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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6월08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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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부양의무자의 덫](3) 생면부지 아들과 관계단절 증명 요구하는 국가
젊었을 적 바람피워 낳은 아들... 얼굴도 기억 안나는데 관계단절 증명해야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4평은 될까. 작은 방에는 옷가지가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조금 더 큰 옆방에서는 막내아들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구요” 막내아들이 이환동(가명, 77살)씨에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는 질문은 아니었다. 막내아들은 곧장 문을 나섰다. “야가, 정신이 옳잖아. 그저께 나갔다가 어제 밤에야 들어왔어. 어데를 가서 누구한테 맞았는지 얼굴이 시뻘게져서 들어왔더라고...” 음료수를 내오며 이 씨가 말했다.

이 씨는 평생 가난을 벗 삼아 살았다. 젊었을 적 운영한 고물상으로 근근이 돈을 모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집을 장만했을 뿐이다. “50년 전에 1200만원 주고 샀어. 지금 팔려고 하면 3천만원은 받을란가...” 공장지대 한 켠에 자리잡은 50년 된 집은 그대로 시간을 50년 전으로 거슬러 놓았다. 낡은 집은 작은 방이 두 칸, 차라리 부뚜막이라 보는게 옳아 보이는 부엌이 하나 딸려있다. 부엌 한 켠에는 지난 겨울을 지켜준 연탄이 쟁여져 있었다.

▲ 이환동 씨의 집, 여기저기 옷가지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박스들이 쌓여 있다.

이 씨는 지난해 12월까지 인근 시장에서 경비 업무를 봤다. 30여년전 고물상을 그만두고 시작한 일이다. 지난해 시장 번영회는 더 이상 경비를 쓸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경비 업무를 중단시켰다. 한순간에 이 씨는 실직자가 되었다. 당장 생계가 문제였던 이 씨는 기초수급비를 신청했다. 그 과정에서 이 씨는 까맣게 잊고 살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40년전 바람피워 낳은 아들... 수급비 받으려면 관계단절 증명해야

“군산에 공무원 하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더라고, 가 때문에 수급자가 안된다고 하데, 40년 동안 연락 한 번 안한 아들이라, 내가 바람피워서 낳은 아들이거든” 구청은 부양 능력이 있는 자식이 있으면 기초수급비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구청의 최첨단 전산망은 그와 아들의 지난 40년 세월을 알지 못했다.

젊은시절 자주 가던 술집에서 만난 여성과 아이를 가졌다. 스물다섯에 이미 중매로 결혼을 해서 아들, 딸 넷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안 이 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호적에 올리도록 조치했다. “어머니가 엄격했거든, 니 아들이 맞으면 호적에 올리는게 맞다 캐서 호적에 올렸지”

호적에는 올렸지만 평생을 남으로 살아왔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얘 엄마가 아들과 함께 찾아와 잠깐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다. “아 엄마가 아를 데리고 와서, ‘너그 아저씨다’ 카더라고, 아버지도 아니고 아저씨라 캐, 그때 본게 다라” 평생 그는 아들에게 “아저씨”였다.

구청은 이 씨와 아들의 40년 세월을 스스로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수급비를 받기 위해서는 아들과 이 씨의 관계가 단절 되어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구청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40년 만에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아들은 “이제 와서 무슨 연락이고, 뭘 부탁하는거냐”며 관계단절 확인을 요청하는 이 씨의 부탁을 거절했다. 이후 아들은 이 씨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뉴스민>의 취재결과 이 씨의 아들은 이 씨의 부탁과는 상관없이 얼마 후 지역 구청의 요구로 이 씨와의 관계단절을 증명해놓은 상태였다. 이 씨는 전혀 이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

“자장면 한번 먹고 싶은데 그것도 못 먹고...”

이 씨에게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군산 아들 외에도 4명의 자식들이 있지만 이들과의 관계도 거의 단절되어 있다. 지난 설 명절에 가족이 모이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이 씨는 “설이 뭐라, 10년 동안 얼굴 한 번 못봤다. 전부다 뿔뿔이 흩어져 사니까네, 남 한가지라”라고 대답했다.

아들과의 관계단절, 이 씨 자식들의 경제형편을 확인한 관할 구청은 얼마 후 수급비 20만원을 허락했다. 어렵게 받게 된 수급비 20만원과 이 씨와 부인 몫으로 나오는 노령연금 15만원이 그에게 주어진 전부다. 경제 능력이 없는 막내아들과 치매 증상이 심한 부인까지 세 명이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돈이다.

가장 바라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이 씨는 “4, 50만원만 되도 먹고 살겠구만... 자장면 한번 먹고 싶은데 그것도 못 먹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사무국장은 “이 씨와 같은 사례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국가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들의 수급비나 수급자격을 삭감하거나 탈락시키지만 이 씨처럼 부양의무자와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경우는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구청의 전산시스템은 이를 잡아내지 못하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구제도 받지 못한 채 빈곤에 허덕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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