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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공화국> 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방영 중이던 몇 년 전 오월, 대구에서 1980년 즈음에 태어나 이십년 넘게 살았던 나는 후배들과 광주를 찾았습니다. 영상과 책으로 보았던 1980년 오월의 이야기는 대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아픔이고, 미안함이고, 내일의 부채감 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1980년 5월이라 말하고, 고향을 물으면 1980년 오월의 광주라 말 합니다.
5월의 노래가 그치고 서른해를 넘긴 오늘 우리는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다시 길을 묻습니다. 누군가는 광주의 피칠갑을 하고 뻔뻔하게 호위호식하며 정권을 누렸고, 광주의 아픔을 딛고 권력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는 광주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뒤로하고, 오월 광주의 종결을 선언하였지만, 윤상원이 묻힌 오월의 묘지 한 켠에 이용석을 묻어야 하는 오늘 우리는 다시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길을 물어야 합니다.
지식인들, 정치인들이 떠나버린 도시에서 노동자, 농민, 서민들은 스스로 높고 낮음과 가지고,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분별을 없애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내일의 이야기를 찾으려 하였습니다. 그건 누군가의 지도에 의해서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들 앞에 놓인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을 그/녀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함께 하기에 승리의 깃발을 함께 올릴 수 있을 거라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녀 들은 함께하고 토론함으로써 짧은 시간 모순의 본질을 깨달았고, 싸워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투쟁 이후의 그네들을 이야기 하려 하고, 그 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녀들의 싸움을 또 다른 이념투쟁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싸워갔습니다. 하지만 1980년 오월의 거리에서는 치열한 삶과 뜨거운 진실이 있었을 뿐, 화려한 형용도, 치졸한 수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폭력이 생활 깊숙이 박혀 있고, 노동과 삶이 주는 소중하고 보편적인 가치들이 소수의 욕심에 짓밟히는 오늘, 1980년 5월 광주를 뒤덮었던 죽음이 세련된 방법으로 평택의 쌍용에서, 서울의 용산에서, 안산 어느 공장의 이주노동자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오늘, 우리는 끝나지 않는 1980년 5월의 광주, 금남로 그 거리에 서서 그/녀들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다. 거짓된 수사가 아닌, 한낱 안량한 자존심과 썩어버린 이성이 아닌, 그/녀들이 느꼈던 그 가슴 떨리는 분노와 형용되지 않는 모순의 응어리에 우리는 길을 물어야 합니다.
프레메테우스처럼 눈 감지 못하는 광주의 이야기에 따뜻한 영면을 쥐어주는 것은 그/녀들의 이름을 팔아 힘을 가지고 커다란 돌기둥 아래 그/녀들을 묻거나, 안량한 한 줌의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나뉠 수 없는 그/녀들의 삶의 무게를 오롯히 심장으로 마주대하고, 삶 속에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작은 발걸음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