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최저임금 결정시기이고, 8월은 최저생계비 결정시기다. 최저임금제도는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최저임금은 해마다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들 간의 줄다리기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물론 권력관계에서 밀려 최저임금이 현실적으로 결정된 적은 없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실상 유명무실 하다. 노동계에서는 이를 없애는 것이 났다는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난한 시민, 수급자의 입장에서 부러울 따름이다.
최저생계비는 복지부에서 정하는 대로, 물가상승률에 따라, 말 그대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당신이 이 돈으로 한번 살아봐!’라는 분노를 한풀이로 보건복지부 담벼락에 대고 외칠 수밖에 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은 낮은 수준의 최저생계비, 추정소득 부과 등 여러 독소조항들로 인해 ‘(당당하게 보장받을)권리’라고 부르기 민망한 것이 현실이다. 이 중 가장 문제는 ‘부양의무제’다.
정부발표 자료만 보더라도, 410만여 명의 비수급 빈곤층 중 1/4에 해당하는 100만여 명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임에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급여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할 수 없더라도 부양의무자의 존재 때문에 수급에서 제외된다. 또 수급을 받는 경우에도 측정되는 부양비(간주부양비-실제 부양여부와 관계없이 부여되는 부양비)로 인해 수급비가 깎여 생계를 위협 당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 가족 부양은 삶의 족쇄가 된다.
재작년 경남에서는 장애 아이를 둔 아버지가 자식 수급권 보장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작년에는 60대 노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라는 유서와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비록 뉴스에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죽음의 원인은 상당부분 빈곤의 문제다. 빈곤을 방관하는 빈약한 복지제도가 가난한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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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이 보건복지부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하는 모습 [출처 : 비마이너] | | |
‘가난은 가족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다’라고 외치며 많은 이들이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보건복지부 ‘행복e음’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통한 대대적인 부양의무자 조사였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11만 6천여 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자격을 상실했다. 실질적인 생활실태와 부양여부는 알아보지도 않고 전산상의 자료만을 가지고 이루어진 행정의 결과다.
지난 4일, 정부는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열고 빈곤정책 제도개선 방향을 논의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원 방식을 ‘통합 급여’에서 ‘개별 급여’로 바꾸고, 복지 혜택을 차상위 계층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 등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 개편을 예고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근로능력이 있는 일부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수급자들의 근로의욕을 높이기 위해, 일할 능력이 있는 빈곤층은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분리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앞서 수급자들의 의료급여가 정부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수급자들의 ‘본인 부담금’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그토록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정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그 목소리에 역주행하고 있다. 정부의 개편방안 대로라면 근로능력에 대한 엄격한 판정을 거쳐 수급자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기초보장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온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나 총 복지예산의 확대 등은 이번 논의에서 검토조차 되지 못했다.
현재 대구에서 반빈곤운동을 하는 연대체인 반빈곤네트워크는 길거리 현수막을 걸고 수급 삭감 탈락한 이들의 사례를 모으는 중이다. 올 초에도 대대적인 ‘색출’작업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주는 수급비를 그나마 ‘고맙게’ 받던 사람들에게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동사무소, 구청을 찾아가 하소연도 해보았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공무원의 답변에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걸려온 다급한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삶의 고통을 짐작케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수급 탈락과 함께 의료적인 지원까지 박탈된 것이다. 수급자에서 떨어지면 비싼 지역의료보험료를 내야 하는데 체납으로 독촉을 받고 있다.
부양의무제는 빈곤의 ‘연좌제’다. 부양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의 소득환산액 기준이 비현실적이어서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의 동반추락을 양산한다. 빈곤한 삶으로 인해 가족관계가 취약해져 있는 조건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족관계 파탄을 초래할 뿐이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복지가 될 수 없다.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에서 복지를 이야기했지만 ‘부양의무제 폐지’ 없는 복지란 한낱 ‘싸구려 동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