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5월 18일에 대한 기억은 무겁고, 고통스럽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32년 전 이날을 기억하려 한다는 것은 그 기억이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5월 18일을 기억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2년 전 5월 18일은 그 어느날보다 평범했다. 그 시절 자행됐던 국가의 폭력은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오늘날에도 쉽게 확인되는 평범한 폭력이었으며, 그 시절 평범한 폭력에 저항했던 사람들도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오늘, 32년 전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을 기억한다.
광주민중항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요즘 들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자칭 ‘진보당’이라는 통합진보당에서마저 우리가 그토록 혐오스러워했던 새누리당이나 민주당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정치’ 일반에 대한 혐오를 한 층 더 강화시키는 일이었다. 도무지 이들이 우리 삶을 바꿔주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들의 요구가 대의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리 투표해도 바뀌지 않는 세상 속에서 냉소하는 우리에게, 32년 전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몸으로 저항했던 역사가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요즘 경북대 학생사회를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을 한 층 더 짓누른다. 기성 정치권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총학생회의 실책들과 각종 의혹들은 우리가 느꼈던 ‘정치’일반에 대한 혐오를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냉소로 기묘하게 전염하는 것이었다.
총학생회의 실책을 두고, 수많은 학생들이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 총학생회를 비판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있다. 두 번에 거친 전학대회에서는 다섯 시간동안 팽팽하게 토론이 오가기도 했다. 더욱이 일부 단대 대의원은 총학생회장의 행보를 비판하며 전학대회에서 단체로 퇴장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위와 같이 일부 단대나 대의원들이 전학대회의 단체 퇴장이라는 강력한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그 행위가 진정 학생자치에 대한 신뢰상실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지를 따로 평가해야할 부분이다)
위와 같은 학생들의 행동이 나름의 방법으로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하고, 냉소가 아닌 건전한 토론을 하며 학생사회 재건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라면, 암울한 상황에서도 조금은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겁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 경북대 속에서, 광주 민중항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32년 전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우리 경북대 학생들도 냉소와 혐오를 넘어 스스로의 정치를 시작해야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일이다. 이미 우리 스스로의 정치가 시작되었다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