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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5월18일 16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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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정신, 연대의 정신. 5월 광주를 위한 기억
518광주항쟁과 이름없는 열사들의 잠자리

뉴스민 편집국 newsmin@newsmin.co.kr

[편집자 주] : 518광주민중항쟁 32주년이다. 국가에서도 518을 기념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5월이면 유족이 아니더라도 광주를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 뉴스민은 5월 광주의 의미를 찾아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광주의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싣는다.

5월 광주항쟁 일지

1979.10.26 박정희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하여 피살,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전역 계엄령 선포

11.24 민주화운동 지도자 140명 신속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울 YMCA의 한 집회에서 체포, 무수히 고문을 당함.

12.12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이용하여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무력 점령하는 12·12 군사쿠데타를 성공시켜 반대세력을 강제 전역시키고 12·12 군사반란세력을 규합, 권력을 장악.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체포. 휴전선 전방부대가 불법으로 이동. 전두환의 처남이 계엄사령관이 됨. 전두환은 박정희의 지지자로 알려짐.

1980.4.14 혼미정국 계속되는 가운데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함과 동시 보안사령관 겸임을 유지

4월 중순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범위한 학원가 데모와 금기였던 노동쟁의 시작됨

5월 초순 데모계속확대, 계엄철폐와 전두환 퇴진 요구

5.15 서울중심가 5만명 시위, 신현확 총리 민주화 가속화 약속
5.16 광주금남로에서 3만명의 학생과 시민 평화적 시위 및 횃불 데모, 양김씨 데모자제 요구, 정부측 답변을 듣기로 함.

▲옛 전남도청.

5.17(토요일, 맑음)
전국적인 계엄선포, 사실상 전두환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킴, 모든 정치활동 금지, 대학폐쇄, 국회집회금지, 국가원수 비판금지, 김대중 등 정치인 재야 지도자 학생 등 체포구금
·21시 40분 : 비상국무회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의결
·23시 00분 : 민주인사, 복적생, 학생운동 지도부 등 예비검속
·24시 00분 : 비상계엄 전국확대, 광주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및 학생 연행

5.18(일요일, 맑음)
·9시 40분 :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생 50여명이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 당함.
·10시 00분 : 학생들이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
·10시 15분 : 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10시 20분 : “금남로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
·15시 40분 : 유동 3거리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진압작전 감행
·19시 02분 : 계엄사령부, 광주지방 통행금지시간이 저녁 9시로 앞당겨졌다고 발표

5.19(월요일, 오후부터 비)
광주에 주둔한 군인들의 구타, 총칼질, 무자비한 진압, 학살이 시작됨. 시민들이 군인들의 만행에 충격을 받고 청년․학생에 합세, 이 때 부터 민중봉기 형태로 바뀜. 어린이, 임산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학살함.
·3시 00분 : 증파된 11여단 병력, 광주역 도착
·9시 30분 :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누문동 파출소 방화
·10시 00분 : 시민들 수가 점차 불어나면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14시 40분 :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무리한 진압작전 전개
·15시 00분 :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회의를 갖고 시위 진압을 완화하도록 건의
·16시 30분 :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부상
·20시 00분 : 수만명의 시민들 “전두환 타도” 외침.

5.20(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공수부대의 만행에 대한 소식이 퍼져나감. 10만 이상의 광주시민들 항거에 나섬. 방송국이 불탐. 병원 초만원, 군부에 의한 내각 해산
·8시 00분 : 고등학교 휴교조치
·10시 20분 : 카톨릭센터 앞에서 남녀 30여명이 속옷만 입힌 채 심하게 구타당함. 공수부대와 시민간의 공방전 계속
·18시 40분 :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이자 시위대 분위기 고조
·20시 10분 : 시민들이 도청을 향해 금남로, 충장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경찰과 대치
·21시 05분 : 노동청쪽에서 시위대 버스가 경찰저지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4명 사망
·21시 50분 : 광주MBC건물 방화
·23시 00분 :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 사망

5.21(수요일, 맑음)
30만명의 대집회 및 항거, 데모대 군차량 징발, 무기획득, 군대 시내에서 철수, 전화통화 차단, 밤 12시경 데모대 도청 점령, 중앙에서는 새내각 출발
·0시 35분 : 노동청 방면에서 군중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 전개
·2시 18분 : 시외전화 두절
·4시 00분 :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에 등장
·4시 30분 : 광주KBS건물 방화
·8시 00분 : 시위대,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20사단 병력과 충돌
·10시 15분 : 실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 맨 앞으로 교체
·10시 19분 : 광주세무서건물 전소
·11시 10분 : 대형헬기, 도청광장에 도착
·12시 59분 :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13시 00분 :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 사격 시작
·13시 20분 : 청년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계속 쓰러짐
·14시 15분 : 도지사, 경찰헬기에서 시위해산 종용하는 설득 방송
·14시 35분 : 시민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14시 40분 : 시민들이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 입수
·15시 48분 : 공수부대원들이 주요빌딩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
·16시 00분 : 화순, 나주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16시 43분 : 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 설치
·17시 30분 :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5.22(목요일, 맑음)
시민들 광주를 장악, 김대중씨 선동죄로 기소, 1만여명의 군대로 광주외곽 포위, 시민위원회 구성, 군부와 협상시작, 데모가 전남 전지역으로 확산 수천명 사망설이 파다하게 퍼짐.  한미연 합사령관의 작전 지휘권 아래 있는 한국군을 군중진압에 사용 허용, 미국방성대변인 토머스도스는 북한이 현 한국의 상황을 악용할 기미는 없다고 발표, 그러나 미국 정부는 오끼나와에 있는 조기경보기 2대와 필리핀 수빅만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로 이동 결정.
·9시 00분 :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10시 30분 : 군용헬기 공중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 살포
·11시 25분 :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12시 00분 :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13시 30분 :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의 수습안 전달
·15시 08분 : 서울서 대학생 5백여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
·15시 58분 :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 개최
·17시 18분 : 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17시 40분 : 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21시 30분 : 박충훈 신임국무총리, “광주는 치안 부재상태”라고 방송

5.23(금요일, 맑고 한때 흐림)
대통령 살해죄로 김재규 처형.
·8시 00분 :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10시 00분 :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서 집회
·10시 15분 :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11시 45분 : 도청과 광장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13시 00분 :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15시 00분 :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
·19시 40분 : 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에 도착

5.24(토요일, 오후에 비)
광주의 5만 시민 우중데모 감행, 광주의 외곽출입 일체 금지
·13시 20분 : 공수부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14시 20분 :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 발생
·14시 50분 :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25(일요일, 비)
3만시민 도청 앞 광장에 집결, 시민위원회의 입장 공식화를 위한 집회, 투항이냐 계속투쟁이냐, 강온으로 갈라져 갈등이 심각해짐.
·11시 00분 :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와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원 전달
·15시 00분 :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7시 00분 :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
·21시 10분 :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등 논의

5.26(월요일, 아침 한때 비)
항쟁지도부와 수습대책위의 의견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정부 중재기미를 보임(군투입 진압허용을 의미한 듯함)
·5시 20분 : 계엄군,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8시 00분 :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10시 00분 :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4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15시 00분 :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7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19시 10분 :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조치 시킴.
·24시 00분 : 시내전화 일제히 두절

5.27(화요일, 맑음)
미국 국무성의 ‘무질서와 혼란상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발표와 함께 수천명의 군인이 탱크를 몰고 시내로 진입, 무차별 학살되고 군부가 통제권 장악
·3시 00분 :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
·4시 00분 : 도청 주변 완전 포위, 금남로에서 시가전 전개
·4시 10분 : 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5시 10분 : 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
·6시 00분 : 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 방송
·7시 00분 : 공수부대, 20사단 병력에 도청 인계
·8시 50분 : 시내전화 통화 재개

5.28(수요일)  수천명 체포 연행․구금․수배시작․김대중 등 사형선고

망월동묘역 소개

-구묘역
망월동 구묘지는 518민중항쟁 당시 산화한 영령들이 묻혔던 곳으로 ‘망월동 묘지’라 불려왔다. 당시 가족과 친지들은 항쟁 와중에서 공포와 분노에 떨며 처참하게 훼손된 주검을 손수레에 싣고 와 이곳에 묻었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5월 27일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은 청소차에 실려와 묻혔다. 그 뒤 이곳이 ‘민주성지’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자 군사반란집단은 돈으로 매수하려고 협박을 일삼으며 묘를 파내게 하는 등 묘지자체를 없애려 획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80년 5월 광주를 기억했던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매년 5월이면 5.18구묘지는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구심역할을 해왔다.
 
1994년부터 묘지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1997년 새로운 5.18묘지가 완성되자 이 곳에 묻혔던 영령들은 치욕의 17년을 뒤로 하고 새묘역으로 이장되어 비로소 편안히 눈을 감게 되었다. 80년 이후 반독재 투쟁을 전개하다 산화하신 김남주, 이한열, 강경대 등 민주열사들과 노동열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민주성지이다. 여기 구묘지는 당시의 참상을 처절하게 안고 있는 곳인 데다 그 동안 국내외 참배객들이 수없이 다녀간 곳이므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묘지 입구에는 전두환이 쿠데타 이후 담양을 다녀가면서 세운 비석을 통째로 뜯어다가 땅바닥에 묻어 놓았다.

 
-신묘역
흔히 신 묘역이라 불리우는 국립 5ㆍ18묘지는 광주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따라 이제 국립묘지가 되었다. 수 많은 투쟁에 의해 5ㆍ18민중항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짐에 따라 1990년대에 5ㆍ18희생자 묘역을 민주성지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만여 평의 부지에 국립 5ㆍ18묘지를 조성하였다. 1994년부터 시작한 5ㆍ18묘지성역화 사업이 3년만에 완공되어 구 묘역에 묻혀 있던 분들부터 이곳에 안장되었다. 신묘역에는 광주민중항쟁 당시 희생된 분들이 안치되어있다. 수많은 분들이 잠들어 계시고, 그 만큼 묘역이 넓다.
 

▲망월동 구묘역

 

구묘역 열사들의 잠자리

○강경대(당시 21세/학생)
1971년 2월 서울 출생
1990년 2월 서울 휘문고등학교 졸업
1991년 3월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 , 민중노래패 “땅의 사람들” 활동
3월 22일 총학생회 진군식 시위중 학내진입한 전경의 직격 최루탄에
의해 안면 부상
4월 26일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총학생회장 구출 투쟁과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 난타로 인해 심장막 내출혈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운명
5월 14일 장례식이 경찰에 의해 저지됨
5월 20일 장례를 치룬 후 망월동에 잠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한열(당시 21세/학생)
1966년 8월 29일 출생
1973년 광주 동산국민학교 입학
1979년 광주 동산중학교 입학
1982년 광주 진흥고등학교 입학
1986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입학,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활동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결의대회'에 참석. 시위도중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직견 SY-44채류탄에 피격당해 쓰러짐
1987년 7월 5일 새벽 2시 5분 세브란스 중환자실에서 뇌손상으로 27일 동안 처절하게 투병 하다가 운명
1987년 7월 9일 '애국학생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거행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노수석(당시 20세/학생)
1976년 11월 23일 광주출생
1995년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법학과 입학, 법대 풍물패 '천둥' 활동
1996년 3월 29일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를 위한 서총련 총궐기' 도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폭력적 진압에 의해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참 괴롭다/그러나 아무런 어려운 규칙이 없는 게임에서/즐거움을 찾을 수 없듯이/어려움 없는 인생도 무미건조할 것이다 - 열사의 날적이 중에서
 
○이내창(당시 28세/학생)
1962년 서울 출생, 중동고등학교 졸업
1986년 3월 중앙대학교 예술대 조소학과 입학
1988년 조소학과 학회장
1989년 중앙대학교 안성교정 총학생회장
1989년 8월 15일 거문도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이재호(당시 21세/학생)
1965년 3월 15일 전남 광주 출생
1983년 2월 광주 송원고등학교 졸업
1983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1986년 3월 18일 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 산하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위원장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 결사반대 및 반전반핵대회 도중 분신
1986년 5월 26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박선영(당시 21세/학생)
1966년 9월 8일 전남 화순 출생
1985년 2월 전남여자고등학교 졸업
1985년 3월 서울교육대학교 수학교육학과 입학
1987년 2월 20일 학내 비민주적 학사운영 및 미제국주의 매판세력의 지배를 받는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 항의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자결함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김남주(시인)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1964년 광주일고 입학 후 자퇴
1969년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입학, 3선 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 운동에 주도적 참여
1973년 반유신투쟁을 전개하다 투옥, 제적
1978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가입
1979년 '남민전' 조직원으로 활동 중 체포, 구속
1984년 첫시집 "진혼곡" 출간
1988년 9년 3개월 만에 석방
1994년 2월 13일 새벽 췌장암으로 투병 중 운명
1994년 2월 16일 민족시인 故 김남주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장례식 치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이용석(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본부장)
1972년 신안군 상태도 출생.
1991년 전남대 금속학과 입학, 98년 졸업
2000년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에 적용조사원으로 입사
2002년 1월 근로복지공단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공부방 대표로 활동
2003년 노조 결성과 더불어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본부장 활동. 10월 26일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 10월 31일 15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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