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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5월31일 23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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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자랑 섬유는 공동묘지가 됐다 (1)
흥망성쇠와 함께한 섬유노동자 “인생이 최저임금 인생입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성서1차산업단지의 아침은 고요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지만 공단이 이렇게 조용해서야. 1공단 외곽으로 접어들자, 머리를 황갈색으로 염색한 청년이 전화기 너머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청년을 따라 이 나간 틀니처럼 듬성듬성 자리한 빵집, 혹은 허름한 식당 몇 개를 지나면 공장이 나온다.

오전 7시, 공장 절반은 겨울잠을 잔다. 아직도 한밤중인양 푸른 이불을 엎고 잔다. 절반은 이제야 기지개를 펴는 듯 낮게 으르렁댄다. 아아 옛날이여!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사장들은 벌금을 무릅쓰고 공장을 풀가동 했다. 가동을 멈춘 공장은 이전 빛나던 그 시절, 섬유도시 대구를 꿈꾸는지도 모르지만, 

길목마다 공장 매각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는 이곳은 섬유도시다. 대구에서 가장 섬유업체가 밀집(2014년 1,004개 업체 중 섬유업체 239개. 한국산업단지공단)한 성서 1공단이다.

섬유산업 흥망성쇠와 함께한 섬유노동자
산재 빈번해···면폐증도 있어
섬유 도시 대구 만든 자부심 있지만
“인생이 최저임금 인생입니다”

오전 8시, J직물. 공장 앞을 수성경찰서 정보관처럼 기웃거렸다. 잠시 담배 피러 나온 늙은 노동자가 수상한 눈초리로 처다 본다. 취재 의사를 밝혔더니 흔쾌히 이야기를 터놓는다. 마침 심심했나보다.

노강덕(67, 가명) 씨는 올해로 40년째 섬유업에 종사했다. 일을 시작한 1975년, 그때는 대구시 침산동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도 제직공장이었다. 그때는 직조기 한 대에 노동자 한 사람이 붙었다. 지금은 한 사람이 여덟 대를 돌리지만, 당시가 지금보다도 위험했다. 주야 맞교대로 공장을 돌렸던 탓이다. 노강덕 씨가 야간을 뛰던 어느 날, 옆에 있던 여공이 사고를 당했다. 깜빡 졸다가 가위를 떨어트렸고, 이를 주우려다 머리카락이 직조기에 빨려 들어갔다. 머리가죽이 벗겨졌다.

대구의 섬유 노동자는 크고 작은 산재에 시달렸다. 그중 하나가 면분진으로 인한 면폐증이다. (박스-한국산업안전공단의 ‘유해물질 산업보건 편람’에 따르면 면폐증은 면분진을 흡입할 경우 일으킬 수 있으며, 소음, 공간가동에 따른 열로 인한 스트레스 등도 영향을 끼친다. 한국에서는 1980년도에 방직공장 노동자의 면폐증이 확인됐다. 면섬유가 폐에 쌓이면 호흡기 장애와 심장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덕 씨도 먼지를 많이 마시지만 마스크를 쓰지는 않았다. 그저 달방에 살면서, 막걸리 대포 한 잔 털어 마시면 그만이었다.

1991년, 강덕 씨는 드디어 사장이 됐다. 자기 공장을 돌렸다. 드디어 최저임금을 벗어나는가 싶었다. 40대에 일가족을 먹여 살리나 했지만, 10년을 끝으로 공장을 내 놓았다. 때가 좋지 않았다. 1990년대 대구의 섬유산업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대구경북의 섬유 수출은 95년 55억여 달러를 정점으로 2001년 23억 여 달러로 반감했고, 2010년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사업체 수도 급감했다. 대구경북은 1999년 2,007개던 섬유업체가 2010년 1,238개로 반감한다. 1999년 대구시는 부랴부랴 밀라노 프로젝트를 시작해 5년간 7천여억 원을 투자하지만, 꺾이는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공장을 팔아넘긴 강덕 씨는 지금의 J직물로 왔다. 다시 최저임금 수준의 일당을 받게 됐다. ‘밍크이불’(벨벳, 비로드)을 짰다. J직물로 옮겨오던 당시 공장에 노동자가 여덟 명이 있었으나, 지금은 강덕 씨를 포함해 세 명이 됐다. 가장 어린 사람이 58세의 여성노동자, 다음이 69세다.

“설 쇠고부터는 외국 바이어들이 꼼짝도 안 합니다. 오더가 없어요. 여기 전부 오더가 없어서 재고 쌓인 거예요. 임금 인상? 인생이 최저임금입니다. 월급이라도 받아 가면 고맙죠. 앞으로가 문제예요. 우리가 섬유공장의 마지막이라고 보면 돼요. 일 배울 사람도 없고, 외국인이나 조금 있지. 이젠 전망이 없어요. 투자도 없고. 외국이 싸거든요. 중국 절대 못 이겨요”

강덕 씨 뒤편으로 재고가 쌓인 ‘밍크이불’이 보인다. “그래도 자부심은 있지. 섬유로 키운 대구인데”. ‘밍크이불’이 벼룩신문 구인구직란을 펼쳐든 실업자처럼 웅크리고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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