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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5월11일 16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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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포차] 밥심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이들
따신 밥 한그릇의 서준영, 문헌준 씨를 만나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

지난 4월 19일 점심 무렵,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 현장에 도시락이 도착했다. 100인분의 도시락을 가지고 온 그는 반찬과 국, 물을 손수 나눠줬다. 용기별로 분류된 빈 도시락 수거도 직접했다.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운 이들 사이에서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네’, ‘쪼매 싱겁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탓이다. 한 끼 식사의 배달부터 수거까지 담당한 그는 ‘따신 밥 한 그릇(따신밥)’의 문헌준 주방대표다.

따신밥은 도시락 전문 배달업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규모가 큰 식당도 아니다. 따신밥은 쪽방상담소, 만평주민도서관 등을 운영하는 자원봉사능력개발원(개발원)에서 시작한 조그마한 식당이다. 수익금의 50%는 개발원으로 보내 쪽방 거주민 지원 사업 등을 하는데 쓰인다. 쪽방 주민들을 위한 무료 반찬 쿠폰도 나눠주고 있다. 따신밥을 만들고 운영하는 서준영 씨와 문헌준 씨를 만났다.

없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쪽방 거주민들과 함께, 수익금의 50% 기부

서준영 씨는 80년대 말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지만 이후에는 주류계통 회사를 다녔다. 그가 따신밥을 만드는데 동참한 것은 개발원에서 하는 인문학 교실에서 강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밥 한 그릇은 따뜻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혼자였다면 쉽지 않았겠지만 개발원 식구들과 대학 후배인 문헌준 씨가 함께 했다.

준비가 쉽지만은 않았다.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음식 장사 경험도 없었다. 식당을 꾸리고, 음식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직접 시작했다. 문헌준 씨가 주방 쪽을 맡고, 서준영 씨가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기로 했다. 내부공사도 쪽방 거주민들과 함께 했다. 1년 가까운 준비 끝에 지난해(2011) 11월 1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쌀, 고등어, 닭, 유정란 등 대부분의 식재료는 농촌과 직거래를 통해 구입한다. 나머지 부식재료들도 문헌준 씨가 그때그때 동네 재래시장에서 구입한다.

▲ 음식을 준비중인 문헌준 씨(왼쪽)

기자가 따신밥을 찾았을 때 다들 밥상에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덕분에 시원한 된장국에 다양한 밑반찬으로 한 끼를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한 그릇 먹고 나서 메뉴판을 보니 밥값이 5천원이었다. 5천원만 내면 반찬은 먹고 싶은 만큼 더 가져다 먹어도 된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남는 게 있냐고 물었다.

서준영 씨는 “없는 사람들이 밥 한 그릇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죠. 없는 사람들이 건강이 더 안 좋잖아요. 식재료도 다 알음알음 주변 사람들과 거래를 해서 조금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쪽방 주민들이 일하느라 식당에 밥 먹으러 자주 오지는 못한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지만 “그래서 밑반찬을 교환 할 수 있는 쿠폰을 한 달에 100장 씩 나눠주는데 반응이 좋다. 조금 더 안정화되면 식사를 할 수 있는 쿠폰도 나눠줄 계획”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의 말처럼 쪽방 주민들에게 밑반찬 쿠폰은 큰 선물이다. 재료 사고 반찬 만들고 하는 시간도 줄여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따신밥에서 만든 반찬은 모두 좋은 식재료로 만든 반찬이라 몸에도 좋다. 조금 더 나가서 “채식 식단을 만들 생각도 있냐”고 묻자 서 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는 “없는 동네 사람들은 고기를 좋아한다. 도시락 배달 할 때도 고기 없으면 다들 심심해한다. 채식이니, 웰빙이니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밥 먹고 열심히 싸우자'를 꿈꾸는 빈민운동가
“잘 먹어야 잘 싸우고,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문헌준 씨는 빈민운동 현장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고향인 대구에 내려와 따신밥을 운영하기 전까지 그는 서울에서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를 만든 빈민운동가였다. 10년을 노숙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싸움, 철거민, 노점상의 생존권이 걸린 현장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수배 생활을 하다가 1년 6개월 동안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에게는 공무집행방해 소송이 20여 건이나 걸려 있었다.

고향인 대구로 돌아올 마음을 먹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88년에 계명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던 그는 92년 학생회관 화재사건으로 5명의 후배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졸업하던 97년까지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98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먹고 살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가 99년 노숙인쉼터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빈곤운동에 발을 들여 놓았다.

1년 6개월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 하고보니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져 있었다. 앞으로 생활 걱정도 들었다. 대구에서 자라고 대학생활을 보냈기에 고향으로 와서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옥살이 동안 서신을 주고받은 개발원의 윤승걸 원장의 권유도 크게 작용했다. 윤승걸 원장, 서준영 씨와 함께 따신밥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따로 배운적도 없지만 밥 나누고 먹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는 “노점, 철거 현장에서는 먹는 게 중요했다. 큰 솥에다 밥 하고, 국 끓이고 나눠먹는 급식문화가 익숙해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식당 주방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보다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

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문턱없는 밥집’에서 주방운영을 배웠다. 그가 지니고 다니는 수첩에는 음식 조리법과 재료에 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그는 점심때가 지날 즈음 장을 직접본다. 전날 반찬은 내놓지 않는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가슴에 지니고 있는 꿈을 이야기했다. “밥차를 만들고 싶다. 집회, 시위현장에 다니면서 밥을 나눠먹을 수 있는... 잘 먹어야 잘 싸우고,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군가가 ‘이 밥 먹고 열심히 싸우자’고 할 수 있는 그런 밥집, 밥차를 꿈꾼다. 밥 잘 먹다보면 잘 놀고,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겠나”

작지만 따뜻한 밥 한 그릇

이들은 식당이 손님으로 너무 북적대길 바라지도 않았다. 편하게 와서 밥 먹을 수 있는, 그리고 이 식당이 쪽방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될 수 있을 정도면 족한다. 그래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수익금 50%를 개발원에 기부하는 일이나, 밑반찬 쿠폰도 지속할 수 없으니 적어도 이를 지속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따신밥한그릇은 출장배식과 도시락 배송도 한다. 그곳이 투쟁현장 되었든, 땡볕이 내리쬐는 거리든 가리지 않는다. (010-9551-5131 서준영)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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