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사회주의 운동가 故이일재 선생 3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일재선생추모사업회’가 주최한 추모제에는 이일재 선생의 유족과 대구, 서울, 울산에서 모인 노조 활동가 등 60여 명이 참여했다. 추모제는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故이일재 선생 묘소 앞에서 열렸다.
추모사에서 이들은 이일재 선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호동 이일재선생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은 “2008년 내가 일본에 갈 때 이일재 선생이 그 연배에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며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 일어판을 사달라고 하셨다. 체제를 바꾸기 위한 평생의 노력을 이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열 민주노총 대구본부장은 “이번 총파업은 1946년 10월 항쟁과 96~9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맞는 정치 총파업”이라며 “당시에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잔업, 특근 수당 요구하며 파업하는 게 현실이다. 오는 총파업으로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이일재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일재 선생이 생전에 좋아했던 붉은 장미를 헌화하고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하는 것으로 추모제를 마쳤다.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 2012년 3월 24일 89세로 별세한 이일재 선생은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해방 이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조선공산당 간부로 대구10월항쟁에서 주도적 활동을 했고, 대구 팔공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후 노동운동을 벌이다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988년까지 복역했고, 출소 이후 민주노총 지도위원,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지원, 삼성 민주노조 건설 지원 활동을 펼쳤다.
한편 이일재 선생 별세 이후 2014년 5월, 대법원은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이 사건으로 故권재혁 씨는 사형을 당했고, 故이일재, 이강복, 이형락, 김봉규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69년 당시 중앙정보부는 故이일재 등 13명에게 “조선노동당에 가입해 북한공작금을 받는 등 간첩활동을 했다”며 ‘남조선해방전략당’이라고 이름 붙여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53일간 이들을 불법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해 허위자백을 받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