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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5월21일 10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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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가정의 달 5월, 우리는 왜 감사해야하는가
가정의 달에 필요한 것은 카네이션 아닌 어린이․청소년의 경제적 자립

진냥(편집위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jinnyang3@gmail.com

5월이다. ‘5월은 푸르구나~’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가정의 달이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5월은 온갖 모순이 뻥뻥 터져나오는 달이다. 마치 장애인권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4월 20일에 벌어지는 각종 기념식들이 분통 터지는 것처럼,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라고 불리는 것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그 느낌처럼. 아주 모순 덩어리의 느낌이다.

▲ 지난 15일, 대구시교육청은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문화센터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교육권리헌장 선포식을 가졌다.

특히 5월 8일은 어린이․청소년을 가정에서 양육하는 사람에게(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감수성을 고려한다면 혈연관계의 부모에게), 5월 15일은 어린이․청소년을 학교에서 훈육하는 교사에 대해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날이다. 여기에 주목해보자. 우리는 왜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그토록 ‘감사’를 강조하는가?

‘감사’는 당연하지 않은 상대방의 지원, 호의 혹은 헌신 등에 대해 받는 이가 가지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에 의해 복지정책이 확대될 때 국가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고,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안을 타결시켰을 때 사측에 대해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그것이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고, ‘당연’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감사를 강조하는 것은 혹시 가정에서 양육자가, 학교에서 교사가 어린이․청소년에게 제공하는 지원, 호의, 헌신 등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서가 아닐까?
 
예전에 어떤 이가 “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왜 내 자식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가 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었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양육과 교육은 사회의 재생산이라 말할 수 있다.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양육자와 교사는 당연한 수준을 넘어서는, 굉장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이 무거운 짐은 어린이․청소년 또한 당연하지 않은 존재, 즉 지나치게 높은 헌신이 요구되는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어놓는다.

그 결과, 헌신하고 있는 양육자와 교사는 어린이․청소년에게 자기 헌신 만큼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고 그 권리를 이용하여 어린이․청소년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부모인데 이 정도 말도 못하니?’ 또는 ‘내가 선생인데 내 말은 들어야지’ 등의 논리로 말이다. 이러한 개인 간의 갈등에서 국가와 사회는 멀찍이 떨어져있다. 그러면서 어버이은혜와 스승의 은혜 노래만 틀어대며 노고를 치하한다. 노래와 감사한다는 멘트 속에서 당연하지 않은 헌신을 강요당하는 사람들도, 통제의 굴레에 억압받는 사람들도 모두 묻혀버린다. 이것이 5월, 가정의 달이 감추고 있는 모순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기본소득제도나 학습수당제도이다. 기본소득제도는 그야말로 보편적 복지정책이기도 하지만 특히, 어린이․청소년이 양육자에게 경제적으로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추진되고 있는 무상급식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접근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무상급식은 교육이 의무교육이니 밥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로 주장되고 있지만,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무상급식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 계급 전반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무상급식은 사회가 어린이․청소년을 함께 먹여살리는 제도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상급식제도는 가정 혹은 다른 단위로부터 어린이․청소년의 생계가 자립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이 없어도,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립은 자신의 시간과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박탈되어 있는 지금의 어린이․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이다. 학생간 폭력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거나 거주지역을 자유로이 옮겨 폭력의 공간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면 자살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친다한들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도망칠 곳이 없다. 그러니 선택지가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청소노동자들이 식사를 화장실에서 하는 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성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일 등 경제적 종속이 얼마나 많은 권리를 집어삼키는지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과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인권침해에 대해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저항하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경제적 자립은 인권보장의 기본적 조건이다. 어린이․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5월, 가정의 달에 필요한 것은 카네이션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의 경제적 자립이다.

진냥(편집위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jinnyang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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