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지난 5월 12일부터 1박 2일간 대학생노동인권감수성학교 ‘청년 전태일 대학생에게 말을 걸다’가 열렸다. 88만원 세대로, 청년실업자, 알바생으로 등록금 빚더미에서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노동’과 ‘노동자’를 고민하기 위한 자리였다. 1박 2일간 대구대, 계명대, 경북대에서 30여 명의 학생들이 강연과 역할극, 노동시와 노래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뉴스민은 참가자들의 후기 2편을 이틀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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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가자들은 첫째날 저녁 노동시로 만든 노래공연을 함께 만들었다. | | |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것. 첫 강연에서 들은 말이었다. 대학이라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노동자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학점을 관리하고 스펙을 쌓으면서 대학을 벗어났을 때 ‘기업’이라는 곳에 잘 적응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조별로 모여 ‘노동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했다. 대부분 건설노동자, 제조업노동자 등 현장에서 일하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학을 졸업하는 우리가 취직했을 때의 모습을 노동자라고 떠올리지 않았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서류가방을 들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사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노동자로 인식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노동자가 되려고 인큐베이터 속에서 양분을 보충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노동자로 태어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희망버스를 타고, 함께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부르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 노동자는 그저 약자였고 그래서 도와줘야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곧 예비노동자라고 해서 연대가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노동자와 학생이 연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것과 대학생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 같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산으로 삶을 위협 당한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학문을 공부해야 할 대학은 취업공장으로 변했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스펙을 쌓는데 열중한다.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없다. 정리해고로 인해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와 학점과 취업 스트레스로 인해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삶. 전혀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정규직이 되어도 정리해고의 위험이 없는 안정된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노동인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노동을 통해 안정된 삶을 살아갈 권리. 대학생이 노동인권 감수성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도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한 대가로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아닌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1박 2일 동안 청년 전태일이 우리에게 건넨 말은 ‘청년학생들의 미래를, 노동자의 미래를 보장하자’였다. 노동자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것, 열악한 현실을 깨기 위한 투쟁 또한 열악하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자본과 권력에게 휘둘리고 있지만 미래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 억압 받고 착취 받는 이들을 우리는 민중이라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민중이라 부른다. 꽃다지의 노래 <주문>의 가사처럼 ‘저들이 말하는 계획 속’에 우리들의 미래는 없다.
연대를 넘어서 우리 스스로 노동한 대가를 보장받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청년 전태일이 내게 던진 울림이었다.
김규현(경북대 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