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수) 낮 12시, 캠프워커 후문에서 을지프리덤가디언 전쟁연습반대 일인시위를 했다. 미군부대 앞에 있으면 꼭 발생하는 촌극이 있다. 사진 찍을 때마다 군인이나 경비가 와서 사진에 부대가 나오면 안 된다고 하는 간섭이다.
작년 고엽제매립범죄사건이 터졌을 때, 왜관 캠프캐럴에서 매립범죄규탄 시위할 때도 KBS 카메라가 취재하자 경비가 나타나서 같은 소리를 했다. 참~ 그 착한 PD, 부대는 안 나왔다면서 경비에게 카메라까지 보여준다. 올 초, 무지하게 추웠을 때, 미군부대 출입증 뒷거래 사건이 터져서, 캠프워커 정문에서 매일 점심때 진상규명 촉구 시위를 할 때도 인증샷을 찍으면 꼭 와서는 시비를 걸었다.
자기들은 한국 땅에, 수 백만 명을 몰살할 수 있는 다이옥신 독극물이 있는 고엽제를 땅에 그냥 묻어버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그냥 덮어버리고 지나가는 놈들이, 또 이북을 점령하는 시나리오를 실전처럼 벌이는 전쟁훈련으로 한반도를 온통 긴장과 대립으로 몰아넣는 반평화의 장본인이, 그런 일에 비하면 건수도 되지 않는 사진 간섭을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부대에 사진이 나오면 안 된다는 말도 그렇다.
왜냐하면, 3월 키리졸브 전쟁연습 할 때, 캠프워커 활주로에 온통 전쟁장비를 늘어놓고 밤새도록 콤프레샤를 틀어서 대명 5동 주민을 소음과 불면에 시달리게 할 때, 기자들이 주택옥상에 올라가서 소음의 실상인 부대 안 광경을 취재해서 보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대로 부대 안을 찍은 일도 있는데, 기지 앞에서 사진에 부대가 나오면 안 된다고 하는 그놈들이 한심할 뿐이다. 오늘 복음이야기에 나오는 장로들의 유전도 이와 비슷하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과 율법학자 간의 논쟁이다.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이 갈릴리에서 설치는 예수를 직접 알아보러 내려왔다. 율법학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성전체제에서 율법해석으로 권력을 지탱하는 지배세력의 한 축이다. 요즘 뉴라이트 식자들이 자기들의 알량한 이론으로 지배세력의 통치에 근거를 제공하듯이, 당시 율법학자들이 이런 역할을 수행했다. 예루살렘에서 안락을 누리는 부류들이 일부러 갈릴리 먼 길을 직접 내려왔으니, 예수 소문이 이들에게 꽤 성가신 현안이었다. 이들은 예수를 주시하자마자 건수 하나를 즉시 포착했다. 예수일당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거다. 소위 장로들의 유전을 어긴 것이다.
씻지 않은 손으로 밥을 먹는 게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우리 문화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풍토와 자연환경을 보면 이해가 된다.
팔레스타인의 지형과 풍토는 항상 건조하다. 팔레스타인의 서쪽은 지중해이고, 나머지 동쪽, 북쪽, 남쪽은 사막이 흩어져 있다. 게다가 비라고는 1월과 2월 사이 한 달만 내린다. 그러니 늘 메마르고, 먼지가 자주 분다. 그래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도록 하는 자연스러운 위생규범이 생겼다. 그런데 지배세력이 이 위생규범에 권력작용을 가했다.
이전 시대 율법학자들이 순수 동기로 만든 위생규례가 세월이 흐르면서 계명과 율법에 버금가는 정결례 율법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처음에는 위생상 손 씻고 음식 먹으라는 권장사항이었는데, 이를 어기면 부정한 몸이 되고, 부정한 몸은 속죄받아야 하는 율법으로 고착시켜 버린 거다.
바로 여기에 지배세력의 카르텔이 작용했다. 만약 양심적인 제사장에게 가면 손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는 혐의는 애당초 속죄니 뭐니 할 건덕지가 아니었다. 율법에 부정하다고 명시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지배세력의 의도와 배치되는 일이다. 성전세력은 그런 소신 있는 제사장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히 성전세력과 쿵짝이 맞는 제사장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고,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제사장은 손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일도 부정한 죄로 선언하여서 백성들은 제사장에게 가서 제물을 바치고 사함을 받아야 했다. 장로들의 유전이 민중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장로유전이 허위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예수무리에게는 장로유전이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예수무리는 늘 자연스럽고 편하게 음식을 먹었다. 누가복음 11:38을 보면, 예수께서도 음식 들기 전에 손을 씻지 않은 것을 보고, 초대한 바리새가 이상히 여겼다는 말씀이 나온다. 즉 이들은 이미 그들만의 해방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별명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예수무리는 지배자들이 설정해 놓은 억압질서를 아예 무시하고 살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율법을 어긴 죄인의 패찰이 붙었고, 그런 별명이 나온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방자 예수는 지배세력이 구축해 놓고, 온갖 선전도구로 포장, 위장, 유혹하는 네트워크에 아예 처음부터 편입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늘 항상 자유롭고 거칠 것이 없었다.
요즘은 지배질서의 한 자리, 한 마름이 되려고 착하고 고분고분하게 얌전히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젊은이들이여, 새 세상을 상상하라. 투신하라. 먹고 사는 일에 인생을 저당 잡히지 마라.
예수님이 분명히 선언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5,26)라고.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때 나보다 체구가 배나 되는 용역놈이 그랬다. "내가 이 일을 안 하면 굶어죽는다. 그럼, 목사님이 책임 질거냐"라고 핏대를 올리길래, "이놈아, 하나님이 모두 다 먹고 살 게 해 놨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구실에 너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깨우치고 받는 자들에게 구원이 있을지니! 갑자기 선동문구가 나온 것을 양해하시라. 그만큼 복음서에서 우리 현실이 너무도 생생히 보이기에 필자가 잠시 오버했다.
율법학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장로들의 유전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 해방공동체를 사는 예수무리의 영향력이 민중에게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미연에 그것을 차단하고자 시비를 걸고 현행법으로 재갈을 물리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태도가 담대하다. 율법학자들이 장로들의 규례를 어겼다고, 부정하게 됐다고 시비 걸자, 일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반격한다. "이사야 예언자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고.
그런데 의문이 있다. 어째서 계명도 아닌 것이, 율법도 아닌 것이, 이토록 오랜 세월 백성들을 지배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자들이 그렇게 조장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백성들의 호응도 한몫했다. 그들 역시 고작 장로들의 유전을 하면서도 손을 씻으므로 자신이 하나님께 경건하다고, 자신을 기만하는 거짓안전에 빠졌다. 이렇게 권력자나 백성이나 가릴 것 없이 온통 허위의식에 갇혀 버렸다. 그래서 예수께서 권력자만이 아닌 '백성'까지 비판하는 거다.
예수는 당대 지배세력이 구축해 놓은 억압체제를 분쇄하고 대상화돼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했다. 그래서 복음, 기쁜 소식이 된 거다. 황제의 복음은 황제만의 지배구조를 유지, 확장하는 소식이지만, 예수의 복음은 모든 사람을 해방과 평등으로 이끄는 소식이다. 그런데 이런 기쁜 소식도 듣는 사람이 받아들여야 한다. 듣기만 실컷 듣고 여전히 구습-장로들의 유전을 행하며 거짓안전에 갇혀 있으면 소용없다.
예수의 복음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무수한 거짓안전 울타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도전한다. 자유해방평등세상을 향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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