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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5월31일 22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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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예술가, 고담도시에서 살아남기 (1)
한 번이라도 대구는 컬러풀한 적이 있었나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수신자 외 개봉 금지”-와이케이대부업체
“교통범침금고지서”-경찰청
뜯지도 않은 편지 몇 통이 입구에 흐트러져 있다. 발자국이 몇 개 찍혀있다. 지하로 가는 길. 나지막한 천장. 지하실에는 가방과 지갑, 핸드폰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우두커니 선 키보드 앞에 앉았다. 다리 한 짝이 없는 의자가 삐이익- 소리를 낸다.

의자 뒤편으로 문이 하나 더 있다. 방음판을 덧댄 문 너머에서 샤우팅이 속삭이는 듯 새어 나온다. 문을 여니 후끈한 열기가 쏟아진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합창. 명진, 미나, 본두 씨는 한 주에 두 번 이곳 연습실을 찾는다.


드링킹소년소녀
이제 락스타가 나올 시대는 아니다
“전업할 거냐, 생업 하면서 할거냐 문제”
대구시 지원? 복잡해서 안 받는다

배미나: 10년 전부터 쳤는데 존나 못 쳐요. 그만 둬야해···망했어(명진, 본두: zzz) 고2때 우연히 메탈을 들었는데 그게 마릴린 맨슨. 그 뒤로 대학 가면 밴드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OT 갔더니 공연하는 오빠들이 너무 잘 생긴 거야, 그 동아리방에 가서 드럼을 시작했죠. 나중에 우연히 어떤 인디밴드가 드러머를 찾더라구요. 귀찮았는데 막상 보니 재미있을 거 같아서 시작했는데. 계획이 전혀 없음.

일상은 계획적으로 사는데, 큰일은 즉흥적으로 정해요.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아빠가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았는데, 못 먹고 산 게 한이라서 첫 월급 받고는 핫도그 56개를 드신 거예요. 그때 아빠는 “니도 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고 하던데. 지금은 언제까지 그따구로 살 거냐고 뭐라 하지만. (명진: 락을 해가 그렇다. 본두: 밴드 해가 그런거다)

밴드하고 싶어서 자퇴하고 집을 나왔어요. 수중에 50만 원 있어서 보증금이 50만 원인 방을 계약했어요. 월세는 명진이한테 빌려서 내고. (명진: 돈 갚았나? 미나: 기억 안 난다) 나와서 맥도날드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건 또 재미가 있어서 이제 메니저가 됐네. 햄버거도 맛있고. 대구에서 밴드는 2012년에 시작했어요. 이걸로 먹고 살기는 어렵죠.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까지는 락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있었어요. 크라잉넛이나, 넬처럼.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니죠. 전업할 건가 생업이랑 분리할 건가의 문제죠.

홍대 같으면 상업화가 잘 돼 있고 인프라가 있어서, 공연 하면 분배 비율이 관행처럼 정해져있어요. 대구는 그런 게 없어요. (명진: 인디밴드라고 하면 10센치 밖에 모르는 정돈데 락밴드는 어떻게 알겠어요. 대구에도 락 좋아하는 사람 많을 텐데 다 서울로 가죠)

작년 대구 시장이 청년 예술인이랑 간담회 열어서 갔었는데. 권 시장이 올해는 지원을 좀 해주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받는지 알아봤더니 절차가 복잡하고, 일개 밴드에서 받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건 사무 처리할 수 있는 능숙한 사람이 있어야죠. 다른 생업이 있으니까 병행하기는 힘들죠. (명진: 앨범 하나 내는 사무도 피곤한데.) 우리만 도움 되는 것보다도 공공의 득이 되도록 고민은 하는데, 그냥 안 받는 게 속 편한 거죠.

세대 차이를 느껴요. 부모님 삼촌 같은 사람들이 시에 있는 거죠. 관에 있는 사람들은 락을 싫어해요. 우리는 이미 락스타가 되기에는 나이가 많고 한데, 뭐 막막하거나 하진 않아요. 전체적으로 시민 의식 자체가 나아져야하는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더 활발하게 하는 거죠. 복잡한 거 말고, 그냥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겁니다. 


고담도시의 미학
지원, 있는 곳에 더 해주고
없는 곳은 덜 해준다
문화예술 예산, 전체 중 1.66%
청년 예술가의 몫은 없다
영화 ‘갓바위’를 아시는가
‘하이마트’는? ‘왔니껴’는?

대구는 예술인에게, 혹은 문화 예술에 관대한 도시가 아니다. 한 시민은 공공장소에 박정희 그림을 그렸다고 법원에 불려갔다. 컬러풀 퍼레이드 주최측은 예선을 통과한 팀이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한다며 본선 직전 참가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 국채보상공원의 멀쩡한 엑스게임장(인라인, 보드 등을 위한 시설)은 국제마라톤대회 때문에 철거됐다. 코스도 아니였다.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뿌렸다고 경찰이 출판사를 압수수색 됐고, 전단지 제작자는 구속됐다. (그 아무것도 아닌 전단지를 두고 벌이 는 촌극이 대구의 미학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수백억을 들여서 야심차게 준비한 이우환 미술관은 고꾸라졌다.

예산 규모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예술 관련 예산(문화체육관광국 총 예산)은 2015년 기준 2,390억 원(일반 회계 예산의 5.09%)에 불과하다. 이 예산은 문화예술, 체육, 관광 부서의 각종 대회와 행사, 미술관, 시민회관 등의 인건비, 관리비 등 운영 경비와 사업비, 여러 사회단체 보조금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현직 예술인들은 대체로 활동이 어려운 이유로 수입문제를 첫 번째로 꼽는다.(대구경북연구원 2014 예술인 실태조사, ‘실태조사’) 그럼에도 지원할 예산과 지원책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적은 예산마저도 편향적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2015년 문화예술 관련 예산은 대구예총, 매일신문사, 대구미협, 문인협회, 건축가협회 등에 주로 지원됐다.(2014년 대구시 예술법인, 단체는 64개) 지원 대상 단체는 공모 혹은 대구시와 협의로 선정하고, 대구시의회 의결을 통과해야 한다. 이 예산과 별개로, 대구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문예진흥기금은 2014년 기준 148억 원으로, 규모로 따지면 전체 예산의 0.31%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지원 절차가 까다로워, 청년 예술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안 받고 말’게 되는 것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예술인의 51%가 문화재단의 예술인 지원 사업이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유로는 심사의 투명성 부족을 첫 번째, 심사위원 전문성 부족을 두 번째로 꼽았다.

반면, 대구시는 어떤 예술인 단체들에게는 수억 원의 보조금을 매년 지급하기도 한다. 대구시는 대구경북영화인협회에 2014년 3억, 2012년, 2013년에는 1억 이상을 지원했다. 협회는 영화 제작에 지원금을 사용한다. 최근작은 ‘갓바위’다. ‘국제시장’을 넘어 보겠다고 돈 좀 썼다. 어떤 작품인지, 알 만한 사람은 (그 악명을) 알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작품이다. 협회는 이전에도 지원금으로 ‘파군재 가는 길’, ‘왔니껴’, ‘하이마트’, ‘위험한 사춘기’, ‘동지섣달꽃’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협회는 올해 ‘갓바위’로 논란이 벌어진 다음에도 대구시로부터 3억 원을 배정 받았다.

독립영화 감독에게 사정은 많이 다르다. 감독 혼자서 PD가 하는 기획, 사무, 정산을 부지런히 처리한다면 1년에 수백만 원 정도 지원되는 사업에 응모할 수 있다. 최창환(41) 감독은 대구에서 20대 중반부터 극영화를 만들었다. 최 감독은 부지런히 지원금을 신청했다. 문화진흥기금을 1년에 5백만 원 가량 받아 작품 활동에 사용했다. 극영화는 작품 하나도 호흡이 길어 자금이 절실하다. 프리 프로덕션(촬영 준비)에서 시나리오를 짜고, 배우 섭외, 예산 마련, 일정 계획을 거치는데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일 년이 걸리기도 한다. 촬영에 들어가면 이 기간은 밤낮이 없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편집, 정산, 배급 등의 단계를 거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가 나온다.

저예산 영화라도 그럴듯한 조건을 갖추려면 1억 원은 필요하다. 대구는 웬만한 시·도에 다 있는 영상위원회도 없어서(전국 17개 시·도 중 영상위원회가 없는 곳은 대구, 경북, 울산, 강원, 세종 다섯 곳이다) 지원 받기도 쉽지 않다. 타 시도 영상위원회는 심사를 거쳐 제작비를 지원한다. 강의, 멘토링, 세미나실 지원, 창작 공간 지원, 전용관 운영, 장비대여 등도 지원한다.

최창환 감독도 창작을 시작하고 아르바이트를 놓을 수가 없었다. 건설현장 일용직, 커피숍, 웨딩촬영, 그리고 지금은 바텐더. “독립영화 하는 게 다 그런 거죠.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가시밭길을 가는 거죠. 당장 내년에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하죠. 예술 하는 사람이 다 그렇지”

“기본적으로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은 영상위원회를 바랍니다. 꼭 영화가 아니라도 예술 하는 사람은 다 그런 기구를 바랍니다. 대구가 3대 도시라고 하는데 영상위원회도 없는 게 말이 되나요. 물론 영상위원회가 들어와도 독립영화는 소외되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적어도 문화 예술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대구는 딱 “이우환 미술관에 목숨 거는 수준”인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최 감독에 따르면 대구는 전후 영화가 가장 많이 만들어 진 곳이다. 영화관 밀집도도 전국에서 가장 높다. 배창호, 이창동, 봉준호, 김지훈, 박신우 등 감독의 출신지기도 하다.

폐쇄적인 지역성 문제도 있지만, 최 감독은 전문성 없는 행정을 첫 손에 꼽았다. 서울이나 부산은 큐레이터 등 관련 경험자를 담당 주무관으로 채용하는데, 대구는 전문성이 없는 일반 공무원을 배정한다는 것이다. 업무적응을 할 무렵이면 다른 부서로 발령 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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