졌다.
“이 화백 말씀을 듣고 보니 그림에 대해 조금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만...저는 개인전 하는 줄 알고 왔더니 드로잉 씨와 둘이서 전시회를 하는 모양이지요?”
순간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옳을지 몹시 당혹감을 느꼈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내가 당연히 알고 있는 미술에 대한 기본적 용어나 이해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고 낯선 ‘특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뿐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작품전을 열다 보면 화가와 관객간의 소통부재에 의해 생기는 에피소드는 많다. 선배작가가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도 잊지 못할 사연을 남겼다. 중앙화단에는 첫발을 디딘 전시회라 준비도 많이 했고 의욕만큼 기대도 컸다. 그리고 전시 첫 날부터 행운이 찾아왔다. 손님 한 분이 그림들을 일일이 살피더니 작품 구매 의사를 밝히며 가격을 문의해온 것이다. 화가는 호당 10만원이고 10호짜리 그림이라고 알려줬더니 갑자기 손님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거침없이 대작을 포함해 대여섯 점의 그림을 더 지목하고 연락처와 함께 전시회 마치는 날 작품을 찾아갈 시간까지 상세하게 약속하고 갔다. 화가와 친구들은 그날 난리가 났다. 돈 한 푼 깎지 않고 구매한 작품 가격은 전시회 경비는 물론 당분간 작업하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시골 화가가 서울에 입성하자마자 대박을 쳤으니 무엇이 아까우랴...! 그날 뒤풀이도 한풀이하듯 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전시기간 내내 아쉬울 것이 없어서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약간의 가격 조율을 부탁해오는 다른 관객들에게는 자존심을 고수했다. 굳이 작품 가격을 깎아주면서까지 작품을 팔아야 할 궁색한 이유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전시 마지막 날 약속한 시간에 그 귀하신 고객이 왔다. 그런데 서둘러 작품을 포장하고 작품 값이 든 봉투를 건네받는 순간 화가는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봉투가 지나치게 얇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수표인가 싶어서 열어보니 웬걸! 만원권이 눈으로도 금방 헤아려질 만큼만 달랑 들어있었다. 급히 그림포장을 중단시키고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다 보니 작품가격에 대한 서로간의 오해가 금방 드러났다.
화가는 호당 10만원이니 10호면 100만원이라고 설명한 것이었지만, 호당 가격 개념이 없던 손님은 작품이 그냥 점당 10만원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니 이 좋은 작품들이 너무 싸다는 생각에 흥분해 여러 점을 선택했던 것이다. 1호는 관제엽서 두 장 정도의 크기이고 10호라 하면 마치 컴퓨터나 TV화면처럼 대각선으로 10배의 비율만큼 늘어난 크기를 뜻한다는 설명과 함께, 열 배 곱해진 작품의 실재 가격을 전해 들은 그 손님은 기절할 듯이 놀라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야심차게 서울 전시를 열고 첫날부터 만루홈런을 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배 화가는 결국 빚만 잔뜩 늘려서 한숨과 걱정 속에 쓸쓸하게 짐을 싸야만 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초, 중등학교 미술시간을 끝으로 미술에 대한 정보를 차단당한 채 성인이 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다소 미술을 이해하며 산다는 사람들도 사물 재현에 중점을 둔 방향으로 편중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의 70% 이상을 시각에 의존한다. 미술은 당연히 그만큼 생활 속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그것을 느끼고 누리는 것, 대부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타고난 미적 표현의 감수성을 회복하고, 낯선 미술용어와 미술에 대한 상식을 이해하는 것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길이다.
드로잉 씨와 함께 한 나의 개인전과 시골화가 상경기가 남긴 일화를 떠올릴 때마다, 화가는 예능인이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에 빠져 세상과의 거리감을 은근히 즐기며 살게 아니라 미술이 대중과 화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트기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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