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재개발 사업은 과거부터 땅값, 입주비용 상승 등으로 수십 년 동안 살던 지역주민을 몰아내는 사회 양극화의 전형적인 문제였습니다. 대구시 중구 명륜지구(50,117㎡, 남산동 명륜로11길 일원)도 2006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습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지주, 영세민을 위주로 재개발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명륜지구는 주민 연령대가 높아, 행정적 절차를 따르는 것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재개발 반대 주민들은 재개발추진위원회 해산동의서를 받고 있으나, 실제 토지 소유자와 연락하고 신분증 사본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소유자 1/2 이상의 해산 동의서를 받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주민들은 오는 4월까지 결격사유 없는 해산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뉴스민>이 명륜지구 주민들을 찾아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명륜지구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하루 유동인구가 50만 명에 달하는 인근 반월당과 달리, 북쪽으로는 달구벌대로, 동쪽으로는 중앙대로가 마치 방파제처럼 인구유입과 소음 따위를 막는 모양새다. 준주거지역인 이곳에는 상가도 많지 않고 3층을 넘는 건물도 드물다. 밤낮으로 왕왕 마실 나오거나 폐지를 줍는 노인이 눈에 띄는 정도라, 옥상에 널린 빨래가 펄럭이는 소리 외에는 고요가 깃들어있다.
인구의 47%가량이 50대 이상(남산2동, 1월 31일 기준. 남산2동의 13%가량을 차지하는 명륜지구는 상권이 없고 준주거지역인 것을 고려하면 더욱 노령화됐을 것으로 보인다)으로 노령화된 이곳은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이들로 가득하지만, 2006년 이곳에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명륜지구 일부 주민들이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를 설립하고 재개발을 추진한 것. 현재 명륜지구는 정비구역 지정을 앞두고 있다. 전 단계인 정비계획 수립도 주민들의 의사(300여 명 중 200여 명 찬성)로 진행된 것이지만, 문제는 주민들이 재개발의 장단점과 영향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다. 2014년 1월, 김병욱 전 대구시 중구의회 의원이 파악하기로 찬성자가 200여 명, 반대자가 약 105명, 찬성과 반대 동시 참가자가 약 25명, 찬성 철회자 25명, 반대 철회자 18명, 찬성자 중 서류 부적격자가 48명이었다. 동시 참가자와 찬성, 반대 철회자의 비율이 상당한 점을 미루어보면 주민들이 재개발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는 매일 명륜지구 재개발을 막으려는 노인들이 모인다. 이들은 대부분 70대 이상 노인들로, 약간의 세를 받아 살림에 보태거나 노령연금 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이들이다. A씨는 올해 75세로, 60세에 퇴직한 이후 남산동에 건물을 구매해 세를 놓는 것으로 노후대책을 마련했다. 척추 수술로 장애인이 된 A씨는 별달리 생업을 가질 수가 없었다. 추진위가 설립되고 A씨는 느닷없이 재개발하자는 여론에 휩쓸려 찬성을 했다가 다시 반대로 돌아섰다.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측으로부터 “아파트가 들어서면 거기서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이후 A씨가 파악하기에는 준주거지역인 명륜지구는 토지감정가가 낮게 나올 것이었다. 또한, 아파트가 들어서더라도 추가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아무런 정보도 없이 현혹됐다”는 마음에 부랴부랴 반대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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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명륜지구에는 임대수익조차 받지 못하고 노령연금으로 살아가는 ‘할매들’이 있으므로 재개발이 된다면 이들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A씨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이들이 모였고, 2009년까지 다른 주민들에게 찾아다녀 반대 서명을 140여 명에게 받았다. 찬성했다 반대로 돌아서는 이들도 속속들이 보였다.
하지만 중구청은 찬성자 중 이후 반대로 돌아서서 정비계획 수립 단계의 조건인 토지등 소유자 2/3 이상 찬성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더라도 효력이 없다고 했다. 정비계획 수립 이후 매매 등을 통해 토지등 소유자의 변동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인계되는 거로 보기 때문에 동의율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대신, 2014년 중구청은 추진위를 해산할 경우 재개발은 중단되기 때문에 추진위 해산 동의서를 모아오라고 했다. 당시 2015년 1월 31일까지 토지등 소유자 1/2 이상의 해산 동의서를 받도록 했으나 2015년에 들어서며 관계 법령이 개정돼 2016년까지 기한이 연장됐다.
반대 주민들은 토지등 소유자 295명 중 과반수인 148명의 해산동의서를 모아 2014년 12월 중구청에 제출했으나, 소유권 변경, 소유자 사망 등으로 상속인의 동의서를 다시 받아야 하는 등 31개 이상의 해산동의서를 보충해야 했고, 중구청은 주민들에게 민원사무처리에관한법률시행령에 따라 4월 9일까지 보완하지 못할 시 민원을 반려한다고 전했다.
또한, 민원이 받아들여지기 이전에 대구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정비구역 지정을 승인한다면 어렵사리 모은 해산동의서도 휴짓조각이 된다. 도시계획위원회는 2014년 11월 ‘명륜지구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결정(안)’을 유보한 바 있다. 교통처리, 문화제 처리 계획과 주민동의율을 높여야 한다는 등의 사유를 들었다. 현재 추진위 측은 정비계획 입안 동의서를 모아 다시 대구시 도시계획위원회의 검토를 추진하고 있다. 추진위 해산을 하지 못한다면 반대 주민들은 재개발을 막기 위해 ‘추진위 해산’이 아닌 ‘조합 해산’을 신청할 수 있지만, 주민들은 처음부터 다시 해산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재개발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여기 어르신들을 다 쫓아내가며 재개발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 사람들 보호할 방도도 없는데 무작정 재개발해서 어떻게 죄값을 감당할 것입니까. 어른들 보면 눈물이 납니다. 한 어른한테 어려움을 말했더니 오히려 날 위로합디다. ‘해도 해도 안 되면 어쩌겠노’하며···땅이 50, 60평 되는 사람들이야 시공사가 부도만 안 나면 아파트 20평 정도라도 내 줄지는 몰라도 20평도 안 되는 건물에 사시는 할머니들은 어쩝니까? 보상금 계산하면 아파트는 택도 없어요. 지구 주민 85%이상은 쫓겨난다고 봐야 해요. 근근이 폐지 줍는 게 수입인 할머니들이 어떻게 삽니까? 구청도 법대로 한다고 해서 이의는 달 수 없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추진위 쪽으로 너무 편파적입니다. 쫓겨나갈 분들이 너무 많잖아요. 이건 옳은 일이 아니에요.”(주민 A씨, 75)
재개발 이후 세입자나 영세민들이 헐값의 보상을 받고 쫓겨난 것은 재개발사업의 전형적인 병폐로, 과거부터 사회적 문제로 여겨졌다. 재개발 단계에서 철거, 착공 및 분양 등의 직전 단계인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서 감정평가사 2인으로부터 건물과 토지의 가치를 정산 받는데, 평가 시기나 보상 금액을 알 수가 없어 불안요소이며 주민들은 이 단계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우려한다.
주민 B씨(80)는 "찬성이 뭔지, 반대가 뭔지도 잘 모른다. 지금도 잘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재개발 되면 좋다고 해서 찬성을 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집에서 쫓겨날 판"이라며 "그냥 이곳에서 계속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대 주민 C씨(73)는 “우리가 반대 서명을 받고부터 정비업체(상원컨설팅)가 회유하고 있다. 시행사도 우리 사정을 봐 줄 이유가 없고, 오히려 조합원분양보다 일반분양을 높이는 게 이득이다. 토지감정을 하다면 평당 400만 원 정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실적인 보상금이 못 된다. 만약 준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바뀐다면 감정가가 좀 더 현실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재개발하면 득이라는 추진위도 믿지 못 한다. 추진위원장은 있던 큰 건물을 팔고 20평짜리 건물을 샀다. 이익 창출이 될 것 같으면 오히려 지분을 늘려야 하는데 누가 믿겠나”라며 “재개발에 앞장 서는 대신 모종의 중간이익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이재화 추진위원장은 “재개발하면 이익되고 좋은 일이라서 앞장 서는 것이다. 2006년도부터 고생한 것 말도 못하는데 마무리단계에 와서 늦어지고 있다. 감정가는 적게 잡아도 7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라며 “건물을 팔고 20평 정도 되는 조그마한 땅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판 것이다. 그런 것까지 의심하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한편 중구청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는 입장이다. 윤대구 중구청 건축주택과장은 “특성상 찬반이 나뉠 수 있고, 민주주의 원칙대로 다수가 동의하는 쪽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소규모 지주의 경우 아파트 입주를 못 할 수도 있다. 이런 분들이 개발을 반대할 것이고, 추진하려는 쪽은 (토지가) 규모도 있고 지역 발전의 시너지효과를 받을 수 있는 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구청이 재개발 추진을 위해 추진위에 서류 보완 기간 연장 등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반대가 많아 민원을 없애보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