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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국가권력을 넘어 개인의 절대자유를 향하여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3)

채형복(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uropia@knu.ac.kr

“어떤 경우에도 어떤 한 인간이 지상의 어떤 다른 인간, 또는 어떤 인간의 한패에 복종할 의무는 없다는 것보다 더 단순한 진리는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아나키즘 사상의 선구자인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이 1793년에 쓴 『정치적 정의와 그것이 보편적 미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 말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말고, 누구도 지배하지 마라”는 절대자유를 지향하는 아나키즘의 본질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정치는 최선의 상태에서도 악이 되기에 우리는 그것을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평화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적게 갖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승우, 36~37쪽)

아나키스트들은 왜 정치(=국가)를 악(惡)으로 볼까?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인간은 본래 선(善)한 존재인데, 정치가 인간을 나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제도로서 ‘국가’는 착한 존재인 인간의 자유를 구속․억압하는 ‘나쁜 존재’로서 ‘최소화’되거나 ‘폐지’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아나키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다. 국가를 넘어선 개인의 자유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나키즘은 정치제도 혹은 체제로서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가진 권력 혹은 권위를 넘어선 개인의 자유’의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아나키즘은 그 사상의 중심에 ‘인간’, 특히 ‘개인’을 두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 그리고 아나키즘도 없다”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나키즘이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중점을 둔다고 가정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본질적 질문이 남는다. 즉,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 특히 국가체제를 떠나 살 수 있는가? 이는 ‘인간과 국가’의 상호관계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그 국가가 가지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아나키즘의 시각을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국가에 대한 아나키즘의 입장이다. 아나키즘에 의하면, 국가는 중앙집권적 성격에 의해 본질적으로 강압적인 질서의 옹호자이고, 민중의 사상이나 생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玉川信明, 24쪽) 표트르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은 <국가-역사에서 국가의 역할>에서 국가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국가는 자유와 평등에 근거한 사회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발전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적 형식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을 갖는 사람들은 국가의 개조 대신 국가의 완전한 폐지를 추구한다.”(표트르 크로포트킨, 73~74쪽)

크로포트킨은 ‘국가’를 어떤 의미로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합의해야 된다고 하면서, ‘국가’와 ‘사회’는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이므로 양자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사회를 이루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유럽 민족들 사이에는 국가는 가장 최근에 생긴 16세기 이후에 발전된 현상이라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류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대는 지방적 자유와 삶이 아직 국가에 의해 억압당하지 않았던, 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체와 자유 도시에 살았던 때라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표트르 크로포트킨, 74~75쪽)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국가는 사회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채택한 여러 형식들 중 하나일 뿐이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개념들은 어떤 식으로 혼동될 수 있는가?”(표트르 크로포트킨, 75쪽)

결국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국가는 사회의 한 형식일 뿐이고,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필요에 따라 인간이 선택하고 설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그들의 삶을 간섭하고 억압하는 사회 형식으로서의 국가를 바라지 않고, 그들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사회(즉, 자유사회)를 원하는 것이다.
크로포트킨의 국가에 대한 관념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루동의『연방의 원리』가운데 일부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루동은, 정치적 질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상반하는 원리, 즉 권위와 자유의 원리 위에 세워져 있다고 본다. 이 입장에서 그는, “아무리 독재적인 사회라 하더라도 반드시 자유가 존재할 여지는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자유로운 사회에 있어서도 권위가 차지할 자리는 있다.”고 하면서, 정치적 질서를 ‘권위적인 제도’와 ‘자유로운 제도’로 나누고 있다. 즉, 전자는 다시 ‘개인에 의한 만인의 통치(예: 군주제 또는 족장제)’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통치(예: 만인정치 또는 공산주의)’로, 후자는 ‘각인에 의한 만인의 통치(예: 민주주의)’와 ‘각인에 의한 각인의 통치(예: 아나키즘)’로 나눌 수 있다.(玉川信明, 24~25쪽)

위의 설명에 의하면, 아나키즘은 ‘각인에 이한 각인의 통치’, 즉 ‘개인에 의한 자치’를 말한다. 프루동에게 있어 개인은 본래 ‘자율적, 독립적,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런 존재로서 개인이 연합(즉, 개인의 연합)함으로써 자유로운 집단이 형성되어 발전하면 ‘자유공동체’가 된다. 이것이 프루동의 ‘연합’사상의 기본이념이고, 자유와 자치의 ‘연합주의=아나키즘’이다. 국가를 폐지하거나 대체하는 아나키즘사회이다.(玉川信明, 25~27쪽) 

다음은, 국가권력과 권위에 대한 아나키즘의 시각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이란, “타인 또는 조직단위의 행태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 즉 “타인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화된 힘”을 말한다. 좁은 뜻으로는 “국가가 갖는 강제력인 정치권력․국가권력”과 같은 뜻으로, 넓은 뜻으로는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는 사회적인 힘”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출전: <네이버 지식백과> 권력, 행정학사전, 2009, 대영문화사)

그리고 권위란, “어느 개인․조직(또는 제도)ㆍ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말한다. 따라서 권위는 이것을 느끼고 인정하는 데서 성립하는 정신적인 것이다. (출전: <네이버 지식백과> 권위,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권력과 권위는 다 같이 다른 사람을 지배 내지 복종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양자는 정치권력 혹은 국가권력의 행사와 관련하여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고, 논란이 된다. 특히 근대 국민국가가 출범하면서 ‘주권’의 행사와 관련하여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절대왕정체제는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대변되듯 권력은 물론,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도 뚜렷한 실체가 있었다. 비록 볼테르가 멋대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심지어 루이 14세가 죽으면서 남겼다는 “짐은 이제 죽는다. 그러나 국가는 영원하리라.”는 말에서조차도 권력의 주체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국민주권사상에 바탕을 두고 창출된 근대국가에 의한 권력의 행사는 그 주체와 성질 등과 관련하여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근대민주주의국가에 있어 ‘우리(=시민)’는 ‘주체’이자 ‘입법자’이다. “짐이 곧 국가”이듯 “우리가 곧 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개념은 모호하고, 그 유형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즉, ‘우리’는 지배자는 물론 피지배자도 포함하며, 피지배자들은 다시 소수와 다수, 국민과 외국인, 부자와 빈자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근대민주국가로서는 설명할 수도, 또 해결할 수도 없다.

근대‘주권’국가에서 권력의 원천은 ‘우리’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곧 ‘시민’, ‘국민’ 혹은 ‘(개별주체로서) 개인’이다. 그런데 그들의 지위를 권력의 등급에 따라 서열화함으로써 ‘우리’는 주권론의 이론적 원천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령 ‘우리’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자를 통해 표명하고, 국민주권을 위임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소외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대의제와 보통선거를 비판하는 근거이다. 이처럼 근대국민국가의 출범으로 절대자유주의 정신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은 점차 비인격화되었고, 현대에 이르면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추상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국가권력과 주권자로서 개인 사이에 야기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폴 볼프(Robert Paul Wolff)의 견해를 원용해보자.

1970년 볼프는『아나키즘을 옹호하며(In Defense of Anarchism)』라는 제목의 소책자에서, “개인은 도덕적으로 자율적이다.”고 전제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한 국가란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1988년 이 책을 개정하면서 볼트는, 서문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구는 <권위에 의문을 가져라(Question Authority)>로 이것은 내 책의 주제를 두 단어로 잘 요약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로버트 폴 볼프, 14~15쪽) 

볼프는 “국가란 일정한 영토 안에서 또는 일정한 주민에 대해 최고의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정의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란 일정한 영토 안에서 주권을 갖는다고 인정된 사람들의 집단, 즉 피주권자들에 의해 그 주권이 인정된 사람들의 집단”이다. 국가를 개념 정의함에 있어 그는, 권력이 아니라(혹은 권력보다는) ‘권위’를 중시한다. 그에게 있어 ‘권위’란 “명령하는 권리이며, 상대방에게는 복종을 요구하는 권리”이다. 이것은 힘을 행사하거나 위협함으로써 복종을 강요하는 권력과 구별되어야 한다. (로버트 폴 볼프, 37~39쪽)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이고, 기본적으로 ‘자율적’이다. 볼프는, “도덕적 자율은 자유와 책임이 결합된 것”이라는 칸트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덕적 자율은 자신이 스스로 제정한 법에 복종하는 것이다. 자율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지에 좌우되지 않는다.” (로버트 폴 볼프, 50쪽.) 따라서 ‘자율적’인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 의미에서 보면, 자율적인 사람에게는 사실상 명령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로버트 폴 볼프, 52쪽)
 
위와 같은 볼프의 견해에 따르면, 개인이 자율적인 주체인 이상, 개인과 국가는 공존할 수 없고, 양자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볼프는 아나키즘적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가의 명확한 특징은 권위, 즉 통치권이다. 인간의 일차적 의무는 통치받기를 거부하는 자율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율성과 국가의 가상적 권위 사이에는 충돌이 생기고, 이것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자율적으로 의무를 수행하려고 하는 한 인간은 자신에게 권위를 행사하려는 국가의 주장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단순히 그것을 국가의 법이기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거부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자율성을 지지하는 정치적 노선처럼 보인다.” (로버트 폴 볼프, 55쪽)

볼프에게 있어 국가는 그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현실에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정당한 권위를 갖고 있으며, 또 행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범위에서 그 권위(즉, 통치권)를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의 딜레마‘이자 ’이상향(유토피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볼프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최상의 자율성을 지닐 의무가 있다면, 국민이 국가의 명령을 준수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갖는 국가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 폴 볼프, 56~57쪽)

물론 볼프가 내린 결론처럼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적법하고 정당한 국가의 개념이란 공허한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나키즘은 국가를 전복하고,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 국가와 공존하는 것, 파묻히고 버려져 있는 것을 현실화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구스타프 란다우어(Gustav Landauer)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혹은 국가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시정하고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써 아나키즘이 가지는 학문적․실천적 효용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채형복 교수

<참고문헌>

•Pierre-Joseph Proudhon, Du Principe fédératif, 1875.
•하승우, 『아나키즘』, 책세상, 2008.
•로버트 폴 볼프(임홍순 옮김), 『아나키즘: 국가권력을 넘어서』(원제: In Defense of Anarchism , 책세상, 2001.
•玉川信明(이은순 옮김), 『아나키즘』, 오월, 1991.
•표트르 크로포트킨(백용식 옮김), 『아나키즘』, 충북대학교 인문․사회연구총서 8, 도서출판 개신, 2009.
 

채형복(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uropia@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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