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맨날맨날 멘붕하는 진냥의 추천만화 (6)

최종병기 그녀 - 고통은 몰아주기?
뉴스일자: 2012년09월01일 05시40분

[글쓴이 주] 숨어서 보지 말고 소문내면서 만화 보자. 보면서 멘붕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심오해도 괜찮아. 세미나 해도 좋아. 만화책도 책인걸~ 멘.붕.독.서

옛말에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많이 많이 다른 이들과 나누라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삶에서 고통은 개인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고스톱 칠 때만 독박을 씌우는 게 아니라 삶에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독박을 씌우기 시작했다. ‘모두가 다 고생하는 것보다 그냥 한 명이 고생하는 게 낫지 않아?’란 말은 이제 일상에서 익숙하게 들을 수 있다.

다카하시 신의 원작을 그린 <최종병기 그녀>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독박을 쓰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심지어 전쟁을 혼자 뒤집어썼다. 그래서 처절하고 처절하다.

▲ 치세와 슈지가 교환일기장을 주고 받는 모습

전쟁 중... 하지만 아직 전쟁터가 되진 않은 도시. 가끔 공습경보가 울리면 대피해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꾸려나가고 학교에 다닌다. 그리고 어느 날 치세는 슈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다. 사귀기로 했지만 연애에 서툰 두 사람은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갓 시작된 연애, 그 사근거리는 시간. 하지만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리고 폭격이 쏟아진다. 충격으로 쓰러진 슈지는 잔해 속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발견하게 된다. 최종병기 그녀를.

▲ 슈지는 잔해 속에서 깨어나 발견하게 된다. 최종병기 그녀를... 병기가 되어버린 치세의 몸

폭격으로 다친 몸을 자신도 모르는 새에 군에서 병기화된 이후, 적의 침입에 단신으로 전투에 나서게 된 치세. 자신이 가장 강한 병기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도시가 파괴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매일 온갖 약을 먹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져도 전투에 나선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 도시는 아직 전쟁터가 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말한다.

▲ 치세는 온몸이 너덜너덜해져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OVA(Original Video Animation,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TV 방송이나 영화 상영 없이 오로지 소매로 파는 애니메이션)에서 왜 치세가 병기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갑작스럽게 전쟁이 발발한 이후 병기로 만들 신체가 필요했고 당시 폭격으로 죽음을 앞둔 신체들 중 가장 병기화에 적합한 신체가 치세였다. 거기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고민은 없다. 수많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대의만이 존재할 뿐이다.

OVA에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치세 역시 군이나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치세의 삶은 서서히 변해간다. 사람에서 병기로. 그리고 치세는 병기가 되어가는 자신을 못 견뎌한다.

「나는 이제 정비를 받지 않으면 죽게 돼」
「미안해」
「... 난 병기니까.」

그리고 점차 치세는 ‘사람’을 잃어간다.

▲ 치세는 점점 '사람'을 잃어간다.

전쟁을 자신의 몸 하나에 짊어지고 있는 치세의 모습은 마치 영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The Hunger Games, 2012)>을 연상시킨다. 헝거게임에서는 12개 구역으로 나누어진 나라가 등장하는데, 1구역에서는 매일 파티가 벌어지는 반면 12구역에서는 기아에 시달리는 등 각각의 구역들은 사회경제적으로 굉장히 차별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불만과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12구역에서 각각 한 쌍의 소녀, 소년을 뽑아 죽음의 레이스를 펼치게 하고 그 레이스의 승자는 정말 다른 모든 이를 죽인 후 12구역 전체의 통합과 단결의 상징으로 살아가게 된다. 사회의 부조리를 개인들이 겪는 고통과 경쟁으로 대치시키는 헝거게임은 극단적으로 표현되었을 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영화 속 사회가 ‘누구의 손에 피가 묻힐건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조금씩 피를 묻히는 방식이 아니라 소수가 피에 질식해가는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지 않나...


이제 다 놀았을까? 전쟁놀이

정말... 당신들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고통받지 않을 애들까지
많이 고통받았잖아

언제까지 꿈만 꿀 꺼야?
왜 전쟁이 전부 상식대로
진행될 거라 믿는거야?

이 전쟁은 반드시 끝을 내겠어
그렇게 말했잖아?

이 나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거라고
그렇게 약속했잖아?

그랬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 최종병기 그녀 OVA 1편 치세의 대사 중

결국 지구는 전쟁으로 멸망한다. 전쟁의 이유가 무엇이었고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가 하는 전쟁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스토리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죽고 전 행성이 파괴될 만큼 인류는 전쟁을 멈추지 못한다. 치세는 마지막 장면에서 온몸이 부서져 간다.

원작은 7권으로 이루어진 만화책이지만 나는 13화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했다. 7화부터는 보는 내내 주르륵주르륵 하다가 11화 후반부터는 엉엉엉, 다보고 나서는 꺼이꺼이 눈물범벅이었던 기억이다. 나 말고도 그러신 분이 많은지 20세기 이후 가장 슬픈 애니메이션으로 불린다. 이 칭호가 전혀 무색하지 않다는 것은 이후에 외전집 <세계의 끝에 선 너와 둘이서>가 나왔고 OVA가 2편, 소설 <최종병기 그녀>에다가 같은 제목으로 실사 극장판까지 제작된 인기를 보고 추측할 수 있다.

원작과 애니메이션은 결말에 조금 차이가 있다. 애니메이션은 전쟁이 나고 치세가 그걸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후에 종말이 오는데, 원작은 종말이 먼저 온다. 둘 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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