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단체가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저지하기 위해  이틀간 줄서 '혐오 집회'를 신고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집회신고를 두고 한국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벌어진 셈이다.

3일 오후 11시 50분, 오밤중 대구중부경찰서 앞에 모인 이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1일부터 중부서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소속 교인들이 자정이 되는 동시에 집회신고를 하려고 몸을 일으키면서다. 이들을 중부서 정문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지켜보던 중부서 형사들의 굳은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들은 집회신고를 성공하기 위해 무리를 두 분류로 나누었다. 오는 7월 4일 예정된 대구퀴어문화축제 개최 딱 한 달 전인 6월 4일 0시에 가장 먼저 집회신고를 마쳐, 집회 장소를 선점하려는 이들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대기조다. 전자는 50대로 보였고, 후자는 20~40대 총 30여 명이었다. “대구퀴어축제를 무산시키기 위해 모였”다고 밝힌 이들은, 서로를 ‘집사님’, ‘권사님’이라고 부르면서도 기자의 질문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고 다른 데서 왔다”고 했다. 추후 경찰 측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소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 명밖에 되지 않는 대구퀴어축제 조직위원회 측은 속수무책이었다. 조직위 측은 1일부터 “자리를 깔고 집회신고를 위해 기다렸다”는 기독교인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자정이 되자마자 중부서는 대기총 측의 집회 신고를 접수받았고, 허무하게 집회신고를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대기총 측에서 내리 세 명이 집회신고를 했고, ‘모르는 사이’라던 이들이 앞서 중부서로 들어간 이의 집회신고를 도와주기 위해 들어가려고 하자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4일 오전 3시경, 마침내 서창호 활동가가 중부서로 들어가 집회신고를 하려 했으나, 조직위 측에서 개최지로 점찍었던 대구백화점 앞 광장 등 대구 시내 일대 16곳 모두 이미 집회신고가 돼 있었다. ‘신고된’ 퀴어 축제 개최가 어려워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조직위 측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조직위는 사전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집시법에 따라 ‘옥외집회 또는 시위 장소가 두 곳 이상의 경찰서의 관할에 속하는 경우’ 관할 지방경찰청인 대구지방경찰청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위 측은 중부경찰서 외에도 같은 시간 대구지방경찰청에서도 집회신고를 했다. 대구지방경찰청에 대구백화점 앞 광장 등 네 곳과 함께 대구은행 본점 등 두 지역에도 집회신고를 마쳤다.

하지만 경찰 측은 양측 모두에게 집회 금지를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 8조, 12조 등에 따라 집회를 금지할 개연성이 높다. 장소도 겹치고 행진 코스도 겹쳐 공공 안녕의 질서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집회 개최를 양측이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대기총 측은 혐오 집회를 물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집회 신고한 50대 남성은 “권영진 시장도 퀴어 축제를 못 하게 한다고 했다. 중구청에서도 무대 대여를 하지 않았다”며 “동성애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대구가 얼마나 보수적인 동네인데 이런 것을 나오게 할 수 없다”고 축제에 대한 강한 반감을 말했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활동가는 “이미 축제 개최지로 봐뒀던 장소를 기독교 단체에서 선점했다. 집회가 겹치기 때문에 경찰 측은 축제를 금지할 개연성이 높다”며 “정당한 축제를 저지하기 위한 유령 집회신고를 한 것으로,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방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위 측은 오는 9일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 대여를 불허한 윤순영 중구청장과 면담하고, 면담 결과에 따라 항의 집회도 열 계획이다. 이날 대기총의 집회신고로 차질을 빚게 된 축제 야외행사 일정은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외에 7월 10일 예정된 토론회, 같은 달 11~12일 예정된 퀴어영화제, 17~19일 예정된 퀴어연극제는 일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